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별의별 글을 다 쓴 조지 오웰이 ‘네 코앞에서’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자신이나 타인의 생계 문제에 민감한 사람이었으니, ‘내 코가 석 자’류의 얘기인 줄 알았다. 나의 ‘슬픈 예감’은 틀렸다. 2차 대전 직후라서 물자 부족이 심했다고 한다. 석탄 수요는 급증하는데 광부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수만명의 광부가 필요했으니, 당장 해법을 찾기 힘들었다. 대책을 세우라며 난리법석이었다. 광부 인력이 넘치는 폴란드와 독일에서 사람을 데려오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쪽에서는 이러고, 저쪽에서는 저럴 수 있다. 그런데 똑같은 신문의 같은 지면에서 두가지 주장이 버젓이 나왔다고 한다. ‘당장 해법을 구하라, 하지만 그 유일한 해법은 반대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는 수없이 많았다. 조지 오웰은 이런 정신분열증적인 사고방식의 광범한 존재와 이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사회적 상황을 걱정하며 말했다.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끝없는 투쟁이다.”
며칠 전에 미국 텍사스 사막에 우주선이 쏘아 올려졌다. 우주선 발사는 이제 별일 아닌 일상이 되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 주체가 미국우주항공국이 아니라 민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현재 지구에서 제일 돈 많은 사나이,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였다. 바이러스가 무중력 비행속도처럼 퍼져나간 지난 2년 동안, 그는 자신의 재산을 바이러스 확산 속도만큼 키웠다. 최근 통계로는 두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지상의 ‘금광 찾기’로는 부족했는지, 그는 우주라는 새로운 ‘서부’를 찾아 나섰다. 우주선에 타고 내릴 때 그는 카우보이모자를 썼다.
그 옛날의 서부 개척이 ‘빈곤 없는 번영’을 내걸었다면, 그의 ‘서부’는 지구 환경 문제를 해결해줄 대안이라 한다. 지구 오염을 해결해줄 곳을 우주에서 찾겠다는 것인데, 한마디로 지구의 생존을 위한 우주의 식민지화다. 친숙한 인류의 식민 역사가 이제 우주적 차원에서 확대되고 있다. 서부 영화에서는 서부개척자들이 직접 말을 타고 ‘약속의 땅’을 찾아 나선다. 베이조스는 우주선을 직접 타고 둘러보았다. 그리고 지구의 오염을 막아보자고 나선 길에 거대하고 짙은 오염을 남겼다. 우주선이 대기권을 뚫으면서 약 300톤의 이산화탄소를 뿜어냈다. 대기권 상층부에 남은 이산화탄소는 수년간 사라지지 않고 머문다. 그의 코앞에서 벌어지는 모순인데, 그는 모른다.
원대한 꿈을 키우고 지상으로 돌아온 베이조스는 선량한 카우보이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기자들을 모아두고 말했다. 생애 최고의 날이었고 당장에라도 다시 우주로 가고 싶다고 한 뒤, 지상에서 남았던 사람들에게 그 누구도 고마워하지 않을 ‘감사의 말’을 남겼다. “모든 아마존 직원들과 모든 아마존 고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 모든 것들의 비용은 (결국) 당신들이 지불했기 때문이다.” 마시던 커피를 쏟을 뻔했다. 아마존을 통해 매달 몇권의 책을 사는 내가 저 우주선이 뿜어낸 이산화탄소에 ‘미력이나마 기여’했다는 것이고,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어 플라스틱통에 소변을 봐가면서 크고 작은 사고의 위험도 감내하고 짠내 나는 월급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서부 캘리포니아 광산의 노동자처럼 묵묵히 일했던 아마존의 노동자들은 우주선의 몸통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잊은 것도 있다. 세금 한푼 내지도 않고 그가 당당할 수 있게 해준 거대한 정치경제 시스템의 수호자들. 그들 덕분에, 그동안 꼬박꼬박 세금을 낸 사람들로부터 돌 맞을 일을 피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그가 무사히 지상에 안착하도록 해준 낙하산은 없었을 것이다. 마땅히 고맙다는 말은 남겼어야 했다. 그들 덕분에, 그의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일관되게 조화롭다. 모든 것이 그로 향해 있기 때문이다.
지상은 그야말로 ‘내 코가 석 자’인 상황이다. 한쪽에서는 백신이 넘치는데도 백신이 싫다는 사람도 많아 재고가 쌓여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백신이 없어서 아우성이다. 이런 상황의 자연스러운 이치는 백신을 넘치는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옮기면 되는 것인데, 한사코 안 된다고 하다. ‘모든 사람이 안전해지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며 백신 박애주의를 내세우던 사람들도 고개를 내젓는다.
이 와중에 ‘경기 과열’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과 유럽에서 그동안 억눌렀던 소비 수요가 터져 나오면서 산업활동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가게와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생기고, 심지어 웃돈을 줘도 채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경제전문가는 이럴 때 유독 발 빠르게 나선다. 이러다가 임금은 올라가고 물가도 올라가서 어렵게 키운 회복의 기회를 망쳐버릴지 모른다고 한다. 정부의 관대한 지원 때문에 노동자들이 일을 하려 하지 않는 것이 큰 이유라면서, 늘 그랬듯이 정부와 노동자를 겨냥한다. 물가인상은 의당 걱정해야 할 일이지만 그 걱정의 마지막은 이렇게 도돌이표처럼 ‘임금 인상에 따른 기업 경영의 어려움’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정부의 ‘관대함’이 문제라면 기업부터 따져야 한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작년에 정부의 지원이 없었다면 최소한 15%의 기업이 문을 닫았어야 했다. 2008~2009년 경제위기 때 겪었던 파산 규모와 유사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파산한 기업의 수는 작년에 오히려 줄어들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더라면 파산했어야 할 ‘좀비기업’도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파격적 지원 덕분이다. 그런데 정부의 이런 ‘지나침’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다. 게다가 지금의 인력난은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코로나 이후에 어떤 일을 할지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긴 일이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인력난이지만, 다른 한쪽은 실업난이다. 이 모든 것이 모두 우리 코앞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또 하나, 세상에는 코앞에 벌어지는 일에 모순적이어도 되거나 그런 모순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그런 모순이 원천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고만고만한 뻔한 수입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에게는 “둘에 둘을 더하면 변함없이 넷이 된다. 하지만 정치라는 비유클리드적(non-Euclidean) 세계에서는 부분이 전체보다 크기 쉽다.” 다시, 조지 오웰의 말이다.
결국 힘의 문제다. 돈과 권력이 있으면 뜻대로 말하면 된다. 일관되지 않아도 된다. 사실에 맞지 않아도 된다. 알아서 이해해주거나, 옆에서 열심히 주석을 달아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코앞에서 날아다니는 파리를 잡기가 제일 힘들다. 그리고 제 손으로 파리를 잡아야 하는 사람이 있고, 난리통을 벌여서 기어코 남이 제 코앞의 파리를 잡게 하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