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배 ㅣ 보건의료노조 선전홍보실장
200일. 16일이면 영남대의료원에서 해고된 박문진 간호사가 복직에 대한 마지막 희망을 안고 70미터 고공에 올라 농성을 시작한 지 200일째가 된다. 텐트 한장에 의존해 한여름 49.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과 유난히 많았던 태풍을 견디었고, 이제는 살을 에는 겨울 칼바람 속에서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농성이 시작되고 나서 노사 양측은 대구노동청이 제안한 사적 조정을 통한 문제 해결 방안을 받아들였다. 영남대의료원 쪽은 조정위원 선정에 이의를 제기하며 시간을 끌다가 결국 자신들이 추천한 조정위원 한명을 더 추가하였다. 사적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라는 언론플레이도 잊지 않았다. 조정위원들은 수차례 면담과 논의 끝에 조정안을 내놓았다. 지난해 12월30일 노동조합 쪽은 조정위원들이 제시한 내용이 매우 부족한 것이었지만 해를 넘기지 않고 타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하고 조정안을 수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영남대의료원 쪽은 해고자 복직 불가라는 애초 주장을 고수하며 조정안을 완전히 무시해 버렸다.
돌이켜보면 영남대의료원 문제는 오래전에 해결되어야 할 문제였고 이처럼 사적 조정에 의지할 문제도 아니다. 현재 문제가 되는 영남대의료원 사태의 배경에는 기획된 노조파괴 공작이라는 반헌법적 범죄행위가 자리 잡고 있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던 노조파괴 업체 ‘창조컨설팅’이 13년 전 노조파괴 컨설팅을 처음 시작한 곳이 바로 영남대의료원이었다.
당시 영남대의료원지부는 2006년 주5일제 도입으로 인한 인력 충원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3일간 부분파업을 벌였다. 직권중재 제도라는 악법과 사용자의 불성실 교섭 상황에서 지부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일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병원 쪽은 노조 간부들에게 5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10명을 해고했다. 그리고 폭력을 동원한 노조활동 탄압과 기획적인 탈퇴 공작을 벌였고 이로 인해 950명에 이르던 조합원이 7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4년 뒤인 2010년에 영남대의료원 해고자들이 제기한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대법원은 10명의 해고자 중 7명만을 부당해고로 인정했지만 결국 3명은 정당해고라 판결했다. 이후 창조컨설팅의 불법적인 노조파괴 공작이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폭로된 것은 2012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2018년이다.
창조컨설팅이 수많은 민주노조를 파괴한 대가로 사용자들로부터 돈을 받아 챙기며 승승장구하는 동안 영남대의료원의 해고자들은 14년간 거리로 내몰렸고 영혼마저 시들어갔다. 그들은 ‘안 해본 투쟁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투쟁을 벌였다. 2012년에는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후보 집 앞에서 75일간 매일 3천배까지 했다.
해고자들은 살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지난해 7월1일 ‘하늘 감옥’에 올랐고 세상의 정의와 양심에 호소하고 있다. 그들은 조합원들의 뜻에 따라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앞장서 행동한 죄밖에 없는 이들이다.
기획된 노조파괴 행위가 심각한 범법 행위라는 것은 명확하다. 따라서 이들을 고용하고 이들의 지시를 따른 이들 역시 범죄행위에 동조하거나 사주한 범죄자들이라 할 것이다. 이제라도 14년 전 노조파괴에 앞장섰던 영남대의료원의 책임자들은 스스로 양심선언을 해야 하고 피해자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도 영남대의료원 쪽은 여전히 대법원 판결을 핑계로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위원장이 지난 9일부터 조속한 사태 해결을 요구하며 영남대의료원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뜻에 공감하는 지역의 노동단체와 지역의 시민단체 대표들도 동조 단식을 예고하고 있다.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감내해야 하고, 정의를 바로 세워 달라고 수백일째 고공농성을 벌여야 하는 이 비극적인 상황은 끝내야 한다. 영남대의료원은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