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조한욱의 서양사람] 장미의 이름

등록 2016-03-09 19:47수정 2016-03-09 20:22

한 세대를 풍미했던 작가이자 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별세했다. 소설가로, 문학비평가로, 철학자로, 언어학자로 큰 족적을 남긴 그였는데, 세계적 명성의 출발점에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이 있다. 신비한 제목의 이 소설에서는 서양 중세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기호학의 이론이 추리소설 속에서 결합한다. 마치 작가의 모든 경력이 이 작품 속에 집약된 것 같다.

열렬한 독자로서 제목의 연원이 궁금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가문의 이름 때문에 사랑의 시련을 겪는 줄리엣이 한탄한다. “이름이란 무엇일까? 장미라 부르는 것은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향기로울 텐데.” 이 대사가 그 제목의 한 출처는 아닐까 알아봤다. 그러나 <장미의 이름>은 10개 정도의 후보군에서 저자가 출판사와 합의해 고른 제목임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어쨌든 먼 나라의 일개 서생에게 지적 궁금증을 자아낼 만큼 이 소설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이 책은 사라졌다고, 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부를 둘러싼 이야기다. 그것은 희극, 즉 웃음에 대한 책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을 “교육적 가치가 있는, 선을 지향하는 힘”임을 인정한다. 중세의 지식인 계층인 수도승들은 그 책을 읽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도서관장 요르게는 책장에 독을 묻혀 그 책을 보려 하던 수도승들을 살해한다. 요르게는 경망스런 웃음은 악마로부터 오는 것이고 그것은 수도승의 참된 신앙에 방해가 될 뿐이라는 수도원의 규칙에만 충실하다. 그는 신학의 한 규범으로 숭상받게 된 아리스토텔레스가 웃음을 긍정하는 책을 썼다는 사실 자체가 못마땅하다. 수사를 맡은 주인공 윌리엄에 의해 내막이 드러나자 요르게는 독이 묻은 그 책장을 씹어 삼킨다. 실랑이 속에 불이 붙어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도서관이 수도원과 함께 재로 바뀌었다.

독선에 사로잡힌 요르게에게서 권력의 민낯을 본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대통령 거짓말에 놀라지 않는 나라가 됐다 [권태호 칼럼] 1.

대통령 거짓말에 놀라지 않는 나라가 됐다 [권태호 칼럼]

윤 대통령이 내일 답해야 할 것들, 사안별 쟁점 뭔가? [11월6일 뉴스뷰리핑] 2.

윤 대통령이 내일 답해야 할 것들, 사안별 쟁점 뭔가? [11월6일 뉴스뷰리핑]

자영업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유레카] 3.

자영업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유레카]

[사설] “내가 먼저 특검 주장할 것”, 7일 기자회견이 그때다 4.

[사설] “내가 먼저 특검 주장할 것”, 7일 기자회견이 그때다

[사설] ‘명태균 게이트’ 수사, 이 검찰로는 안 된다 5.

[사설] ‘명태균 게이트’ 수사, 이 검찰로는 안 된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