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내 심장은 뜨거워지고 있다
내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다지 좋지 못한 첫인상으로 남아 있다. 부산에 살던, 당시 초등학교 6학년 꼬마였던 나는 고스톱을 치시던 집안 어른들과 함께 맹목적으로 보수정당의 대선 승리를 기원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저녁 산책을 나가다 라디오를 통해 그의 대선 승리 소식을 듣고 가득 찬 실망감을 일기장에 길게도 써놓았었다.
중·고교 시절을 참여정부하에서 지내면서 나는 국어 공부를 할 겸 집에 항상 배달되던 국내 유력 일간지를 정독하였다. 부족한 어휘력 때문에 논조를 중심으로 보다 보니 해당 일간지 특유의 참여정부 비판 성향이 내게도 스며들었다. 그가 그렇게도 타파하고자 했던 지역감정이 내 주위를 자연스레 물들였다.
그에 대한 생각이 전환된 시기는 5월 광주 민중항쟁에 대한 글을 보았을 때였다. 25년여 전 부정한 권력에 의한 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고통을 보며 그 어린 가슴에도 뜨거운 불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권력의 정점에 던져진 명패에 새겨진 이름 석 자를 보며, 그가 내가 가진 관념과는 다른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친김에 알아본 그의 생애는 놀라운 도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청년 시절 가슴에 지펴진 정의감을 안고 이 나라의 지역주의, 독재, 부당한 권력에 대항한 그의 현재진행형 도전을 보며 소년의 생각은 크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대학 입학과 함께 현 정권이 시작되었다. 연일 뉴스를 타고 전해지는 혼란한 현 시국과 권위적인 정부를 보며 어느덧 사람 냄새가 나던 노무현 정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고향에서 푸근한 노년을 보내는 그를 보며 이제 쉬실 때가 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그가 다시 부당한 권력 앞에 나서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동시에 교차하였다.
그래서인지 그가 고향 뒷산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소식을 들은 날 충격은 엄청났다. 이보다 더욱 큰 시련 앞에서도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그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날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그가 죽음을 택하게 된 이유를 찾아 헤맸다.
그의 유서 곳곳에는 무기력감과 좌절감이 배어 있다. 그의 최근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가 생의 마지막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와 고통 속에 있었는지를 증언해 주고 있다.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닥친 시련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짐의 무게가 실감이 나자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무기력해 보이는 죽음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은 왜일까? 모두가 현실을 외면할 때 정의를 말하던 그가 끝내 영원히 침묵하게 된 이때, 나 역시 침묵할 것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도 그가 온몸을 내던지는 것은 왜인가? 불의에 이름 석 자를 내던진 그를 보았을 때 가슴속에서 요동치던 심장이 다시 뛰고 있다. 이 오월의 심장에 그가 생애를 던져 화답했듯이 그의 마지막 가장 큰 궤적을 노무현의 마지막 도전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살아남은 사람의 몫임을 가슴이 알려주고 있다. 노승한/부산시 남구 대연4동
분향소 앞 긴 행렬, 당신은 성공한 대통령입니다 아침 8시20분이면 학교를 가기 위해 어김없이 철산역을 지나가야 한다. 오늘도 역시 철산역을 지나가는데 낯선 천막 하나가 눈에 띄었다. 걸어가다 안을 살펴보니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영정사진이 걸려 있었고 그 앞에는 향불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옆에는 방명록이 펼쳐져 있었다. 그걸 보니 토요일에 서거하신 노무현 대통령님에 관한 기사들이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지나친 분향소를 잊은 채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평소처럼 지내다가 집에 올 때 철산역이 아닌 안양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안양역 앞 광장에 굉장히 긴 줄이 서 있었다. 모두들 노무현 대통령님의 서거를 슬퍼하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임시 분향소에 조문을 하려고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분향소로 돌린 것이다. 조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모두 엄숙했고 침통한 표정이었다. 심지어 조문을 막 마치고 나오는 여학생 두 명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분향소에서 상주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노무현 대통령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존경하는 인물을 추모하기 위해 자진해서 나선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조문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줄을 섰다. 촛불을 받고 촛불을 켜서 기다리는 동안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에 그를 몰아내기 위해 탄핵 시위를 했던 국민들과 헌법재판소까지 갔던 그 시절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야당의 공격과 탈당이라는 일까지 겪었던 그분의 재임기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조문을 마치고 드디어 내가 조문을 할 차례가 되었다. 조문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당신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침통해하는 것을 보니 당신은 그래도 인간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노무현 대통령님께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그의 죽음의 대가라고 여긴 그의 가족들의 자유, 청렴함을 목숨같이 소중히 여겼던 그의 신념이 과연 그의 목숨 값이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그가 살아온 과정들을 생각해 보며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그를 떠올리며 앞으로 단 한 번이라도 그가 했던 것처럼 나의 결심을 한 번 믿고 나가기로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그분께 조의를 표하고 싶다.
