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상근활동을 하다 보니 건설현장에 가볼 일이 많다. 현장의 노동환경을 피부로 이해해야만 정책 수립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선 투표시간 연장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하여 올해 초 콘크리트 펌프카(일명 펌프카)를 타고 건설현장을 살펴본 사례를 알리고자 한다.
새벽 4시30분에 첫 버스를 타고 전날 약속한 중장비 차고지에 갔다. 펌프카 조종사와 함께 차에 타고 예약된 공사현장으로 이동했다. 자칫 지체했다가는 직장인들 출근시간에 걸려 차량이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므로 아침 일찍 별 보고 출근을 한단다. 일반 공사현장 근로자들이 아침 7시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건설중장비 종사자들은 아침 6시까지 현장에 도착해 미리 준비를 하고 대기한다.
이러다 보면 아침을 거르는 일은 다반사고, 점심때면 신문지 한장 깔아 놓고 짜장면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그것도 먹을 시간이 없으면 빵 한조각이 고작이다. 왜냐하면 이틀 할 일을 하루에 끝내려는 시공사가 레미콘 차량을 쉴 새 없이 주문해놓기 때문이다. 운 좋게 좀 일찍 마치는 날에는 곧바로 그날 하루 물량 공사를 한곳 더 잡아 놓는다.
오후 3시께 일을 마치자 장비 사업주한테서 전화가 왔다. 용인에 있는 군부대 공사현장으로 가라는 것이다. 다시 펌프카를 타고 급히 용인으로 향했다. 약 1시간 정도면 된다고 했지만, 밤 9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일반 노동자들은 작업을 마치면 옷만 갈아입고 퇴근한다. 하지만 건설기계 조종사들은 장비 청소와 정비를 마친 뒤 주차를 위해 다시 차고지까지 가야 한다.
물론 그 시간대에 도로는 주차장이 되어 있다. 중장비 차고지는 대부분 도심 외곽에 있기 때문에 여길 거쳐 집까지 가면 밤 9시가 훌쩍 넘는다. 하여 적지 않은 중장비 조종사들은 야적장 임시 컨테이너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한다. 현재 국내에 등록되어 있는 콘크리트 펌프카 중장비는 약 5000대다. 약 13만대가 등록돼 있는 굴착기를 포함한 약 35만대의 건설중장비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참정권을 박탈당했다. 아니 180만 비정규직 건설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이 대부분 이렇다. 투표를 하는 운 좋은 날은 비가 와서 일당을 공치는 날이나 작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다. 직종은 다르지만 파견직 사내하청 노동자나 교대제 노동자들도 처지는 비슷하다.
“투표는 개인의 성의 문제”라는 어느 정치인의 말대로 노동자들이 투표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점심을 굶고 총알택시로 투표장에 갔다가 다시 일터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 땅의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표를 하지 않은 더 큰 이유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비정규직의 처지는 세월이 지나도 전혀 개선되지 않아 자포자기의 심정이 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꼼수 부리지 말고 비정규직들의 처우 개선 공약을 적극 발굴해내고 이들을 지지층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찍어줘도 다 그놈이 그놈이더라!” 이처럼 평생을 가도 정규직이 될 희망이 없다면 누가 권리의식을 가지고 투표장에 갈 것인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야말로 참된 정치인의 자세다.
박종국 전국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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