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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변희수 하사는 아직 싸우고 있다

등록 2021-08-12 15:15수정 2021-08-13 02:36

비온 뒤 무지개
한채윤|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고 변희수 전 육군 하사의 강제전역 취소 행정소송이 지금 한창 진행 중이다. 오는 19일 4차 변론기일이 예정되어 있고 아마도 9월쯤엔 1심 판결이 나올 것이다. 당사자가 세상을 떠났는데 어떻게 소송이 가능한가 싶겠지만, 변 전 하사가 생전에 제기했던 소송을 유족이 이어받았다. 이 소송의 핵심은 단 하나다. 육군본부가 2020년 1월22일에 내린 전역 처분이 적합한가, 부당한가 여부다. 사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재판부보다 앞서 이 사안을 조사했던 국가인권위원회가 전역 처분이 잘못되었으니 시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2020년 12월에 내린 바 있기 때문이다.

흔히 군인이 성전환을 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육군의 복무 부적격 판정 사유에는 ‘성전환’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육군은 2020년 2월11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변 전 하사의 전역 결정에서 “성전환 수술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즉 트랜스젠더라서가 아니라 남성 군인으로서 고환과 음경을 훼손하고 기능을 상실하여 심신장애 3급에 해당하고, 군인사법 37조와 군인사법 시행규칙 53조에 따라 전역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언뜻 정당한 주장 같겠지만 변 전 하사가 군에 입대한 2017년에서 전역 전인 2019년까지 3년간의 기록만 살펴보아도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받은 부사관과 장교 194명 중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도 강제 전역을 당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한편, 여군으로 정당하게 재입대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고 변 전 하사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현행 제도상으로 변 전 하사가 설사 여군 부사관 시험에 응시한다 해도 결코 합격할 수는 없다. 부사관은 신체검사에서 ‘육군규정 161 건강관리규정’에 따라 최소 3급을 받아야 하는데, 관리규정표에 따르면 성전환 수술을 했으면 5급으로 분류된다.

차라리 육군본부가 ‘트랜스젠더라서 전역시켰고 트랜스젠더 군인을 원하지 않는다’고 속내를 정확히 밝혔다면 불필요한 오해나 논란, 비난에 변 전 하사가 시달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여군으로든 남군으로든 이 땅에서 트랜스젠더는 자신을 솔직하게 밝히는 순간 군인이 될 수 없음을 모든 국민이 바로 알았을 테니까. 이 일이 헌법 제15조에 명시된 ‘모든 국민은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기본권이 트랜스젠더 국민들에게 적용되는가에 관한 문제임도 명료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트랜스젠더라면 다른 직업은 몰라도 군인이란 직업만큼은 특별히 제한되어야 하는가? 미국이나 유럽 등 이미 다른 국가에서 트랜스젠더 군인이 훌륭하게 군복무를 수행하고 있음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이런 주제를 두고 우리 사회는 성숙한 토론을 시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육군본부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은 아닌 양 했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비겁할 뿐이다. 통상 전역심사위원회에서 전역 결정을 내릴 때 정들었던 동료들과 인사하고 신변을 정리할 수 있도록 공식 전역일은 몇주간 여유를 두는 관례와 달리 변 전 하사는 전역 심사가 열린 당일에 바로 전역당했다. 말 그대로 군대에서 내쫓긴 형상이다. 또 군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하려면 먼저 인사소청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30일 내로 나와야 할 심사 결과가 변 전 하사의 경우엔 무려 5개월 후에야 나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재판이 열렸지만 피고로서 육군본부는 소명 자료를 단 하나도 제출하지 않았다. 판사가 이런 나태함을 지적해도 육군본부는 재판 쟁점과 상관없는 전역 이후 변 전 하사의 모든 병원 기록의 제출을 요구하는 등 고인에 대한 인권 침해를 저지르고 있다.

물론, 이제 와 전역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이 나온다고 해도 우리는 다시 군인으로서의 변희수를 만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재판에서 승소하는 것은 중요하다. ‘대한민국을 위한 헌신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초석을 쌓는 것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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