‘이카로스’가 되신 아름다운 대통령 사람들은 스스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인간 노무현의 모습도 그럴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았을 것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사진을 통해 덕수궁 앞에 줄을 선, 봉하마을에 모여든 사람들의 가슴속을 들여다본다. 당신이 힘들어 미처 보지 못한 그들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 당신을 애타게 찾는 그들의 믿음. 그들을 통해 당신은 스스로가 보지 못했을지언정, 누구도 당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록 먼 길을 떠났을지라도 이것 하나만 알아준다면 당신의 뒷모습이 그리 쓸쓸하게 비추어지진 않으리라. 당신은 너무나 욕심이 많은 이카로스다. 하지만 그 욕심은 혼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모든 것을 위한 것이었다. 어느 한 사람도 당신의 날개가 가진 아픔과 외로움을 헤아려주지 못했지만, 태양에 날개가 녹아 하늘에서 떨어지는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의 날개는 부러져 녹아버렸지만, 우리는 그 시도를 기억한다. 당신의 고귀한 희생과 풍운아의 삶은 이렇게 기억될 것이다. ‘아름다운 대통령’. 김진구/울산시 남구 무거동
당신 같은 대통령이 또 있을까요? 하늘에 계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유서에는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신분에서 그 여러 사람의 고통보다 더 큰 국민의 고통을 한번쯤 생각해봤는지요? 대통령 노무현에게는 ‘도덕적 명예’의 실추가 정치적 사망선고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보 노무현에게 그것이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검찰 조사에서 충실히 당신이 말한 ‘피의자의 신분’으로 자신을 변호했어야만 했습니다. 당신은 장부답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한 일이다. 나는 몰랐다”라는 당신 말이 맞습니다. 기어코 죽음으로써 그 결백함을 밝히신 것 같습니다. 가족들과 동지들은 평생 ‘고통’과 ‘짐’ 속에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을 목 놓아 부르는 국민들의 꿈과 희망을 외면했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땅에서 당신 같은 대통령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저는 더더욱 당신의 죽음에 강력히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박순웅/국민대 법학부 2년
KBS, 서거 당일 오락프로 내보내서야 온 나라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낸 슬픔에 빠져 있다. 그런데 이런 정서와 무관하게, 서거 당일 <한국방송>이 웃고 즐기는 예능프로그램인 ‘천하무적 토요일’을 내보내 시청자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편성 차별화(?) 덕인지 시청률은 한자릿수에서 12%대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공영방송인 <한국방송>의 예능 편성에 곱지 않은 시선이다. 그런 탓에 현재 <한국방송> 기자는 봉하마을 들어가는 데도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일부 누리꾼 사이에서는 주말 몇몇 오락프로그램의 결방을 아쉬워하는 의견도 없진 않다. 그럼에도 국가적인 슬픔을 맞아 일주일만 참자는 게 다수 의견이다. 더구나 국민의 방송임을 자처하는 공영방송이라면서 한낱 시청률에 매여 국민의 정서를 외면해서 되겠는가. 유선진/원광대 정치행정언론학부 2년
한겨레도 검찰의 입 중계 반성하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숨지고 나자 <한겨레>는 정치검찰의 수사 과정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일부 쓰레기 언론의 보도 행태를 문제 삼았다. 그러나 한겨레도 대검 수사기획관 홍만표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를 놓칠세라 열심히 중계해 댔다. 눈에 뻔히 보이는 검찰의 악의적이고 정치적인 피의사실 공표가 독자의 알권리에 크게 부합하는 일인지를 성찰하는 태도는 눈 씻고 보아도 볼 수 없었다. 가끔 사설, 칼럼에서는 무리수를 두는 검찰 수사에 정도를 가라는 훈수를 두기도 했으나 검찰발 기사와는 동떨어진 얘기들로 오히려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이희영/서울 영등포구 신길7동
