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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손석우의 바람] 수능 한파는 없다

등록 2021-11-28 19:19수정 2021-11-29 02:31

손석우 |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바람은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무려 10가지가 넘는 정의가 나온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정의는 “기압의 변화 또는 사람이나 기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이다. 흔히 바람이 분다고 할 때 그 바람이다. 동쪽에서 불어오면 동풍, 반대로 서쪽에서 불어오면 서풍이다.

또 다른 정의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 종종 바램이라고 쓰이기도 하지만 표준어는 바람이라고 한다. 앞서 바람이 공기의 흐름을 의미한다면 여기서 바람은 마음의 흐름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시나 소설을 읽다가 날씨와 관련된 대목이 등장하면 주의를 기울이곤 한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최승자 시인의 시 ‘너에게’ 전문은 다음과 같다. “마음은 바람보다 쉽게 흐른다./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지다가/ 어느새 나는 네 심장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죽지 않는 태풍의 눈이 되고 싶다.” 시에 문외한이지만, 그리고 날씨에 관한 시가 아니지만, 시인은 바람을 두가지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바람은 그 밖에도 “공이나 튜브 따위와 같이 속이 빈 곳에 넣는 공기”, “몰래 다른 이성과 관계를 가짐” 혹은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일시적인 유행이나 분위기 또는 사상적인 경향” 등 다양한 것들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바람 빠진 공, 바람둥이, 민주화의 바람 등 실생활 속에서 흔히 등장한다.

다소 뜬금없이 바람의 정의를 찾아본 것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더 익숙하다)을 며칠 앞두고서였다. 신문 기사를 훑어보다 큼지막한 제목에 눈이 갔다. 간절한 바람의 기도. 초를 켜고 기도하는 학부모의 사진과 공부한 것만 시험에 나왔으면 좋겠다는 수험생의 바람이 담겨 있었다.

수능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수많은 수험생들이 6시간이 넘는 일생일대의 시험을 치렀다. 매년 있는 시험이지만 매번 중요한 시험.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에게는 긴장감만큼이나 간절함이 가득한 날이다. 우스갯소리지만 그 간절함이 하늘에 닿아 날씨까지 바꾼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수능 날은 춥다고. 간절함이야 여전했겠지만 다행히 올해 수능 날은 춥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물어본다. 수능 날은 왜 춥냐고. 사실 기록을 살펴보면 수능 날이라고 특별히 추웠던 것은 아니다. 수능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1993년(1994학년도 수능)부터 올해까지 총 29년을 살펴보면,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였던 날은 고작 8일뿐이었다. 특히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것은 단 하루에 불과했다. 그러니 수능 “한파”는 과장된 표현이다.

수능 한파는 최근 더욱 빈번히 등장했다. 최근 5년간 영하의 수능 날이 평소보다 잦았기 때문이다. 2017·2019·2020년 수능 날 모두 영하의 날씨였다. 하지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 특히 지난해 수능은 코로나 영향으로 12월에 치러졌기 때문에 영하의 날씨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수능 한파라는 표현은 계절적 특성 때문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수능은 보통 11월에 치러진다.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다. 그렇다 보니 하루하루 기온이 낮아진다. 체감 기온은 항상 상대적이다 보니, 수일 전보다 낮아진 기온이 더욱 춥게 느껴지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입실 시간이 이르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수험생은 아침 8시 이전에 입실한다. 평소 등교 시간보다 빠른 시간이다. 그렇다 보니 시험장이 더욱 춥게 느껴질 수 있다.

팩트체크를 떠나 수능 날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추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수험생도 학부모도 그 초조함은 어쩔 수 없다. 이제 수능이 끝나고 분주한 입학 전형이 시작되었다. 부디 모든 수험생들의 간절한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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