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희 | 편집인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는 평소 자신이 뉴라이트를 네이밍해 ‘정치 이념 시장의 최고 히트 상품’ 중 하나로 만들었다고 자부해왔다. 2004년 동아일보 정치부장 시절,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이 주관한 집회 인파를 보고 편집국에 제안한 뉴라이트 기획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뉴라이트’를 잡아라’’ 칼럼에서 “한나라당의 유일한 활로는 ‘뉴라이트’로 상징되는 이념의 중간지역으로 진출하는 길밖에 없는 듯하다”고 썼다.
그런 그에게 “이명박(MB) 대통령의 실용주의 노선은 뉴라이트의 정신”이었다. ‘도전의 날들’(2015), ‘평등의 역습’(2019) 같은 책에서 성공한 대통령 만들기가 “정치적 디엔에이를 공유하는 세력이 구축되어 체세포분열과 자기복제를 계속해야” 가능하다며, 뉴라이트 세력이 인수위원회나 청와대·내각에서 주도적 역할을 못 한 것을 패착으로 지적했다. “뉴라이트를 정치세력화하지 않은 것은 우리 정치사에서 뼈아픈 대목이다.” 이동관 위원장 임명 강행이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 단순히 ‘비판 보도 배제’ ‘땡윤뉴스 부활’ 정도가 그의 궁극적 목표로 보이지 않는 이유다. 뉴라이트가 정치사회적 운동이 아닌 담론 제기에 그쳐 ‘보수 장기집권의 토대’를 만들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하던 이동관에겐 그 오랜 소망이 현실화하고 있는 때라 여겨지지 않을까.
윤석열 정부에서 기용된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나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지켜왔던 국가범죄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와 한반도 평화 대원칙을 허물고 있다. 부처로 승격된 보훈부가 하는 일 중 가장 요란한 것은 이승만기념관 건립 문제다. 요 몇년 우파 단체들의 우후죽순 등장은 20여년 전을 방불케 한다. 당시 뉴라이트 핵심 세력 중 하나가 ‘과거 주사파’였던 것처럼, 최근 또다시 586 운동권들을 ‘설거지’하겠다는 ‘민주화운동동지회’가 출범했다.
우려스러운 건 한때 올드라이트의 맹목적 반공주의나 국가주의 보수와 선을 긋거나(안병직-조갑제 논쟁이 대표적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내세우던 뉴라이트가 지금은 더욱 퇴행한 모습으로 권력 깊숙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자유총연맹 창립기념식 참석과 전광훈 목사 등 태극기 계열의 기세등등한 모습에서 보듯 올드라이트나 극우와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아니, 선을 넘어섰다. ‘공산전체주의’를 여섯번씩 반복하며 국민을 갈라치기하려는 대통령의 8·15 기념사는 그 절정이다.
지난 21일 오전, 방송통신위원회가 있는 과천 정부청사 앞 울타리에 ‘방송장악 중단’ ‘이동관 아웃’ 등을 쓴 빨간 리본이 매달려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인사청문회에서 보여준 이동관의 인식엔 자신이 뉴라이트의 핵심이라 주장하던 합리적 보수와는 거리가 먼, 선악의 이분법이 팽배했다. 그는 “지금 공영방송의 가장 큰 문제는 권력과 자본이 아니라 노조로부터의 독립”이라고 말했다. 이 정권에 제1권력은 노조다. 엠비 시절 1970년대 동아·조선일보 해직 사태 이후 최대의 언론인 해고가 있었는데도, “방만 경영이나 방송 공정성에서 현저한 개선은 없었다. 노영방송 뿌리가 깊기 때문”이라고 했다. 1주일여 사이 3대 공영방송 이사장과 이사,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등이 최소한의 법적 절차도 건너뛰며 줄줄이 해임되는 것을 두곤 “아주 적법한 절차로 추진되고 있다”고 답했다.
이동관은 보수를 떠받치는 세 축으로 ‘보수언론, 재계와 전경련 등 자본, 공무원과 경찰’을 꼽아왔다. 엠비 정권에서 언론인 대량 해고와 보수신문에 종편을 안겨주는 채찍과 당근이 쓰였다면, 이번 임명은 아예 공영방송 체제라는 방송판을 근본적으로 해체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한국방송(KBS) 수신료 분리징수를 전격 단행했듯 공영방송의 민영화는 이제 기우가 아니다. 포털이나 가짜뉴스에 대한 강한 대응을 다짐하고, 와이티엔 보도에 연일 거액의 소송을 거는 모습은 2008년 ‘미네르바 사건’ 이후 표현의 자유가 최대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예고편 같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뉴라이트의 주류화 같은 이념적인 지향을 체계적으로 가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자기 무오류에 빠진 채 허약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정권의 폭주와 무기력증에 빠진 야당이 어떤 세력에겐 일본 자민당 체제 같은 ‘보수 영구집권 체제'를 꿈꾸게 한다. 이동관의 방송 장악은 그 그림의 중대한 퍼즐 조각이다.
진보나 보수로 단순화되지 않는 더 많은 다양성이 우리 사회에 있기에, 어느 한쪽을 ‘절멸’시키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거센 후폭풍을 불러올 것이다. 다만 야당이나 시민사회가 정권의 막가파식 행태에 대한 국민의 염증에만 기대 틀에 박힌 비판을 되풀이하는 데 그친다면, 앞날은 알 수 없다. 달라진 국민 의식과 경제 상황, 국제 질서를 시야에 넣은 성찰과 대안이 있어야 민주주의를 위한 튼튼한 가드레일을 세울 수 있다. 이동관 임명 강행이 언론계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과 미래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너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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