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류문수ㅣ변호사·원불교 인권위원회 위원장
2020년 10월께 상영되었던 ‘스릴러 영화’ <게임의 전환>이 뇌리에서 계속 사라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마피아 게임’을 빌려 국가보안법을 설명한다. 우리 사회 안에 ‘빨갱이를 사냥하라!’는 잔인하고 끔찍한 게임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견고하게 내재되어 있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당장, 인권운동에 몸담고 있는 나부터도 ‘내 생각과 표현을 스스로 억제해왔다’는 ‘자기 검열’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어 놀랐다.
국가보안법은 이런 법이다.
우리가 좋든 싫든 모두 마피아(빨갱이) 게임의 참가자가 되어 내 안에 존재하지 않는 마피아를 찾아내고(자기 검열),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마피아를 찾아내기 위하여 나 스스로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을 모두 의심하게 한다(공포의 내재화). 개개인의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 나아가 학문의 자유 영역까지 간섭하고 억압해왔다.
이제, 국가보안법에 의해 시작된 마피아(빨갱이) 게임을 끝내야 한다.
이미 2004년 8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문’을 내놓은 바 있다. 이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국가’의 입장을 표명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2004년 8월26일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려 의미가 탈색되었다. 최근 헌법재판소에서는 다시 국가보안법 7조 위헌법률심판사건 심리가 진행 중이다. 헌법재판소가 종전 2004년의 결정을 변경할 것인지 관심이 모인다. 유엔 인권이사회,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국제앰네스티 등 국제 인권 관련 기구들도 꾸준히 한국 정부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해왔다는 점에 비춰 본다면, 헌법재판소의 국가보안법에 대한 위헌 결정은 우리나라 인권의 측면에서,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국격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최근 21대 국회에서도 적폐청산, 촛불혁명의 정신을 잇는 맥락에서 국가보안법의 폐지 내지 국가보안법 7조 삭제 등 개정 법안에 관한 발의가 진행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처음 만들어질 당시부터 정치적 악용 가능성이 우려된 일종의 한시법이었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되어 그동안 인권유린과 사상탄압의 도구로,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남용·악용되어 왔다. 지난 세월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수많은 노력이 좌절된 사례가 있는 만큼 최종적인 결실을 볼 때까지 방심하거나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11월5일 한 언론사 창간 기념 서면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 1998년 유엔에서 한국 정부에 대해 국가보안법이 유엔의 인권규약 위반 사실을 재확인하는 등 국제 인권규범과도 충돌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폐지돼도 현행 형법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며 폐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문 대통령은 그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참여정부 민정수석 시절 공수처 설치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회고했다. 특히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해서는 “더 뼈아팠다”고도 했다. 그렇기에 대통령으로서의 입장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겨져야 할 것이다.
올해는, 이 사회를 통치하는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73년이 되는 해다. 이미 사문화된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그 누구도 부인하기는 어렵다. 당장 며칠 전에도 통일 문제를 연구하는 민간연구소 연구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지 않았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세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4·27 판문점 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 등 남북 화해·협력의 구체적인 사항들에 합의했고, 평화와 통일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이런 소중한 합의들을 실행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제정 목적 자체가 분단 대결체제 유지 내지 강화를 전제하는 국가보안법의 폐지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를 그 가장 밑바탕에서부터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은 원불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동포은’과 ‘법률은’을 이 땅에 뿌리내리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