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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엘리너 루스펠트, 인권을 생각하다

등록 2021-12-09 15:30수정 2021-12-10 02:32

[나는 역사다] 엘리너 루스벨트 1884~1962
<strong>엘리너 루스벨트 1884~1962</strong>
엘리너 루스벨트 1884~1962

결혼 전 이름도 엘리너 루스벨트였다. 삼촌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01년에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 러시모어산에 얼굴을 새기고 곰인형에 ‘테디베어'라는 이름을 남긴 대통령이 이 사람이다. 백악관에서 결혼식을 하라고 조카에게 권했는데, 엘리너 루스벨트는 사양하고 다른 곳에서 식을 올렸다. 먼 친척이었던 남편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33년에 대통령이 된다. 잘나가는 집에서 태어난 잘 풀리는 인생이었을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어머니는 젊어서 죽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열 살도 되기 전에 부모를 잃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좋은 정치인이지만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시어머니의 간섭을 제대로 막아주지 않았고, 비서와 외도하여 엘리너 루스벨트에게 상처를 주었다.

엘리너 루스벨트를 미국의 으뜸가는 영부인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남편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정치인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1921년에 소아마비를 앓는다. 다리가 불편한 남편과 함께, 때로는 남편 대신, 그가 곳곳을 다녔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통령 선거를 네 번이나 이겼다. 인권과 복지에 관심 많은 대통령으로도 유명하다. 루스벨트 부부가 백악관에 살던 시절에 미국은 대공황과 2차 대전을 겪었다.

그는 영부인 역할에 머물지 않고 자기 정치를 했다. 책을 내고 라디오 방송을 하고 신문에 칼럼을 썼다. 회의에 들어가 남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내 생각으로는 당신이 이 일을 해줘야 한다”고 지시하듯 말하기도 했다. 때로는 정치적 입장이 엇갈렸다. 남편보다 더 진보적이었다. 표가 깎일까 걱정한 남편의 지지자가 ‘왜 다른 입장을 내느냐'고 비판하자, “이 문제에 사회적 관심을 일으키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도 모르느냐”고 대답한 일이 있다.

1945년에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죽었다.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트루먼은 그에게 유엔의 일을 맡아달라 청했다. 그는 유엔 인권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여러 나라의 엇갈린 입장을 조율했다. 그 성과가 세계인권선언. 채택된 날이 1948년 12월10일이다. 그래서 오늘 12월10일은 ‘인권의 날'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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