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타파] 전명윤ㅣ아시아 역사문화 탐구자
사람들은 누군가를 기리기 위해 동상을 세우지만, 기리려고 했던 그 사람은 동상으로 존재하는 바람에 수모를 겪기도 한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거리두기가 한창이던 시절이었지만, 지구 한편에는 방역보다 저항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 광경을 티브이로 바라봤다. 누군가는 혀를 차고, 누군가는 어떤 상황에서건 의사 표현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놀라워했다.
인종차별 반대시위는 전지구적으로 확산됐고 이름만 말해도 알 법한 위인들의 동상은 그때마다 시위대의 분풀이 대상이 됐다. 그제는 처칠 동상이, 어제는 콜럼버스 동상이 훼손됐다. 물론 동상이 훼손될 수밖에 없었던 타당한 이유도 있었다. 어느 날, 아프리카 가나에서도 같은 이유로 인도 독립의 아버지인 간디의 동상이 철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간디는 인도에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하기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며 인종차별 철폐투쟁으로 명성을 날렸다. 이런 이력 때문에 간디는 1915년 뭄바이로 귀국했을 때부터 이미 인도인 사이에서는 슈퍼스타였다.
문제는 간디가 문제의식을 느낀 인종차별은 그저 서양인에 의한 인도인 차별일 뿐이었다는 점이다. 간디의 논리를 요약하면 ‘아프리카 원주민과 달리 인도인은 영국처럼 한때 제국을 경영한 문명화된 민족이니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달라’는 식이었다. 차별반대 운동을 했건만 그 안에는 인도인은 아프리카인과 다르다는 또 다른 의미의 차별 논리가 내재되어 있었고 와중에 수많은 아프리카인에 대한 차별 발언을 했다.
20세기 초에는 인종주의가 모두에게 별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다.
1903년 일본 오사카에서는 ‘내국권업박람회’라는 게 열렸는데, 여기엔 조선인을 비롯해 오키나와인, 아이누인, 그리고 대만(타이완) 원주민이 동물처럼 우리에 갇혀 전시됐다. 조선과 오키나와는 이 사실을 알고 격렬히 반발했다. 조선과 오키나와는 오랜 역사를 지닌 문명국이기에 아이누인이나 대만 원주민처럼 전시하면 안 된다는 게 주된 논리였는데, 역시나 여기에는 문명국의 일원에게는 안 되지만 아이누인이나 대만 원주민에겐 그래도 별 상관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인종주의가 보편적인 시대, 사회에서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은 고작 ‘우리는 저들과 다른데 왜 우리에게?’라는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를 뛰어넘어 모든 차별은 부당하다는 사고는 그 시대로서는 초월적 사고였고, 대부분의 인간은 그 시대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하다못해 위대한 영혼이라 극찬받는 인도 독립운동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조차 그랬고, 디엔에이(DNA)의 아버지라 불리는 천재 과학자 제임스 왓슨은 아직까지도 그런 생각을 바꾸지 않고 있다.
이미 1년 전 사건이지만 연이은 동상의 파괴를 보면서 두어가지 점에서 혼란스러웠다.
그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과거 위인들에게 적용되는 현재의 잣대는 어디까지가 타당한 것일까? 당시 훼손된 동상의 주인공들에게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었다. 제국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너무나 확실했던 콜럼버스나 처칠과 달리 피식민지 독립운동가로서 존재했던 간디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한계를 들어 약간의 변호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내가 사는 나라는 인종차별 피해를 막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안전장치 중 하나인 유엔 이주민권리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상기된다. 아울러 인종차별에 대한 금지까지 포괄하는 차별금지법 또한 별다른 진전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참고로 한국은 현재까지 인종차별을 금지한 어떠한 법률도 제정하지 않았다.
실질적 G8에 속했다는 ‘국뽕’이 넘실대는 때이건만 나는 이런 이유로 그 대열에 참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직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