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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빼앗긴 언어를 되찾는 방법

등록 2021-08-26 14:06수정 2021-08-27 02:34

[환상타파]

전명윤|아시아 역사문화 탐구자

어릴 적, 놀 공간이 골목뿐이었던 시절. 그 당시 우리가 했던 놀이는 지금 와 생각해보면 뭐가 재미있다고 그리 낄낄거리며 따라 했는지 모를 것투성이다. 그중에는 어깨동무를 한 채 ‘어깨동무 새동무 미나리 밭에 앉았다’라는 짧은 노래를 부르고 동시에 주저앉는 놀이가 있었다. 노래가 끝난 직후 동시에 주저앉아야 하는데, 이 타이밍을 함께 맞추지 못하면 어깨동무는 무너지고, 심한 경우 둘 다 나뒹굴었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진학하니 ‘동무’라는 말이 금기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북한은 Comrade라는 단어를 동무라고 번역했고 이를 상대방을 지칭하는 광범위한 표현으로 만들었다. 남쪽에서 동무라는 단어가 사라진 이유는 걔들이 쓰니 우린 쓰지 말자였다.

그 시절에는 <소년중앙>, <새소년>, 그리고 <어깨동무>라는 잡지가 3대 어린이 잡지로 널리 읽혔는데 그중 <어깨동무>는 심지어 육영재단에서 만들던 책이었다. ‘어깨동무’는 광범위한 동무란 단어 사용 금기에도 불구하고 육영재단의 세례를 받아 유일하게 사용이 허가(?)됐다. 그렇게 외적 요인에 의해 동무는 친구로, 인민은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갈음되어야 했다.

우리와 생각이 다른, 반대되는 입장의 사람들이 선점한 단어라 사용해서는 안 됐던 과거만큼이나 요즘은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뜻을 비틀어 사용하는 단어이기에 사용해서는 안 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사용자들이 주로 쓰는 단어들을 회피하는 건 꽤나 피곤한 일이다. “일베 하냐”는 말은 3기 민주정부라는 요즘엔 낙인 혹은 상대방에 대한 공격 용도로 사용되는데, 문제는 그들이 원뜻을 비튼 용어도 상당히 많은지라 의식하지 않으면 알아내기도 어렵고, 욕은 빨리 배운다고 그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멸칭의 의미가 엄청난 확장성을 띠다 보니 요즘은 이걸 따로 학습해 의식적으로 피휘(避諱)하는 게 옳은 걸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얼마 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유칼립투스 잎을 먹는 귀여운 동물 이야기를 꺼냈다 누군가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을 받았다. 일베 유저들이 고인이 된 대통령과 그 동물 이미지를 합성해 조롱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이쯤 되자 이건 피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사람들이 만드는 멸칭, 그중에서도 원뜻이 그렇지 않음에도 누군가가 의도해 특정 단어를 멸칭으로 만들 때 매번 그 단어의 사용을 피하면서 내가 ‘PC(정치적 올바름)하다’는 걸 증명하는 건 과연 옳은 일일까?

‘장님’은 애초 시각장애인을 지칭하는 높임말이었다. 한국어에 ‘님’이 붙는 단어가 멸칭일 리 없고 80년대쯤 발행된 국어사전에는 분명히 높임말이라고 적혀 있다. 문제는 이 말을 누군가 멸시의 의미로 쓰기 시작했고 그 의미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현재 이 단어는 멸칭으로 분류된다. 한동안 장님이 멸칭이라 해 십수년간 ‘맹인’이 순화어로 자리매김했고, 그 또한 멸칭의 자리를 차지하며 오늘날에는 ‘시각장애인’이 공식 순화·대체어다. 하지만 아무리 순화어를 만들어도 악의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했다. 그들이 멸칭의 뜻을 담을 때마다 우리는 대체어를 만들어 도망치는 중인데, 결국 우리가 쓸 수 없는 단어들만 계속 늘어나는 중이고 대체·순화어의 수명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이러다간 한국어 어휘의 한계로 인해 대체어 생성이 불가능한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혐오자들이 만드는 신조어에 모두가 둔감해질 수는 없는 걸까? 사실 그들의 말을 확산시킨 건 그들을 비판하면서 어느새 따라 하고 있는 우리들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들이 ‘운지’라는 말을 쓰면 ‘그게 순우리말로는 구름버섯이라고 하지. 약용으로 쓰인다더군. 청량리에 가니 많이 팔더라’는 식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자. 그들이 만드는 언어의 규칙을 그냥 그들 안에 가둬버리고 우리는 못 알아들음으로 확산을 막아보는 건 어떨까? 혐오 단어를 피해 도망 다닐수록 외려 그들이 만드는 혐오 단어의 세계만 점점 더 확장됨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동무처럼 인민처럼. 더이상 잃어버리는 단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빼앗긴 언어를 그들로부터 되찾아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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