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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미국 스파이였을까?

등록 2021-08-05 18:40수정 2021-08-06 02:36

[나는 역사다] 임화 1908~1953

시도 쓰고 평론도 썼다. “임화의 시는 다르다. 아름다움이 있다. 사상이 무엇이든 아름다움이 있어야 예술인 것이다.” 작가 강준식의 평이다. 잘생긴 임화는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다. 1920년대 미남 스타 루돌프 발렌티노에 빗대 ‘조선의 발렌티노’라 불렸다.

사회주의 작가 조직인 ‘카프’를 이끈 일은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말 전향을 강요받았다. 정부 선전 영화의 대본을 교정보는 따위 소소한 부역을 했다. 해방 후 북으로 넘어갔다. 황해도에 머물며 남한의 혁명을 선동했다. 김윤식의 말마따나 “이것이야말로 개구리밥 모양 현실적 기반을 떠난” 운동이었다. “그의 비극적 운명은 이에 말미암았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8월6일, 북한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미국의 스파이’라는 구실이었다. 안경알을 깨 손목을 그었으나 북한은 굳이 그를 살려내 총살대에 세웠다.

일본의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가 1960년대에 <북의 시인 임화>라는 소설을 썼다. 마쓰모토답게 조선의 독립운동에 공감했고 임화를 동정했다. 그런데 임화가 미군정의 스파이였다는 설은 그대로 받았다. 북한 쪽 재판 자료로 글을 썼기 때문이리라. 1987년에는 이 소설이 남한에도 번역되었다. 남한의 좌도 우도 반기지 않았다. 1988년에 나온 <실천문학> 9호에는 김윤식의 논문이 실렸다. 문제의 소설이 임화를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묘사한 점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물론 임화 자신 속에 무협지의 주인공스러운 요소가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문학비평의 과제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남로당에 관한 정보가 우리한테 없기 때문에 재판 결과에 대해 판단하기 어렵다며 ‘스파이설’이 거짓이 아닐 가능성 역시 열어두었다.

2001년 9월4일에 중요한 문서가 나왔다. 역사학자 방선주가 미국 쪽 문서를 뒤져, 1949년에 미군 방첩대(CIC)에서 관리하던 정보원 가운데 임화와 동료 이강국의 이름이 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당황스러울 정도로 이 사실은 화제가 되지 않았다(나도 최근에야 알았다). 남한의 좌도 우도 반기지 않을 일이라 그랬을까. 임화는 여전히 고독하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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