청소년들을 위한 대통령께 국화꽃을 노무현 대통령은 청소년의 권리 발전에 있어서 초석을 만드신 분이다. 더구나 ‘참여정부’라는 이름에 걸맞게 청소년이 자신에 관한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참여권을 마련하신 업적은 청소년 권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청소년들이 민주주의 교육을 통해 배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주었다. 재임 기간에 각 부처에 분산되어 있는 청소년 관련 업무를 ‘국가청소년위원회’라는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함으로써 청소년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청소년의 사회참여 활동도 장려했다. 청소년들은 투표권이 없기 때문에 청소년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고 권리가 제한되어 있었다. 그 정책이 정작 청소년을 위한 정책일지라도 청소년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얘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는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노력하셨다. 당시 청소년의 정책 참여를 신장시키기 위해 청소년 특별회의와 청소년 참여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청소년 참여위원회는 청소년 관련 정책 혹은 사업에 대해 청소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자문 및 평가를 하는 기구이다. 대한민국 청소년의 이름으로 영전에 한 송이의 국화꽃을 바칩니다. “당신께서 꿈꾸시던 밝은 대한민국의 미래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당신이 사랑하신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약속드립니다. 이제는 편안한 곳에서 지켜봐 주십시오.” 정재윤/과천외고 2학년
그러나 그의 무기력해 보이는 죽음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은 왜일까? 모두가 현실을 외면할 때 정의를 말하던 그가 끝내 영원히 침묵하게 된 이때, 나 역시 침묵할 것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도 그가 온몸을 내던지는 것은 왜인가? 불의에 이름 석 자를 내던진 그를 보았을 때 가슴속에서 요동치던 심장이 다시 뛰고 있다. 이 오월의 심장에 그가 생애를 던져 화답했듯이 그의 마지막 가장 큰 궤적을 노무현의 마지막 도전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살아남은 사람의 몫임을 가슴이 알려주고 있다. 노승한/부산시 남구 대연4동
분향소 앞 긴 행렬, 당신은 성공한 대통령입니다 아침 8시20분이면 학교를 가기 위해 어김없이 철산역을 지나가야 한다. 오늘도 역시 철산역을 지나가는데 낯선 천막 하나가 눈에 띄었다. 걸어가다 안을 살펴보니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영정사진이 걸려 있었고 그 앞에는 향불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옆에는 방명록이 펼쳐져 있었다. 그걸 보니 토요일에 서거하신 노무현 대통령님에 관한 기사들이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지나친 분향소를 잊은 채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평소처럼 지내다가 집에 올 때 철산역이 아닌 안양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안양역 앞 광장에 굉장히 긴 줄이 서 있었다. 모두들 노무현 대통령님의 서거를 슬퍼하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임시 분향소에 조문을 하려고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분향소로 돌린 것이다. 조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모두 엄숙했고 침통한 표정이었다. 심지어 조문을 막 마치고 나오는 여학생 두 명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분향소에서 상주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노무현 대통령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존경하는 인물을 추모하기 위해 자진해서 나선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조문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줄을 섰다. 촛불을 받고 촛불을 켜서 기다리는 동안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에 그를 몰아내기 위해 탄핵 시위를 했던 국민들과 헌법재판소까지 갔던 그 시절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야당의 공격과 탈당이라는 일까지 겪었던 그분의 재임기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조문을 마치고 드디어 내가 조문을 할 차례가 되었다. 조문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당신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침통해하는 것을 보니 당신은 그래도 인간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노무현 대통령님께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그의 죽음의 대가라고 여긴 그의 가족들의 자유, 청렴함을 목숨같이 소중히 여겼던 그의 신념이 과연 그의 목숨 값이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그가 살아온 과정들을 생각해 보며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그를 떠올리며 앞으로 단 한 번이라도 그가 했던 것처럼 나의 결심을 한 번 믿고 나가기로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그분께 조의를 표하고 싶다.
