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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손석우의 바람] 높새바람 불어 폭염

등록 2021-08-01 19:14수정 2021-08-02 17:23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지난겨울, 화가 ‘앙리 마티스’의 특별전이 있었다. 찬 바람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코로나19 때문이었는지 전시회장은 다소 한산했다. 덕분에 도슨트의 안내를 받아 전시회장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단연 ‘이카루스’였다. 파란 종이 위에 마치 춤을 추듯이 오려 붙인 이카루스. 이카루스는 마치 국화꽃 같은 노란 물체 몇개에 둘러싸여 있었다.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그 노란 색종이가 떨어지는 깃털이라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새파란 하늘, 까만 이카루스, 노란 깃털, 그리고 빨간 심장. 생각보다 크지 않은 이 작품 앞에서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단순함과 선명함, 아마도 오래 기억될 것이다.

신화 속 이카루스는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펴고 미궁을 탈출한다. 그의 아버지는 밀랍이 녹을 수 있으니 절대 하늘 높이 올라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지만, 하늘을 나는 것이 마냥 신기했던 이카루스는 그 당부를 잊어버린 채 태양을 향해 끝없이 날아오른다. 결국 밀랍은 녹아내렸고 날개를 잃은 이카루스는 하릴없이 추락하고 만다. 이 슬픈 신화를 마티스는 강렬하게 표현해냈다.

그런데 이카루스의 날개는 정말로 녹아내렸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온도는 고도가 10여㎞까지 높아질수록 지속적으로 낮아진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만년설이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기온은 왜 낮아질까? 지상의 흙이나 물이 공기에 비해 더 빨리 데워지는 것이 하나의 원인이다. 햇볕에 의해 지표는 빨리 뜨거워지지만 상층의 공기는 천천히 더워지는 것이다. 야간에는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지표 기온이 급격히 낮아지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고도 수백미터보다 지표 근처 기온이 더 낮아진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공기의 밀도가 변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공기는 지표 근처에 모여 있다. 그렇다 보니 고도가 높아질수록 공기의 밀도는 급격히 낮아진다. 여객기가 날아다니는 10~12㎞ 상공에서는 지표 근처에 비해 공기의 밀도가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밀도가 낮아지면 공기는 팽창하게 된다. 그리고 다소 어려운 이야기지만 공기가 팽창하는 만큼 기온은 낮아진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이 낮아지는 경향은 건조한 공기에서 더욱 뚜렷하다. 공기 중에 수증기가 있다면 그 경향이 다소 약해진다. 별스럽지 않아 보이는 이 현상은 흥미롭게도 한여름 폭염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혹시 높새바람을 아는가? 여름철 태백산맥을 넘어 불어오는 바람이다. 선조들은 북쪽을 ‘고’(高, 높을 고), 동쪽을 ‘새’라고 일컬었다. 말 그대로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뜻한다. 높새바람이 동해에서 태백산맥으로 불어오면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는 산자락을 타고 오르다가 산중턱에 비를 내린다. 그렇게 건조해진 공기는 태백산맥 서쪽을 타고 내려오면서 급격히 더워진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건조한 공기는 습한 공기에 비해 고도가 낮아질수록 더욱 빨리 더워진다.

높새바람이 불면 영서지방 기온은 영동지방에 비해 5~6도 정도 높아진다. 심지어 수도권까지 기온이 올라간다. 이런 높새바람이 며칠간 지속되고 한여름 무더위가 더해지면 곧 폭염과 열대야가 발생하는 것이다.

고도에 따른 기온의 변화를 정확히 알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당시 많은 탐험가들이 이카루스가 되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단지 열기구 하나에 의지해 고도 8㎞ 상공까지 날아올랐다. 저산소증과 감압증으로 정신을 잃기도 했지만, 그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공기의 밀도와 온도의 변화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현대적인 기상학과 항공학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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