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계약은 원청 입장에서 경제적으로 마이너스일 수 있다. 그렇다면 원청기업은 이런 비효율적 하청을 왜 도입하는 것일까. 비용과 위험을 하청을 통해 전가할 수 있다는 점 외, ‘기업 내에서의 지대 추구 행위’도 이유 중 하나다. 원청기업의 (고위)직원들이 자신의 배타적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회사 전체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 생산방식을 만들어나간다는 것이다. 이런 ‘한몫 챙기기’는 2차, 3차 하청을 통해 꼼꼼히 구조화된다.
이상헌ㅣ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10년도 훌쩍 넘은 때의 일이다. 중국에서 공공부문 임금이 문제가 되어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중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관련 논의를 하러 베이징에 갔었다. 늘 그렇듯이 공공부문 임금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사안들이 얽혀 있어서 중국에서도 이미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가 되어 있었다. 공공부문 종사자들은 박봉을 탓했지만, 바깥의 시각은 정반대였다. 민간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임금이고, 이 때문에 이제 막 자라나던 민간기업 부문의 임금도 들썩거린다는 것이었다. 당시 공공기업의 민영화가 실업과 임금 삭감을 유발하며 고통스럽게 진행되고 있던 터라, 공공부문의 고용 안정과 상대적 고임금을 고깝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연히 논의는 어려웠다.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따져보고 결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런 자리가 만들어졌고, 나도 거기에 불려 갔다. 중국식으로 ‘허심탄회’하게 진행되었고 ‘이방인’이 함께한 자리였으니, 오고 가는 말 속의 크고 작은 가시를 알아채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날 선 말들이 오갔다. 민간기업 대표자는 정부의 ‘느슨하고 비체계적인’ 임금 관리 정책을 비판했고, 노동조합은 정부 편을 들었다. 정부 대표는 무덤덤하게 듣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장시간 회의에 진전은 없고 쳇바퀴만 돌았다.
이에, 기업 대표가 발끈해서 한마디 했다. “솔직해지자. 정부가 다른 현안과 달리 공공부문 임금에 유독 느슨한 것은 정부의 퇴직관료가 공공부문 기업에 옮겨 가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규제해야 할 사람이 곧 규제 대상의 자리로 옮겨 갈 것이기 때문에 관료의 ‘사익’이 ‘공익’에 앞선다는 비난이었다. 규제자가 피규제자에 의해 ‘포획’되고 있다는 것. 순식간 회의장에는 찬 기운이 돌기 시작했고, 서로 눈치만 살피다가 회의는 끝났다.
규제해야 할 사람이나 기관이 자신의 개별적인 이익 때문에 피규제 대상에 의해 포획됨으로써 규제가 공익이 아니라 특수이익에 봉사하게 된다는 이론은 경제학에서 “규제포획”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부나 공공의 역할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비효율적 정부와 효율적인 기업”이라는 등식으로 비약되긴 하지만, 규제와 관련한 정부관료의 사익 추구는 항상적인 위험요인으로 존재한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러한 ‘지대 추구 행위’는 새로운 규제의 도입이나 기존 규제의 강화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규제 완화에서도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정부 일을 하다가 기업이나 관련 민간기관으로 이동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이것이 ‘전문성 강화’나 ‘경제효율성 제고’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지지만 실제로는 ‘민원 해결 창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필요불가결해 보이는 규제 완화조차도 쉽사리 의심의 대상이 된다.
최근 상황은 더 복잡하다. 정부나 공공부문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간기업에도 유사한 ‘포획’ 사례가 많이 보인다. 하청이나 용역이 대표적이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간접노동을 매개하는 하청업체들의 상당수는 사실상 노동자를 채용하고 해당 임금을 전달하는 ‘한정적’ 역할을 한다. 채용비용이나 관련 유지비용을 제외하고는 큰 규모의 운용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 하청을 받아 재하청에 넘기는 경우는 더 그렇다.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 보자면, 하청 구조는 전반적인 생산성을 유지하면서도 이런 비용을 줄여줄 때에만 그 필요성이 인정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존재하는 하청 구조는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예컨대, 원청기업으로부터 임금 몫으로 받은 노무비와 노동자가 받은 실제 임금 간에 차이는 크다. 김용균의 사망사고를 조사한 위원회에 따르면, 그 차이는 40~50%에 달한다. 용역업체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큰 차이다. 게다가 용역업체 ‘서비스’가 창출한 ‘부가가치’는 극히 제한적이지 않은가. 여기서 무수한 문제들이 생겨난다. 저임금과 산업재해를 비롯한 열악한 노동조건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생산 손실도 만만치 않다. 이 모든 것이 종국적으로는 전반적인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고려한다면, 하청계약은 원청 입장에서 경제적으로 마이너스일 수 있다.
그렇다면 원청기업은 이런 비효율적 하청을 왜 도입하는 것일까. 비용과 위험을 하청을 통해 전가할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여러가지 간단치 않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기업 내에서의 지대 추구 행위’도 그런 이유 중 하나다. 원청기업의 (고위)직원들이 자신의 배타적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회사 전체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 생산방식을 만들어나간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일보> 기자들이 펴낸 <중간착취의 지옥도>에 따르면, 한국의 대표적 자동차 회사의 용역업체는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임원이나 부장들이 정년퇴임 이후에 한 번 거쳐가는 코스. 마지막으로 한몫 챙기는 자리”다. 이들의 월급은 앞서 말한 노무비와 임금의 격차에서 조달된다. 더구나 이런 ‘한몫 챙기기’는 2차, 3차 하청을 통해 꼼꼼히 구조화된다. 제조업 하청의 흔한 풍경이다.
한국식 ‘가족사랑’도 빠지지 않는다. 전자제품 시장에서 선두권에 있는 어느 기업은 자신의 친인척을 위해 기업 건물을 전담하는 청소용역업체 기업을 세웠다. 청소비는 후하게 지급되었으나, 청소노동자에게 돌아간 몫은 박했다. 그리고 문제가 될 때마다 원청기업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노무비 분배는 하청업체의 권한일 뿐이고 원청기업과는 무관하다는 것. 애당초 자본주의적 기업이 금과옥조로 삼는 ‘경제적 효율성’에 반한 것이었으니, 원청기업은 하청업체의 생산과 노동 문제에는 ‘의도적으로’ 둔감했다. 최근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만, 속도는 더디고 방향은 제각각이다.
결국 기업 내의 ‘지대 추구 행위’를 통제하지 않는다면 간접노동의 현실은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파편화되고 차별적인 노동시장은 노동과 노동 간의 갈등을 초래했고, 또 그만큼 노동자들의 연대와 조직이 절실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간접노동에 대한 ‘비효율적’ 수요를 없애지 않는다면, 힘겨운 오르막 싸움만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이런 행위의 유인을 만들어내는 기업경영 또는 지배구조를 원천적으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경영 효율화와 생산성 향상과는 거리가 먼 행위인 만큼,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설 일이기도 하다. “기업의 자유” 뒤에 숨을 일은 아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법률적 규제가 가능해도 복잡할 것이고 경제적 처벌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10년 전 베이징 회의에서의 그 누군가처럼 엷게 웃고만 있을 수는 없다. 드라마 시리즈 <d*p>의 대사처럼,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