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
“나의 부모는 세상에 드문 일을 해냈다. 결혼 생활 내내 행복했다니 얼마나 대단한가.” 어린 시절은 행복했다. 가세가 기울며 불행이 닥쳤다. 돈 걱정 때문이었을까. 건강을 잃은 아버지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열한살 나이부터 애거사 밀러는 어머니와 의지하며 살았다.
결혼할 때가 되어 넉살 좋은 멋쟁이 아치 크리스티를 만난다. 1차 대전이 터지고 얼마 뒤, 둘은 충동적으로 결혼식을 올린다. 애거사 밀러는 애거사 크리스티가 되었다. 얼마 뒤 미스터리 소설 작가로 성공했고 딸을 낳았다. 1922년에는 박람회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남편과 함께 세계 일주도 했다.
결혼 생활은 행복했다. “만사가 너무 순조로웠다.” 1926년까지는 그랬다. 그 한 해에 불행이 밀린 외상값처럼 몰아닥쳤다. 4월에 어머니가 숨졌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유품과 옛집을 홀로 정리하며 슬픔을 곱새겼다. “나는 아프거나 불행한 사람은 질색”이라고 남편은 말하곤 했다. 유쾌한 남자였지만 힘든 짐을 나누어 질 사람은 아니었다. 아내가 우울해할수록 거리를 뒀고 끝내는 다른 여성과 바람이 났다.
그해 12월3일, 애거사 크리스티는 차를 몰고 사라졌다. 연못가에서 빈 차가 발견되었다. 수많은 경찰과 자원봉사자가 그를 찾아 나섰다. 유명한 ‘애거사 크리스티 실종 사건’이다.(셜록 홈스 시리즈를 쓴 작가 코넌 도일은 때때로 미궁에 빠진 실제 사건을 추리로 해결하기도 하였는데, 이때는 추리 대신 심령술사를 찾아갔다고 한다.) 열하루가 지나서야 애거사 크리스티가 나타났다. 그동안의 기억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무도 모른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은 사실이리라. <자서전>에는 “그때 이후로 기자와 군중에 대한 거부감이 시작된 것 같다. 때로는 유명세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라고만 적었다.
그래도 애거사 크리스티는 행복을 되찾았다. 이혼 뒤 중동 지방으로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열세살 연하의 고고학자 맥스 맬로원을 만났다. 두번째 결혼 이후 애거사 크리스티는 행복하게 살며 수십권의 걸작 소설을 남겼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