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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 거는 한겨레] 말을 걸지 않는 이유 / 류이근

등록 2021-07-06 18:03수정 2021-10-15 10:43

“전세계에서 우리 최고의 독자 가운데 한 명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6일 이른 아침 인터넷으로 영국 <가디언>을 읽는데 기사 끝에 붙은 붙박이 알림 첫 문장이 기분 나쁘지 않다. ‘최고의 독자’라니, 그것도 전세계에서 말이다. 독자 앞에 ‘최고’란 수식이 좀 어색하긴 하지만,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 뒤 이렇게 이어진다. “지난 한 해 56개 기사를 읽었는데, 알고 계세요? 그렇게 많이 <가디언>을 선택해주셔서, 또 한국에서 오늘 함께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기사를 56개나 읽었다고? 많고 적음을 떠나 정확히 숫자를 제시하는 <가디언>에 놀랐다.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지, 얼마나 자주 누리집을 방문하는지 나의 움직임을 엿보고 있다는 불편한 생각보다, 내가 누군지 알면서 세심하게 말을 걸어주는 유쾌한 느낌이었다.

영국 ’가디언’의 후원제 소개 페이지. 가디언 누리집 갈무리
영국 ’가디언’의 후원제 소개 페이지. 가디언 누리집 갈무리

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종이신문에 터 잡은 이 언론의 저널리즘 존재 가치를 압축해 담은 알림 메시지는 “1분이면 되니 단 1달러라도 <가디언>을 후원해주세요”라고 매듭지어진다.

디지털 공간에서 독자를 상대로 한 <가디언>의 말 걸기는 때론 귀찮을 정도로 집요하다. 지난 7년 이 매체의 유료 구독자 수는 10배가량 늘었다. 한 해 후원자만 100만명에 이른다. 이 숫자는 <가디언>이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독자에게 말을 거는지 그 답이기도 하다.

<가디언>의 현재는 후원이나 디지털콘텐츠 유료화를 포함한 구독경제 모델로 지속 가능성을 꾀하려는 언론사들에 하나의 좌표일 수 있다. <한겨레>가 지난 5월 후원회원제를 론칭한 것을 빼면 국내 덩치 큰 언론사들 가운데 이와 같은 이정표를 향해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는 언론은 없다.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겠지만, 그 바탕에는 디지털 구독자를 늘리는 것이 당장 큰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독자 퍼스트’는 오래된 구호이지만, 정작 말뿐이었다. 더 많은 데이터와 더 나은 기술로 독자를 더 잘 알고 더 맞춤하게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맞았지만, 신문 독자가 누군지 모른 채 종이신문의 종언을 맞고 있는 것처럼 디지털 독자가 누군지 모른 채 변화의 파고를 맞고 있다. <한겨레>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매출의 60% 안팎이 종이신문의 광고에서 나오는 구조에서 디지털 구독자를 한 명이라도 더 늘리려는 투자와 노력은 후순위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구독자에게 말 걸기도 당연히, 그것도 항상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귀찮은 짐이 되었다.

그 결정적 변수는 포털이었다. 포털에서 뉴스가 유통되는 구조와 환경에서 언론사 누리집을 직접 방문하는 사용자를 늘리려는 투자와 노력은 오랫동안 달걀로 바위 치기였다. 그 결과 덩치를 자랑하는 언론사 어느 곳도 자사 누리집 회원 수가 얼마인지 공개할 수 없는 부끄러운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미디어와 독자를 잇는 연결 다리는 거의 끊겼다. 네이버에서 25개 언론사의 뉴스 콘텐츠를 돈을 내고 볼 수 있는 ‘온라인 퍼블리싱 플랫폼’(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을 열었지만 볼수록 개운치 않다. 뉴스 콘텐츠 유료화를 실험한다는 데 의미가 크지만, 독자와 언론사가 ‘중매쟁이’인 네이버를 항상 끼고 만나는 모양새다. 이는 공짜 뉴스 유통 시장에 이어 구독 플랫폼마저 하청 기지화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대형 할인마트 진열대에 놓인 노 브랜드 제품을 누가 만드는지 알거나 신경 쓰는 고객은 거의 없다. 반대로 물건을 만드는 업체도 고객이 누군지 알지 못할 뿐더러 알 필요도 적다. 포털에 브랜드 없는 기사로 독자와 스치듯 접하는 언론사는 노 브랜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처한 위험에 언제든지 맞닥뜨릴 수 있다.

늦었지만 단절된 관계와 소통을 회복하기 위해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틈새 전략과 작은 노력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네이버가 약속한 진짜 ‘창작자와 사용자의 연결을 통해 가치 있는 콘텐츠’를 언론들이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류이근 미디어전략실장 ryuyigeun@hani.co.kr

한겨레 후원회원제 ‘서포터즈 벗’ 소개 페이지. 한겨레 누리집 갈무리
한겨레 후원회원제 ‘서포터즈 벗’ 소개 페이지. 한겨레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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