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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투표시간 연장, 문제는 노동현실이다 / 박성식

등록 2012-11-14 19:30수정 2012-11-16 15:11

“선거일을 유급휴일로, 투표시간은 9시까지”라는 요구는 여야의 유불리를 계산한 소리가 아니다. 우리는 투표조차 못하는 노동현실, 이 명징한 차별과 허울뿐인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누구나 늘 보아왔지만, 삶은 그리 고단한 것이려니 하며 무심히 여기는 노동의 일상에서부터 민주주의는 주춤거리고 있다. 그래서 변화는 그 일상으로부터 시작돼야 하고, 그래야만 정치민주화도 경제민주화도 제대로 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언론을 장식하는 투표시간 연장 논란은 투표조차 하지 못하는 노동자의 부당한 현실에 집중하기보다는 오히려 노동자의 표가 누구에게 갈 것인가에만 관심이 높은 것 같아 씁쓸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고 들여다보면 대체 뭐 하나 평등한 것이 있나 싶다. 그나마 누구라도 1인 1표를 행사할 수 있는 ‘보통선거권’은 유일하게 평등한 사회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유일한 평등조차 노동자에게는 전혀 평등하지 않다. 특히 작업복과 식사, 휴식공간 등 직장 내 의식주에서부터 정규직과는 다른 신분차별을 받고, 임금에서까지 경제적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은 참정권에서조차 배제되는 ‘가중차별’을 받고 있다.

근로기준법에는 노동자가 투표에 필요한 시간을 요구하면 회사는 거부해선 안 된다고 못박아놨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극심한 고용불안 사회에서 투표시간을 당당히 요구할 노동자는 많지 않다. 심지어 투표를 못하는 대표적인 직군인 건설일용노동자들은 현장에 도착하는 데 보통 서너 시간이 걸리기에 정상적인 가정생활은 물론 여가를 갖기도 불가능할 정도다. “당신이 투표를 하든 못하든 뭐가 중요하냐!”, “월급받기 싫어? 투표는 무슨 투표냐”는 회사의 권위와 노동의 종속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기업의 정문을 통과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를 웅변한다. 다행히 노동조합이 있다면 단체협상으로라도 선거일을 유급공휴일로 보장받는 경우가 있지만,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고작 10% 안팎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정부가 노동자들을 보호하지도 않는다. 투표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수백만명에 달해도 법에 따라 처벌받은 회사는 지금껏 단 한 곳도 없다. 그나마 투표시간 연장에 대한 여론이 비등함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반상회보에 공민권 관련 법규 안내를 포함시켰고, 지방관서에 관내사업장 집중 지도를 지시했다”고 밝혔지만, 이 조처가 실제로 얼마나 성의 있고 실효성 있게 집행될지 의문이다.

대선이 코앞이고 정치개혁과 경제민주화가 정책적 화두로 대두되고 있다. 정치개혁의 근간은 정치의 주체인 국민을 주권자로 대접하고 이를 법과 제도로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역시도 각 경제 주체들에게 경제적 결정권을 공정하게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시 말해 정치개혁이든 경제민주화든 그 핵심은 근본 주체인 노동대중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데 있으며, 투표권 보장도 그러한 관점에서 제기해야 한다. 물론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노력의 결과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투표시간 연장을 위해 공동노력을 기울이기로 한 것은 환영할 일이며, 새누리당이 억지스런 반대를 고집하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투표시간 연장을 통해 조명되고 공감돼야 할 것은 바로 부당한 노동현실임을 우리 사회가 자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박성식 민주노총 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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