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스탠리 리버. 스탠 리는 예명이다.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판타스틱 포, 엑스맨과 토르 등 마블 만화와 영화 속 수많은 슈퍼 영웅이 이 사람 머리에서 나왔다.
스탠 리 본인 역시 여느 히어로 부럽지 않게 유명 인사기도 했다. 스스로 브랜드가 되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했다. 만화 잡지에 자투리가 나면 자기 글로 채웠고 세계 곳곳에 강연을 다녔다. 자기 만화에 직접 출연해 만화 속 인물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마블 영화에도 번번이 카메오로 등장했다(나는 주로 이 모습으로 기억한다). 나중에는 자기 이름을 딴 리얼리티 쇼에도 나왔다.
만화 창작이라는 본업을 놓지 않은 채 수십년을 이렇게 살기란 꽤나 수고로웠을 터이다. 이름값이 오를수록 미움도 샀다. 마블 사장 마틴 굿맨은 스탠 리를 질투했다. 함께 창작하던 그림 작가들은 섭섭해했다. 스탠 리가 공을 가로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거장 만화가 잭 커비와 스티브 딧코가 그렇게 스탠 리의 곁을 떠났다.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을 딴 벤처기업 스탠 리 미디어를 세웠는데, 공동 창업자 피터 폴은 사기꾼이었고 회사가 망하며 스탠 리도 낯이 깎였다.
그래도 스탠 리는 멈추지 않았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일을 했을까?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을지도 모른다. 생애 대부분을 ‘을’의 처지로 살았던 스탠 리. 굿맨 사장이 갑일 때 스탠 리는 을이었고, 디시(DC) 만화가 갑일 때 그가 몸담은 마블은 을이었다. ‘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름값을 올려 ‘슈퍼 을’이 되어야 한다.
스탠 리는 살아남았다. 회사가 인수합병되며 굿맨 사장이 물러날 때도 스탠 리는 남았고 만화와 영화에서 마블은 디시 못지않게 성장했다. 돈과 명성만 좇지도 않았다. 세상에 보탬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젊은 사람에게 위안과 영감을 주었다. 만화책 검열 규정을 무력화시키는 데도 앞장섰고, 인종차별과 편견에도 맞섰다. “특정 인종을 차별하고 특정 나라를 멸시하고 특정 종교를 비방하는 일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 1968년에 만화책에 썼다. 세상을 떠난 날이 2018년 11월12일이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