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한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21일 오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다. 사진은 누리호 발사 장면 53장을 레이어 합성해 만들었다. 고흥/사진공동취재단
손석우ㅣ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얼음이 부서지고 설탕 가루 같은 것이 흩날렸다. 그러다 곧 불꽃이 치솟았다. 꿈쩍도 하지 않을 것만 같던 거대한 로켓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면 속 로켓은 얼핏 장난감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변 건물과 비교하면 엄청난 구조물임은 틀림없었다. 그 커다란 구조물이 서서히 그리고 빠르게 하늘로 치솟았다.
순수 대한민국의 힘으로 하늘을 연 순간이었다. 단군왕검이 나라를 세운 것을 기념하는 개천절. 우주에 첫 이정표를 세운 것은 또 다른 개천일이라 부를 만하다.
마치 내 것인 것처럼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십수분이 지나고 드디어 누리호가 목표 고도에 도달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아쉽게도 모형 위성은 궤도에 안착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만하면 대성공이다.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수많은 과학자들과 기술자들, 그리고 행정지원을 아끼지 않은 모든 기관들이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하늘을 가르는 누리호를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누리호 발사에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 여기에는 기상학자도 포함된다. 발사 며칠 전부터 기상청과 공군에서 파견 나온 일기예보관들과 대학교수들이 실시간으로 날씨를 감시하고 일기예보를 면밀하게 살폈다. 성공적인 로켓 발사를 위해서는 평온한 날씨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구름이 많거나 비가 내린다면 로켓 발사를 미루는 것이 좋다. 그저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 아니다. 행여 번개라도 친다면 로켓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가 안 오더라도 구름은 관심 대상이다. 맑은 날에도 번개가 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종종 발생하는 현상이다.
바람도 로켓 발사에 큰 영향을 끼친다. 초속 7~8미터 이하의 잔잔한 바람이 좋다. 만약 지상에서 수 킬로미터까지 바람이 급격하게 변한다면 로켓 발사에 치명적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상층 제트기류가 초속 100미터 이상 강하다면 발사를 멈추는 것이 좋다. 기압이나 기온과 달리 바람은 순간순간 급변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감시하고 최대한 정확하게 예보하기 위해 기상학자들이 며칠간 나로도에 상주했던 것이다.
“모든 놀라운 일들은 하늘에서 시작된다.” <에어로너츠>라는 영화를 소개하는 웹사이트에 나오는 문구다. 지난해 개봉한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기구 조종사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에 대한 소개는 다음과 같다. 19세기 런던, 날씨를 예측하고 싶었던 기상학자 제임스와 하늘 높이 날고 싶었던 열기구 조종사 어밀리아. 그들은 기구를 타고 일생일대의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데…. 화면을 가득 채운 적란운과 폭풍우 위로 펼쳐진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인상적인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지만 사실 열기구 조종사 어밀리아는 실존인물이 아니다. 제임스 글레이셔와 함께 고도 1만미터 상공을 세계 최초로 비행한 인물은 헨리 콕스웰이었다. 그 외에는 상당 부분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제임스는 왕립기상학회 창립자의 한 사람으로 일기예보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예보를 위해 정확한 날씨 정보가 필요했고 이를 수집하기 위해 비행을 계획한 것이었다. 실제로 제임스는 비행 중 고도에 따른 기온과 습도의 변화를 기록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관측 기록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그의 비행을 계기로 상층으로 갈수록 수증기가 급격히 줄어들고 기온이 하강한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비구름 위는 오히려 맑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제임스 글레이셔의 비행은 이후 고고도 항공기와 로켓 개발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은 이제 시작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발전하고 있다. 영화 소개 문구를 다음과 같이 조금 바꾸고 싶다.
“모든 놀라운 일들은 대한민국 하늘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