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서 우리 최고의 독자 가운데 한 명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6일 이른 아침 인터넷으로 영국 <가디언>을 읽는데 기사 끝에 붙은 붙박이 알림 첫 문장이 기분 나쁘지 않다. ‘최고의 독자’라니, 그것도 전세계에서 말이다. 독자 앞에 ‘최고’란 수식이 좀 어색하긴 하지만,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 뒤 이렇게 이어진다. “지난 한 해 56개 기사를 읽었는데, 알고 계세요? 그렇게 많이 <가디언>을 선택해주셔서, 또 한국에서 오늘 함께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기사를 56개나 읽었다고? 많고 적음을 떠나 정확히 숫자를 제시하는 <가디언>에 놀랐다.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지, 얼마나 자주 누리집을 방문하는지 나의 움직임을 엿보고 있다는 불편한 생각보다, 내가 누군지 알면서 세심하게 말을 걸어주는 유쾌한 느낌이었다.
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종이신문에 터 잡은 이 언론의 저널리즘 존재 가치를 압축해 담은 알림 메시지는 “1분이면 되니 단 1달러라도 <가디언>을 후원해주세요”라고 매듭지어진다.
디지털 공간에서 독자를 상대로 한 <가디언>의 말 걸기는 때론 귀찮을 정도로 집요하다. 지난 7년 이 매체의 유료 구독자 수는 10배가량 늘었다. 한 해 후원자만 100만명에 이른다. 이 숫자는 <가디언>이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독자에게 말을 거는지 그 답이기도 하다.
<가디언>의 현재는 후원이나 디지털콘텐츠 유료화를 포함한 구독경제 모델로 지속 가능성을 꾀하려는 언론사들에 하나의 좌표일 수 있다. <한겨레>가 지난 5월 후원회원제를 론칭한 것을 빼면 국내 덩치 큰 언론사들 가운데 이와 같은 이정표를 향해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는 언론은 없다.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겠지만, 그 바탕에는 디지털 구독자를 늘리는 것이 당장 큰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독자 퍼스트’는 오래된 구호이지만, 정작 말뿐이었다. 더 많은 데이터와 더 나은 기술로 독자를 더 잘 알고 더 맞춤하게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맞았지만, 신문 독자가 누군지 모른 채 종이신문의 종언을 맞고 있는 것처럼 디지털 독자가 누군지 모른 채 변화의 파고를 맞고 있다. <한겨레>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매출의 60% 안팎이 종이신문의 광고에서 나오는 구조에서 디지털 구독자를 한 명이라도 더 늘리려는 투자와 노력은 후순위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구독자에게 말 걸기도 당연히, 그것도 항상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귀찮은 짐이 되었다.
그 결정적 변수는 포털이었다. 포털에서 뉴스가 유통되는 구조와 환경에서 언론사 누리집을 직접 방문하는 사용자를 늘리려는 투자와 노력은 오랫동안 달걀로 바위 치기였다. 그 결과 덩치를 자랑하는 언론사 어느 곳도 자사 누리집 회원 수가 얼마인지 공개할 수 없는 부끄러운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미디어와 독자를 잇는 연결 다리는 거의 끊겼다. 네이버에서 25개 언론사의 뉴스 콘텐츠를 돈을 내고 볼 수 있는 ‘온라인 퍼블리싱 플랫폼’(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을 열었지만 볼수록 개운치 않다. 뉴스 콘텐츠 유료화를 실험한다는 데 의미가 크지만, 독자와 언론사가 ‘중매쟁이’인 네이버를 항상 끼고 만나는 모양새다. 이는 공짜 뉴스 유통 시장에 이어 구독 플랫폼마저 하청 기지화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대형 할인마트 진열대에 놓인 노 브랜드 제품을 누가 만드는지 알거나 신경 쓰는 고객은 거의 없다. 반대로 물건을 만드는 업체도 고객이 누군지 알지 못할 뿐더러 알 필요도 적다. 포털에 브랜드 없는 기사로 독자와 스치듯 접하는 언론사는 노 브랜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처한 위험에 언제든지 맞닥뜨릴 수 있다.
늦었지만 단절된 관계와 소통을 회복하기 위해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틈새 전략과 작은 노력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네이버가 약속한 진짜 ‘창작자와 사용자의 연결을 통해 가치 있는 콘텐츠’를 언론들이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류이근 미디어전략실장 ryuyigeun@hani.co.kr

영국 ’가디언’의 후원제 소개 페이지. 가디언 누리집 갈무리

한겨레 후원회원제 ‘서포터즈 벗’ 소개 페이지. 한겨레 누리집 갈무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