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양경수ㅣ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민주노총은 북으로 가라!” 광화문광장 혹은 서울시청 광장에서 민주노총이 집회를 할 때면 흔히 터져 나오는 소리들이다. “노동조합 할 권리를 보장하라!” “최저임금을 인상하라!” “해고를 금지하라!”는 우리 노동자들의 요구와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보수단체들은 민주노총 조합원들 혹은 정권과 기득권에 저항하는 노동자 민중들을 향해 ‘빨갱이’라는 무시무시한 손가락질을 해왔고, 여전히 하고 있다.
바로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노동자 민중의 정당한 요구조차도 냉전 시대의 논리로 귀결 짓고, 노동자들이 사회의 주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삶과 투쟁마저도 폄하하고 매도하고 탄압해왔던 법이 바로 국가보안법이기 때문이다.
지난 70여년간 국가보안법의 주요 탄압 대상은 우리 노동자들이었다. 노동자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고 노동자들의 정치적 단결과 자주적 활동을 억눌러왔다. 실제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조활동을 활발하게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탄압했던 사례는 부지기수다.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설립하기 이전에는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을 ‘반국가단체’로 탄압했고, 사용자 쪽 정리해고를 막아내기 위해 투쟁하던 현대자동차 노동자를 지원하던 진보세력을 간첩단으로 조작해 탄압했던 것도 국가보안법이었다. 심지어 노동자들의
필독서 구실을 했던 <전태일 평전>조차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규정하여 수사하고 잡아들였으니,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1948년 이래 얼마나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이 법으로 탄압받았는지, 또 얼마나 많은 노동조합들이 이 법에 의해 파괴되었는지 그 정확한 숫자와 통계조차 정리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뿐만 아니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이런 식의 노조탄압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노동조합’ 자체를 불온시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 결과,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최하위권이다. 법과 언론, 사회적 분위기로 노조활동에 ‘종북세력’이니 ‘이적행위’니 ‘빨갱이’니 하는 딱지를 이토록 쉽게 붙여왔으니 일견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겠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그대로 온존하고 있는 한, 우리 사회에서 노동운동은 단 한 발자국도 전진하기 어렵다.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노동운동 탄압’은 시기와 정세에 따라서 그 강도만 달라졌을 뿐, 언제든 악용되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특히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이 거세질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여 찬물을 끼얹곤 했다.
민주노총은 올해 하반기 총파업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이후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사회 양극화 문제’, 불평등한 한국 사회를 더 이상 이대로 둘 수 없다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외침이고 결연한 선언이다. 말 그대로 ‘사회 대전환’을 위한, 한국 사회의 ‘구조’를 그 뿌리부터 바꿔나가겠다는 투쟁에 민주노총이 적극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하반기 민주노총의 총파업 또한 국가보안법과 같은 하늘을 이고서는 불가능하다. 지난 5월10일부터 진행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동의청원’에 100만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적극 나서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늦어도 한참 늦었기에 지금이라도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을, 우리 노동자들은 모두 갖고 있다. 돌아보면 2004년 노무현 정권 시절 우리는 ‘국가보안법 폐지’의 목전까지 다다랐으나 결국 이루지 못했다. 살아남은 국가보안법은 이후로도 단 한 순간의 쉼 없이 지금 이 순간까지 노동자들을 탄압해왔다. 우리 노동자들 그 누구도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되었다’는 평가를 전혀 믿지 않는, 믿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진짜로 없애야 한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고, 스스로도 ‘국가보안법 폐지’ 소신을 분명히 밝혔던 인권변호사 출신의 문재인 대통령 시대가 아닌가? 지금이 아니라면 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 것인가.
폐지되고 말 ‘국가보안법’의 마지막 이 순간에, 우리 노동자들뿐 아니라 전체 시민들께서 함께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