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서유럽 전선에 깊은 안보 우려를 갖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벨라루스와 폴란드는 모스크바로 진공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과거 소련이 동구권에 위성국가를 세워 완충지대를 구축하려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했던 이유이기도 하고, 푸틴 정부가 “우크라이나 영토에 나토의 군사적 기반이 확대되는 것”을 ‘레드라인’으로 설정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재정ㅣ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새로운 군사 분쟁의 위협이 증대하고 있다.”
최근 <뉴욕 타임스>의 안톤 트로야놉스키 기자가 경고했다. 놀라지 마시라. 한반도 얘기는 아니니까. 하지만 안심하지도 마시라. 한반도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트로야놉스키가 주목한 지역은 유럽이다. 그는 기사에서 발트해에서 흑해에 이르는 광대한 유럽에서 러시아와 서구의 경쟁이 격심해지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군사적 충돌로 불붙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호전적’ 움직임들이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인근에 “불길하게” 군사력을 증대시키고 있다.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서남부 지역 브랸스크와 쿠르스크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진행하는 모습이 위성사진으로 알려진 바 있다. 그 후에 국경 지역에 남아 있는 러시아군이 약 9만명에 이른다고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의 정보관리들은 이러한 군사력 증강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준비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나 말랴르 우크라이나 국방차관이 직설적으로 밝혔다. “올겨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불안정하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경고를 서방의 정보기관으로부터 받았다.” 최근에는 러시아 장거리 전략폭격기가 폴란드 영공 주위에 출몰을 되풀이하고 있어 이런 경고가 힘을 받고 있다.
게다가 최근 벨라루스에서 벌어진 난민 사태 뒤에도 푸틴 대통령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많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이 난민 위기에 대해 “지휘자는 푸틴 대통령”이라며 “사람들을 인간 방패로 사용한 새로운 형태의 전쟁으로 (이를 통해) 유럽연합(EU)을 불안하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새로운 형태의 전쟁인 ‘하이브리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간 <더 타임스>는 이 사태가 서방과 러시아 간 격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러시아는 왜 이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까? 푸틴 대통령의 ‘호전성’ 때문일까? 이달 초 미국은 터키,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등과 함께 흑해 공해상에서 연합 해상훈련을 벌였다. 폴란드 엄호에 나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도 유사한 해상훈련을 진행했다. 폴란드는 국경에 1만5천 병력과 탱크 등을 배치하는 등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 러시아는 서방의 이러한 군사적 움직임에 매우 민감해하고 있고, 특히 우크라이나 인근 흑해에서 벌어진 해상훈련에 격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배경에는 탈냉전 이후 벌어진 전략적 불균형이 있다. 소련에 탈냉전은 미국과 서유럽을 더 이상 적대시하지 않고 유럽의 일원으로 공동안보를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되돌아온 것은 오히려 냉전의 확대였다. 러시아는 유럽연합의 경제제재를 받는 등 여전히 배척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서유럽 중심의 군사동맹 나토는 계속 동쪽으로 확장되어왔다. 과거 동구권이었던 체코, 헝가리와 폴란드가 1999년 나토 회원국이 됐다. 2004년에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 이어 과거 소련의 일부였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마저 나토에 가입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도 나토 가입을 추진하면서 나토의 군사훈련 및 무기 지원을 받고 있다. 벨라루스까지 친서방화된다면 나토는 발트해에서 흑해까지 강력한 러시아 봉쇄망을 완결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서유럽 전선에 깊은 안보 우려를 갖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나폴레옹의 침공을 받았고 히틀러의 공격을 받았다. 벨라루스와 폴란드는 모스크바로 진공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과거 소련이 동구권에 위성국가를 세워 완충지대를 구축하려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했던 이유이기도 하고, 푸틴 정부가 “우크라이나 영토에 나토의 군사적 기반이 확대되는 것”을 ‘레드라인’으로 설정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19일 러시아와 중국 군용기들이 독도 인근 한국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한 뒤 퇴각한 사건도 유럽의 상황과 분리해서 볼 수만은 없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번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3차 연합 공중 초계활동을 벌였고, 지난달에는 중국과 러시아 군함 각 5척씩 총 10척이 일본 열도 주변을 한바퀴 돌며 사상 최초로 ‘해상연합 2021’을 실시하기도 했다.
왜? <아사히신문>의 평가가 <뉴욕 타임스>보다 솔직하다. 일본과 미국에 대한 “대응일지 모른다.” 일본은 최근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 등과 함께 일본 주변 해역에서 해상훈련을 실시했다. 이런 군사적 압박에 대한 경고와 견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