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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어쩔 수 없어” 고문하는 나라

등록 2021-10-08 04:59수정 2021-10-08 19:07

화성외국인보호소에 머무르는 ㄱ씨가 지난 6월10일 보호소 공무원들에 의해 뒷수갑을 찬 채 포승줄로 두 발이 묶인 이른바 ‘새우꺾기’ 자세를 한 채 독방으로 된 특별계호실에 격리됐다. 특별계호실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 갈무리·ㄱ씨 대리인단 제공
화성외국인보호소에 머무르는 ㄱ씨가 지난 6월10일 보호소 공무원들에 의해 뒷수갑을 찬 채 포승줄로 두 발이 묶인 이른바 ‘새우꺾기’ 자세를 한 채 독방으로 된 특별계호실에 격리됐다. 특별계호실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 갈무리·ㄱ씨 대리인단 제공

[세상읽기] 황필규|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2004년 6월이었다. 경기도 화성외국인보호소를 처음 방문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들의 실태조사에 참여했다. 충격이었다. 법률에 규정돼야 할 독방구금, 면회나 통신의 제한 등 중대한 기본권 제한이 법무부령이나 훈령에만 규정되어 있었다. 공익근무요원이 여성의 방을 폐회로텔레비전(CCTV·시시티브이)을 통해 하루 종일 들여다봐도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수준이었다. 닫힌 사회에서 버림받고 갇힌 이들과 이렇게 처음 만났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의 일환으로 전국 외국인 구금시설을 살폈다. 무차별 단속으로 공간이 부족해지자 좁은 화장실에서 여러명이 자야 했다. 한쪽 구석에는 정신장애인이 혼자 중얼거리며 방치되어 있었다. 교도소의 일부가 출입국 보호시설로 쓰이는 사례도 접했고, 매주 종교행사를 위해 이동할 때 수갑을 채우는 보호시설도 있었다. 오랜 기간 외국인 구금시설을 규율해온 법무부령, 곧 외국인보호규칙의 개정 전 명칭은 외국인‘수용’규칙이었다.

그 뒤로 거의 매년 국가인권위와 대한변호사협회 등의 외국인구금시설에 대한 실태조사와 감시, 관련 권고가 이루어졌다. 일부 개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크게 바뀌지 않았다. 법적 근거가 없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자 훈령으로 존재했던 문제 많은 규정들을 법률로 끌어올렸다. 한 보호 외국인 사망 후 진상규명을 위해 시시티브이 영상을 보자는 요청에 녹화된 것이 없다고 당국은 끝까지 우겼다. 부끄럽다. 바뀐 것이 없다면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자도 공범이다.

2021년 화성외국인보호소. 수시로 독방구금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손과 발에 각각 뒷수갑을 채운 채, 묶인 손발을 다시 포승줄로 연결한 이른바 ‘새우 꺾기’ 고문이 행해졌다. 독방구금 일시 등을 알고자 하는 요청에 대해서는 문서번호가 동일하고, 구금에 대한 통지가 구금 후 2~3개월이 지난 뒤에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 있는 장난 수준의 조작 공문서들이 던져졌다.

국가인권위 진정,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출입국본부) 간부들과의 면담, 대화 등을 통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다. 법무부의 반응을 보면 참담해진다. 처음에는 법과 원칙에 근거한 것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거 규정은 연구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장면이니 잘 해결해보자고 했다가, 또 며칠 뒤엔 불가피한 최소한의 조치였고 보호 외국인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언론에 알렸다.

무엇보다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은 고문과 공문서 조작의 문제 제기에 대해 법무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입소 전 행적’까지 들먹이며 해당 외국인이 얼마나 괴물인지를 내세우고 그의 사진과 영상까지 무차별적으로 배포하였다는 사실이다. 섬뜩했다. 위 면담이나 대화 때 복수의 출입국본부 간부가 했던, 이 사건을 언론에 알리면 외국인 혐오세력의 제대로 된 반격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가 단순 협박 그 이상이었음을 확인했다. 안전을 위해, 자해를 방지하기 위해 고문행위를 했다는 변명 속에서 이주민들이 도망칠까 봐 잠금장치를 열어주지 않았다는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의 잔인하고 비겁했던 가해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법무부 인권국에서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했다. 법무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이 사건에 대해 극히 유감임을 밝히고, 새우 꺾기가 규정에 없는 과도한 조치라는 점을 확인하고 제도 개선을 깊이 고민하겠다고 했다.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철저하게 책임을 회피하고 외국인 혐오를 적극적으로 조장하는 입장이 법무부의 공식 문서로 유포되는 것을 방치한 상황에서 충분히 신뢰하기 어렵다. 특히 그동안 상당 부분 법무부의 정책 실패에 기인한 외국인 혐오주의와 인종주의 경향의 발생을 피해자 격인 이주민들 탓으로 돌리는 듯한 행보를 보여왔던 법무부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함께 잘 풀어갔으면 좋겠다.

이번 사건을 그동안의 문제를 드러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법무부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당장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불법행위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물론 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 마련 등 제도적 접근에 나서야 한다. 피해 이주민 당사자에 대해서는 일시보호해제를 실시하고 정신심리치료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어쩔 수 없어” 고문하는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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