‘이카로스’가 되신 아름다운 대통령 사람들은 스스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인간 노무현의 모습도 그럴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았을 것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사진을 통해 덕수궁 앞에 줄을 선, 봉하마을에 모여든 사람들의 가슴속을 들여다본다. 당신이 힘들어 미처 보지 못한 그들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 당신을 애타게 찾는 그들의 믿음. 그들을 통해 당신은 스스로가 보지 못했을지언정, 누구도 당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록 먼 길을 떠났을지라도 이것 하나만 알아준다면 당신의 뒷모습이 그리 쓸쓸하게 비추어지진 않으리라. 당신은 너무나 욕심이 많은 이카로스다. 하지만 그 욕심은 혼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모든 것을 위한 것이었다. 어느 한 사람도 당신의 날개가 가진 아픔과 외로움을 헤아려주지 못했지만, 태양에 날개가 녹아 하늘에서 떨어지는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의 날개는 부러져 녹아버렸지만, 우리는 그 시도를 기억한다. 당신의 고귀한 희생과 풍운아의 삶은 이렇게 기억될 것이다. ‘아름다운 대통령’. 김진구/울산시 남구 무거동
당신 같은 대통령이 또 있을까요? 하늘에 계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유서에는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신분에서 그 여러 사람의 고통보다 더 큰 국민의 고통을 한번쯤 생각해봤는지요? 대통령 노무현에게는 ‘도덕적 명예’의 실추가 정치적 사망선고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보 노무현에게 그것이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검찰 조사에서 충실히 당신이 말한 ‘피의자의 신분’으로 자신을 변호했어야만 했습니다. 당신은 장부답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한 일이다. 나는 몰랐다”라는 당신 말이 맞습니다. 기어코 죽음으로써 그 결백함을 밝히신 것 같습니다. 가족들과 동지들은 평생 ‘고통’과 ‘짐’ 속에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을 목 놓아 부르는 국민들의 꿈과 희망을 외면했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땅에서 당신 같은 대통령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저는 더더욱 당신의 죽음에 강력히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박순웅/국민대 법학부 2년
KBS, 서거 당일 오락프로 내보내서야 온 나라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낸 슬픔에 빠져 있다. 그런데 이런 정서와 무관하게, 서거 당일 <한국방송>이 웃고 즐기는 예능프로그램인 ‘천하무적 토요일’을 내보내 시청자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편성 차별화(?) 덕인지 시청률은 한자릿수에서 12%대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공영방송인 <한국방송>의 예능 편성에 곱지 않은 시선이다. 그런 탓에 현재 <한국방송> 기자는 봉하마을 들어가는 데도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일부 누리꾼 사이에서는 주말 몇몇 오락프로그램의 결방을 아쉬워하는 의견도 없진 않다. 그럼에도 국가적인 슬픔을 맞아 일주일만 참자는 게 다수 의견이다. 더구나 국민의 방송임을 자처하는 공영방송이라면서 한낱 시청률에 매여 국민의 정서를 외면해서 되겠는가. 유선진/원광대 정치행정언론학부 2년
한겨레도 검찰의 입 중계 반성하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숨지고 나자 <한겨레>는 정치검찰의 수사 과정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일부 쓰레기 언론의 보도 행태를 문제 삼았다. 그러나 한겨레도 대검 수사기획관 홍만표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를 놓칠세라 열심히 중계해 댔다. 눈에 뻔히 보이는 검찰의 악의적이고 정치적인 피의사실 공표가 독자의 알권리에 크게 부합하는 일인지를 성찰하는 태도는 눈 씻고 보아도 볼 수 없었다. 가끔 사설, 칼럼에서는 무리수를 두는 검찰 수사에 정도를 가라는 훈수를 두기도 했으나 검찰발 기사와는 동떨어진 얘기들로 오히려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이희영/서울 영등포구 신길7동
청소년들을 위한 대통령께 국화꽃을 노무현 대통령은 청소년의 권리 발전에 있어서 초석을 만드신 분이다. 더구나 ‘참여정부’라는 이름에 걸맞게 청소년이 자신에 관한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참여권을 마련하신 업적은 청소년 권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청소년들이 민주주의 교육을 통해 배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주었다. 재임 기간에 각 부처에 분산되어 있는 청소년 관련 업무를 ‘국가청소년위원회’라는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함으로써 청소년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청소년의 사회참여 활동도 장려했다. 청소년들은 투표권이 없기 때문에 청소년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고 권리가 제한되어 있었다. 그 정책이 정작 청소년을 위한 정책일지라도 청소년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얘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는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노력하셨다. 당시 청소년의 정책 참여를 신장시키기 위해 청소년 특별회의와 청소년 참여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청소년 참여위원회는 청소년 관련 정책 혹은 사업에 대해 청소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자문 및 평가를 하는 기구이다. 대한민국 청소년의 이름으로 영전에 한 송이의 국화꽃을 바칩니다. “당신께서 꿈꾸시던 밝은 대한민국의 미래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당신이 사랑하신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약속드립니다. 이제는 편안한 곳에서 지켜봐 주십시오.” 정재윤/과천외고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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