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이렇게 굴러간다면 문 대통령은 국정농단 및 정경유착 주범과 한 편이 되어 ‘법치주의의 근간과 공정의 시대가치를 무너뜨리고’(781명의 지식인선언) 촛불정부의 자기정체성을 부정했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이 정부의 무능과 위선에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민심의 흐름은 정권교체 쪽이 우세하다고 한다. 하지만 거칠게 보수 본색을 드러내다가 ‘국민의힘’ 품 안에 안긴 윤석열의 행태를 보노라면, 설사 정권이 교체된다 한들 도무지 나라 꼴이 개선될 것 같지 않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깨어 있는 시민이라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묻지마 성장을 최고 가치로 떠받들며 거대 자본과 자산 부자들이 불로소득 잔치를 벌이고 불안정 노동을 양산하는 자산 불평등 축적 체제, 이익은 사유화하고 비용은 생태계와 사회에 마구 전가해온 무책임 불공정 체제, 허울 좋은 자유와 공공성을 벗어던진 작은 정부 깃발 아래 다수 대중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그 실질적 자유를 껍데기로 만든 시장만능주의 특혜 체제는 지속 불가능한 궁지에 빠졌다. 뜨거워진 지구가 역습을 가해 왔다. 강자와 부자의 포로가 된 중도자유주의 정부가 우익 포퓰리즘 및 신종 권위주의의 위협 앞에 허둥대고 있다. 허약한 민주주의가 왜 무너지는지, 쇄신된 민주적 대안은 어떠해야 하는지 사람들은 크게 깨닫고 있다.
유례없는 복합 위기를 몰고 온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며 반생태적인 구체제를 어떻게 사회생태적으로, 정의롭게 반전시켜 낼까. 기후회복력을 가지며, 보통 사람의 ‘공유 필요’―기본소득이 아니라― 충족 및 삶의 질 증진을 최우선 과제로 받아 안는 생태복지국가로 가는 돌파구를 어떻게 열까. 다름 아닌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풀어야 할 전환의 정치 물음이다. 그 응답 능력에 따라 나라의 진로, 국민 대중의 삶의 모양새가 달라지고 지구촌 인류의 운명이 뒤바뀐다.
정의로운 생태복지국가의 새판짜기를 도모하는 담대한 전환의 정치는 강력하고 유능한 책임정부를 요구한다. 이 미션 지향 경성(hard) 정부는 단지 시장 수용성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시장을 재구성(shaping)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평등하고 공정한 가치 구현을 위해 기득권 세력의 횡포를 규율하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기조를 견지해야 한다.
기득권 세력에 대한 강력한 책임정부의 규율 능력 문제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마리아나 마추카토의 <미션 경제>론에는 빠져 있는데 민주정부의 신뢰 회복, 정부와 대기업의 건강한 파트너십 재건을 위해서라도 사활을 걸어야 할 만큼 중요한 지점이다. 이게 안 되면 우리는 별수 없이 구체제의 변이 속에서 살아가야 하며, 사회생태적 전환의 정치는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공멸할 기후위기 속에서도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구체제의 발본적 극복 전망 없이는 보통 사람들은 먼 산 보듯 하거나 속절없이 구체제의 지배력에 포섭될 수 있다.
우리가 볼 때 전환 시대 뉴딜의 쇄신을 추구하는 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던 안이한 민주당 주류 노선을 벗어나 나름 치열하게 갈 길을 가고 있다. 대기업과 부자를 중심으로 자본이득세 등 대규모 증세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전환적 정부답게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또한 하원의 규제법안에 이어 바이든은 반독점의 기수로 잘 알려진 리나 칸을 연방거래위원장에 앉힘으로써 빅테크 독점기업(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의 지배력을 감시, 규율하고 명실상부하게 열린 ‘공정경쟁’ 시장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 역시 공공의 책임정부로서 마땅히 할 일이다.
