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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손석우의 바람]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

등록 2021-08-29 21:56수정 2021-08-30 02:35

손석우ㅣ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아이올로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다. 그런데 매우 낯설다. 계보도 불분명하다. 어디에는 헬렌의 아들로 설명되었다가, 어디에는 포세이돈의 아들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나마 잘 알려진 이야기는 오디세우스 편이다. 트로이 전쟁 후 귀향하는 오디세우스에게 배의 순항을 위한 바람주머니를 건네주는 역할로 등장한다. 이 바람주머니에는 오디세우스가 고향까지 가는 데 필요한 바람보다 훨씬 많은 바람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탐욕스러운 그의 부하들이 바람주머니를 보물주머니로 착각하고 주머니를 열어 버리고 만다. 배는 목적지를 훌쩍 지나가 버리고, 오디세우스는 수년이 더 지나고서야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부하들을 다 잃고서.

존재감 없던 이 이름은 2019년 전세계 미디어에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아이올로스’라는 인공위성 때문이었다. 당시 미디어는 인공위성 충돌 위험을 대서특필했다. 초고속 우주 인터넷망을 구축하고자 스페이스엑스(X)가 시작한 스타링크 프로젝트. 당시 44기의 스타링크 위성이 지구궤도를 돌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유럽 우주국의 아이올로스 위성과 충돌할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다행히도 아이올로스 위성이 고도를 높이면서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당시 미디어의 관심은 온통 스페이스엑스의 스타링크 위성이었다. 반면 과학자들은 아이올로스 위성만 지켜보고 있었다. 스타링크 위성은 현재 1800여 기가 지구궤도를 돌고 있으며, 앞으로 총 1만2000기까지 증설될 예정이다. 이에 반해 아이올로스 위성은 전세계 단 하나밖에 없는 대체 불가능한 위성이다.

아이올로스 위성, 이름 그대로 바람을 관측하는 위성이다. 사실 우주에서 바람을 관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구름 사진을 찍는 일상적인 기상위성들이 1960년대 발사된 것과 달리, 기술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아이올로스 위성은 2018년에야 발사되었다. 최근 자율주행에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라이다’의 원리를 이용했다. 일반적으로 라이다는 자외선 레이저를 물체에 쏘았을 때 반사되어 되돌아오는 빛을 측정해서 물체의 위치와 이동속도를 측정한다. 동일한 원리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에 적용한 것이다.

아이올로스는 일기예보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일기예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초기 관측이다. 관측이 부실하면 예보 또한 부실할 수밖에 없다. 육상은 그나마 문제가 덜하다. 각국 기상청이 지상과 하늘에서 다각도로 관측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상이다. 바다 위에는 정확한 관측 자료가 매우 제한적이다. 그렇다 보니 항공기와 인공위성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코로나19로 인해 아이올로스 위성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전세계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바람을 관측하는 것 중 하나가 민간 항공기다. 비행기를 타 봤다면 안내 화면을 통해 항공기 앞바람과 뒷바람 정보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항공기 운항과 직결되기 때문에 항공기에는 매우 정확하게 바람을 측정할 수 있는 장비가 장착되어 있다. 이렇게 측정된 바람은 지상에 있는 기지국을 통해 각국 기상청에 전달된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국제선 항공기 운항이 대폭 축소되면서, 전 지구 바람 관측에 큰 문제가 생겼다. 이를 아이올로스 위성이 해결하고 있다. 유일무이한 바람의 신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이올로스 위성의 설계 수명은 3년밖에 되지 않는다. 어쩌면 올해 혹은 내년에 그 기능을 다할 수 있다. 애초에 바람 관측 가능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시험 발사되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바람 관측의 전부가 되어 버린 아이올로스 위성. 새로운 위성이 발사되기 전까지 바람의 신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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