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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바지 차림도 근사한 “나라의 어머니”

등록 2021-07-29 14:12수정 2021-07-30 02:36

[나는 역사다]
파키스탄의 파티마 진나 1893~1967

독립도 어렵지만 건국 역시 쉽지 않았다. 힌두교를 믿는 인도 사람과 이슬람을 따르는 무슬림이 평화롭게 어울려 살 수 있을까? 소수파였던 무슬림, 따로 나라를 만들어 살자는 주장에 솔깃했다. 이른바 ‘두개의 국가론’이다. 아무려나 영국의 식민 통치로부터 독립하며 인도와 파키스탄은 다른 나라로 갈라섰다. 파키스탄으로 이주하던 무슬림이 습격당해 맞아 죽는 일도 일어났다. 두 세력의 화해를 바라던 마하트마 간디는 과격한 인도 사람에게 암살당했다. 나는 지금 잘잘못을 가리자는 것은 아니다. 인도 쪽 사람은 무슬림의 몽니로 나라가 쪼개졌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영국 사람들이 식민 통치를 하면서 힌두교 믿는 사람과 무슬림 사이를 이간질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힘든 과정이었다는 사실만 짚고 넘어가자.

파키스탄의 독립과 건국, 그 중심에 오누이가 있었다. 파티마 진나는 1893년 7월30일에 태어났다. 치과의사로 편안히 살 수 있었지만, 오빠 무함마드 알리 진나와 함께 독립 운동을 했다. 남매는 “나라의 아버지”와 “나라의 어머니”로 불리며 파키스탄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무함마드 알리 진나가 결핵으로 죽은 얼마 후부터 군사독재 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지 모른다.

안락한 노후를 보내는 대신, 파티마 진나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싸움에 나섰다. 군사 정권에 맞서는 민주파의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었다. “나라의 어머니라고들 하는데 어머니답게 처신하지 않는다”며 독재자 아유브 칸은 불평했다. “파티마 진나의 바지 차림이 너무 멋있어서 아유브는 속이 뒤집힌 것”이라고 그때 <타임>지는 꼬집었다. 영국과 미국에서도 이렇게 당당한 여성 정치인을 찾아보기 힘들던 1964년의 기사다.

1965년 선거 결과는 아유브 칸의 승리였다. 사람들은 부정선거를 의심했다. 1967년에 파티마 진나는 세상을 떠났다. 암살당했다는 소문이 났는데, 뚜렷한 근거는 없다. 아유브 칸은 내내 인기가 없었고, 1969년에 권좌에서 밀려났다. 군부가 밀던 다른 장군이 자리를 꿰찼다. 1988년에 베나지르 부토가 파키스탄의 첫 여성지도자가 되었지만 훗날 암살당한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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