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양의모 | 작가·전 대학교수
아시다시피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체제 경쟁은 결국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났다. 물론 승리를 거둔 자본주의는 아담 스미스가 말한 자유방임적 원칙에 의거한 고전적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적 요소가 가득한 혼합경제 체제에 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본주의의 승리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비록 북한과 쿠바, 중국 등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연명하고 있으나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는 자본주의 체제가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자본주의는 왜 사회주의에 승리를 거뒀을까? 많은 주장이 있겠지만 필자는 자유에 따른 다양성에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장경제는 자유를 전제로 하고, 자유는 다양한 경제활동을 부르고, 다양성은 경쟁을 통해 발전을 가져왔기 때문인 것이다.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와 달리 많은 낭비와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것이 정부의 적절한 규제와 함께 전체적 수준을 향상시켜 갔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낭비와 실패는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요소라 하겠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명을 강행하겠다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생각은 아무리 들여다 봐도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에 의거한 언론 통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계획경제는 인간의 욕망을 미리 예측하고 이를 계획에 따라 실시함으로써 낭비와 실패를 없애겠다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침체를 가져왔다. 이것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정부 정보 능력의 한계로 인한 실패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동관 후보자는 왜 정부의 판단 능력에 전적인 신뢰를 둔 통제정책을 펼치려는 것인가? 설마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를 언론 분야에서 실현시키려는 것은 아닐지 의구심이 든다.
윤석렬 대통령은 광복절에 ‘공산 전체주의 세력’ 운운하면서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난했지만 이쯤 되면 누가 진짜 ‘공산 전체주의 세력’인지 궁금해진다. 과거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전체주의 세력과 스탈린, 김일성 등의 공산세력은 언론을 통제해 반정부적 의견을 압살하는데 혈안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동관 후보자의 의견은 한마디로 자신들이 언론에 대한 전적인 판단을 내려 이를 통제하겠다고 하니 ‘공산 전체주의 세력’의 언론 정책과 매우 흡사해 보인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엄연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자유와 민주가 하나돼 자유를 바탕으로 한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평등함이 공존하는 것을 지향하는 우리나라에서 몸에 맞지도 않는 시대착오적 ‘공산 전체주의적’ 방법이 국민의 공감을 얻어 정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를 넘어 망상을 지나 광기로 귀결할 것이다. 우리는 부득히 이렇게 외쳐야 할 것 같다. 역사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반국가적 공산 전체주의 세력’을 척결하자고. 이름에 대한 상표권 문제는 나중에 역사의 법정에서 다투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