한국은 어찌 돌아가고 있나? 글로벌 표준이라며 떠받들던 롤모델 국가에서는 정의로운 전환의 정치 구현을 위해 치열한데, 여기는 어이없는 역주행이다. 저기는 공정이 미소 짓는데 여기는 공정이 눈물을 흘린다. 문 대통령은 루스벨트를 존중하고 한국판 뉴딜을 추진한 것도 그 때문이라더니, 모두 빈말 같다. 촛불항쟁에 힘입어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 삼인방이 주도한 국정농단 범죄를 단죄하고 등장한 정부, 촛불정부 문패까지 달았던 이 정부가 부자와 대기업 감세 특혜에 이어 이제 이재용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필사적인 것은 자기정체성의 마지노선을 넘으려고 작정한 게 아닐까.
이재용은 자신이 지은 범죄에 대해 반성한 적이 전혀 없다. 현재 피고인 신분(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사건,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사건, 삼성웰스토리 일감 몰아주기 사건 등)인데다 통상적 가석방 허용 기준인 형기의 80% 이상을 채운 자도 아니다. 맞춤형으로 심사 기준까지 낮추어 가석방 심사 대상자로 올린 것 자체가 명백한 특혜다. 심지어 예비심사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마저 있다. 그리고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데,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장충기(삼성미래전략실 사장) 수첩에 이름이 나올 정도로 삼성과 유착 가능성이 인사청문회 때부터 심각하게 제기되었던 인물이다.
당시 경실련의 비판은 오늘의 상황을 내다본 듯하다. “이 부회장에 대한 실형이 확정될 경우 특별사면이나 가석방 등이 거론될 수 있다. 법무부 장관은 특별사면을 건의하거나 가석방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 부회장의 취업 금지를 풀어줄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다.” 사면 아닌 가석방은 계속 취업 금지 적용 대상이므로 이재용이 가석방될 경우 반도체 살리기 운운하며 취업 금지를 풀어주는 후속 조치가 이어질 위험이 있다.
일이 이렇게 굴러간다면 문 대통령은 국정농단 및 정경유착 주범과 한편이 되어 ‘법치주의의 근간과 공정의 시대가치를 무너뜨리고’(781명의 지식인선언) 촛불정부의 자기정체성을 부정했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이 정부의 무능과 위선에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민심의 흐름은 정권교체 쪽이 우세하다고 한다. 하지만 거칠게 보수 본색을 드러내다가 ‘국민의힘’ 품 안에 안긴 윤석열의 행태를 보노라면, 설사 정권이 교체된다 한들 도무지 나라 꼴이 개선될 것 같지 않다. ‘공정과 상식’은 어디 산으로 가고, 주 120시간을 노동하며 ‘없는 사람들은 부정식품 싸게 먹는’ 나라 만들기라니, 끔찍할 뿐이다. 또한 그는 자산 불평등 완화와 투기 억제를 위한 보유세조차도 ‘생필품’에 대한 과세인 양 터무니없이 왜곡했다.
윤석열은 자신의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고 깊은 감명을 준 책, 실제 검찰 업무에도 “많이 써먹었다”(!)는 책으로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꼽았다. 루스벨트가 와도 머리를 싸매야 할 오늘의 대전환기에, 한참 철 지난 프리드먼을 소환하다니. 윤석열이 추구하는 것은 건강, 안전, 생명, 환경에 관한 필수적 공적 규제를 모두 없애는 약육강식 정글 대한민국이 아닌지. 프리드먼이 토지세에 대해 ‘가장 덜 나쁜 세금’이라 한 것을 보면, 윤석열은 프리드먼보다 더 프리드먼적이다.
한가지 더, 빠뜨릴 수 없는 사실을 꼭 지적해 두고자 한다. 프리드먼은 ‘시카고 보이들’과 함께 칠레 피노체트 독재와 한 몸이 된 지지자였으며, 베트남전쟁 때는 수소폭탄을 떨어뜨리자고 열렬히 박수 친 자였다.
윤석열이 뭘 하려는지, 그의 경제철학과 국정철학의 정체를 우리 국민들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 과연 우리는 윤석열과 함께 부정식품 싸게 먹으며 주 120시간 죽도록 일하는 원시적 정글 대한민국으로 역주행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