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시험 난이도를 지적한 뒤 교육부 대입국장 교체, 출제기관 감사 등의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16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왜냐면] 조경민 | 연세대 철학·국어국문학과 4학년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관련 발언이 화제다. 사교육을 없애기 위해 이른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이라 불리는 ‘비문학’과 ‘융합형 문항’을 수능에 출제하지 말라는 요지다. 이를 두고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당장 수능이 다섯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이러한 변경을 요청한 것이 당황스럽다는 입장과, 수능의 변별력 상실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듯하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을 따르더라도 사교육이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점에 있다. 오히려 비문학과 융합형 문항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저 둘이 사라졌을 때 사교육은 더욱 번성하리라고 예상한다.
수능 비문학의 경우, 낯선 주제에 대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영역이다. 사교육을 아무리 받아도 독서 경험이 부족하면 풀 수 없는 영역이 비문학이다. 외워서 풀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새로운 글을 빠르게 읽고 정보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문학을 잘 보기 위해 학생들은 교과서나 연계 교재를 암기하는 대신 다양한 글을 많이 읽게 된다. 일부 보도와는 달리, 지식보다 독해력을 요구하기에 사교육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영역이다. 한편 융합형 문항은 교과서에서 배운 개념들을 응용해 낯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문항이다. 객관식 시험 안에서 창의력을 최대한 요구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것 역시 단순 암기와는 거리가 먼 문항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비문학과 융합형 문항을 없애면서도 변별력을 유지하라고 요구했다. 만약 이 두 유형을 없애면서도 변별력을 유지하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비문학이 사라진 ‘국어 영역’은 문학이 새로운 ‘킬러 문항’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문학이 어렵게 나오게 되면, 학생들은 교과서와 연계 교재의 문학 작품들을 전부 외우는 방식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다. 또한 문학의 ‘해석’을 어렵게 묻게 되면,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과도한 해석이 개입해 복수 정답 시비도 뜨거워질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봐도 바람직한 수능이 아니다. 비문학이 암기로 해결되지 않는, 학생들의 독해력과 이해력을 묻는 영역이었던 것과는 상반된다.
애초에 저 두 유형을 없애면서 변별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수능이 변별력을 잃게 되면 수시가 수능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거나 ‘대학별 본고사’가 재림할지도 모른다. 수시의 공정성과 관련해서 논란이 많은 점을 고려하면, 이는 바람직한 미래로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대학별 본고사가 등장하게 되면 이를 공교육으로 대비하기는 불가능하다. 각 대학은 기출 문제나 채점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므로 ‘문제 은행’을 보유한 대형 사교육 업체의 입지는 훨씬 커질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1일 경북 구미 금오공과대학교에서 연 ‘인재양성 전략회의’에서 “암기형 인재가 아닌,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창의적 수능’이 아닌 ‘암기형 수능’을 만들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문학과 융합형 문항이 사라지면, 수능에는 정말 암기형 문항만 남게 된다.
시급하게 고칠 것은 수능이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수능을 대하는 우리 사회에 있다. 수능이 사라지더라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대학으로 사람을 가르고 평가할 것이다. 어른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인생이 망할 것처럼 말하고, 의대만 가면 인생이 성공한다고 가르친다. 이런 세태에 대한 해결책 없이, 당장 건드리기 쉬워 보이는 수능만 손대는 것은 본말전도다. 윤석열 대통령의 조치대로 ‘암기형 수능’이 도래한다면 ‘창의적 인재’의 등장만 더욱 요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