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는 정치와 정책 그리고 정략에서 ‘견고하면서도 우아한 설계’를 하고자 했다. 그래야만 대범하고 과감하게 결단하고 결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실에 대한 해결책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이다. 위정자의 능력이 문제해결 능력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마키아벨리는 일찍이 ‘정치적 디자이너’라는 과제를 제기한 것이다.
김용석ㅣ철학자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궁수의 비유’를 든다. 노련한 궁수는 멀리 떨어져 있는 목표를 맞히려고 할 때 그 목표보다 훨씬 더 높은 곳을 겨누는데, 이는 화살을 그 높이에 이르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높은 곳을 겨냥한 덕분으로 화살이 원래 목표했던 곳까지 날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많은 학자들이 궁수의 비유를 인용한다. 그러면서 이를 ‘높은 곳을 겨냥하는 궁수’처럼 군주는 저 높은 곳에 있는 위대한 선인들의 행적을 따르고 모방해야 큰 업적을 이룰 수 있다는 교훈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 비유를 ‘디자인’(design)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좀 더 풍성한 해석의 수확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런데 군주를 논하는 데 생뚱맞게 웬 디자인? 염려마시라! 엉뚱한 것처럼 보이는 관점이 때론 고전 텍스트의 심층을 건드리기도 하니까 말이다.
마키아벨리는 궁수가 노리는 과녁을 “맞히려고 설계한 지점”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화살이 과녁에 적중한 것을 “설계를 달성하다”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설계하다’라는 동사에 해당하는 말은 이탈리아어로 ‘디세냐레’(disegnare)이다. ‘설계’라는 명사는 ‘디세뇨’(disegno)이다. 이제 생뚱맞은 느낌이 좀 누그러졌으리라. 디세뇨는 르네상스 문화를 대표하는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그 예술적 개념을 ‘그 의미 그대로’ 자신의 정치사상을 전개하는 데에 활용한 것이다. 디세뇨의 개념에는 ‘능동적 설계’라는 의미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디자인이란 말을 그 사전적 정의처럼 “의상, 공업 제품, 건축 등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조형 작품의 설계나 도안”이라는 의미로 주로 쓴다. 그래서 디자인과 그 역사에 관한 전문 서적도 그런 분야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데에 한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응용미술’과 디자인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하지만 디자인이란 언어의 뿌리가 품고 있는 의미는 정통 고전 예술의 변천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미학사에서 예술에 디세뇨의 개념을 도입한 사람은 첸니니이다. 1400년경에 등장한 이 개념은 르네상스 미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 첸니니에게 디세뇨라는 용어는 두가지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이는 현대 이탈리아어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소묘라는 의미(디세뇨에서 유래한 프랑스어의 ‘데생’(dessin)을 상기해보라)와 함께 ‘예술가의 의도와 설계’를 뜻했다. 물론 두 의미는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디세뇨의 개념이 예술 행위의 능동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현대인에게는 이 말이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예술의 이런 능동성은 고대 미학에서 모방(mimesis), 특히 자연 모방의 개념이 지니고 있었던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성격을 전복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미메시스는 자연을 발견해서 자연의 실재를 재현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자연의 발견은 예술 행위의 목표이기도 했다. 자연의 원리와 실재를 발견한다는 진(眞)의 개념이 미(美)를 표현하는 예술의 개념에 우선했던 것이다. 이는 곧 예술 작품이 참된 세상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예술 행위가 진리 탐구에 의존적이라서 독립적 영역을 갖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반면 첸니니는 예술가의 권리로서 창작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는 “화가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다양한 형상을 만들어낼 자유가 주어졌다”라고 했다. 첸니니는 실재를 재현한다는 고대 자연 모방의 개념을 부활시키면서도 그것을 예술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간주했다. 이제 작가는 능동적으로 거리낌 없이 자연의 진리를 예술의 미적 완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이는 당시에 커다란 인식의 전환이었다.
문예부흥기에 고대의 가치들은 부활했지만 그것을 대하는 르네상스인들의 태도는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건축론>으로 유명한 알베르티는 “디세뇨는 견고하면서도 우아한 설계”여야 한다고 했다. 다빈치는 디세뇨 작업의 목표는 “설계에 따라 예술 작품의 완벽한 결말”을 얻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켈란젤로는 “디세뇨의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기보다는 자신의 상상력을 미적 형상으로 실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키아벨리는 이와 유사한 일을 정치의 영역에서 실천하고자 했다. 그는 당시 문화 변동을 몸과 마음으로 깊숙이 감지하고 있었다. 문화 변동은 정치 변동과 연동된다. 당시 예술가들이 작품의 완벽한 결말에 도달하기 위해 활용할 수단에 대해서 고민했듯이, 마키아벨리는 정치 행위가 가능한 한 최고의 결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정치적 목적에 맞는 수단은 무엇인가 고민했다. 이에 그의 사상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부상한 것이다. ‘목적-수단의 적합성’이 그것이다. 정치란 목적과 수단의 적합성을 디자인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궁수의 비유는 그것을 압축해서 보여준 것이다.
마키아벨리에게 통치자는 ‘정치적 디세뇨’에 따라 공동체적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기 위한 수단을 선택해서 조직해야 하는 존재다. 치밀하고 정교한 계획으로 목표를 설정하는 것만큼이나 주도면밀하게 수단을 선택하고 조직하며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에게 ‘수단 방법 가리지 않다’라는 명제는 통하지 않는다. ‘수단 방법을 신중하고 치밀하게 가리는 것’이 목표 달성의 과정에서 실수를 최소화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와 정책 그리고 정략에서 ‘견고하면서도 우아한 설계’를 하고자 했다. 그래야만 대범하고 과감하게 결단하고 결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실에 대한 해결책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이다. 위정자의 능력이 문제해결 능력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마키아벨리는 일찍이 ‘정치적 디자이너’라는 과제를 제기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국정을 위한 ‘수석 디자이너’를 뽑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우후죽순처럼 나서고 있는 후보자들은 곧 다가올 미래의 상황에 맞는 공동체의 목적을 제시하고 있는가. 그에 따른 정책과 수단은 치밀하고 정교하게 검토되고 있는가. 목적과 수단의 적합성에 관한 고민과 성찰은 있는가. 이는 그들이 받아야 할 아주 기본적인 질문이다. 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도 있다. 모든 정치적 목표는 멀리 떨어진 과녁처럼 어렵다는 것, 그러므로 더없이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 더! 디자인은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아름다움과 밀접하다. 정치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은 아름답지는 못할지언정 ‘추한 정치’는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