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신소영 기자
[왜냐면] 이상식 | 전 부산경찰청장
우병우를 기억하는가.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농단이 있을 당시 그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었다. 권력을 감시하고 민심을 살펴야 할 그는 오히려 국정농단을 방조하고 불법사찰을 자행한 혐의로 비난의 대상이 됐다. 국정농단 가능성을 제기한 ‘정윤회 문건’을 뭉개는가 하면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국기문란사범으로 몰고 간 배후로 지목된 이가 바로 우병우였다. 이 특별감찰관 불법사찰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내려졌지만,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여전히 좋지 않다.
2016년 당시에도 우병우에 대한 사퇴 압박은 거셌다. 여당 지도부와 보수언론까지 합세해 사퇴를 압박하는 와중에서도 그는 끄떡하지 않았다. 의혹제기 시점인 7월께부터 최순실게이트가 터져 청와대 보좌진들이 일괄 사퇴한 10·28까지 무려 넉달 동안 자리를 버텼다. 박근혜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이 배경이었음은 물론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뒤이은 보수의 몰락을 우병우 문제 하나로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들불 같은 사퇴 요구 민심을 무시한 정권의 오만과 불통이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158명의 생떼 같은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도 두달 가까이 흘렀다. 총리조차도 ‘그날 국가는 없었다’라고 시인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안전시스템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경찰 특수본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윗선으로는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법적 책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도의적 책임이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라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상징적 지위에 있으며, 이번 참사에 가장 책임이 큰 경찰과 소방도 그의 관할 아래에 있는 소속기관들이다. 게다가 부적절한 언행으로 유족과 국민의 공분을 샀다. 오죽했으면 유족협의회까지 나서서 콕 찍어 ‘이상민을 해임하라’고 요구했겠는가. 여당 당권주자인 안철수와 유승민도 이상민 장관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서지 않았던가.
그래도 윤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두번이나 이상민 장관의 어깨를 두드리는 모습을 연출해 변함없는 신임을 보여줬다. 국회의 해임건의안에는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진상규명이 우선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나는 그런 이상민에게서 어른거리는 우병우의 그림자를 본다.
우병우와 이상민은 여러 점에서 유사하다. 정부여당에 대형 악재인 사건에서 정치적·도의적 책임의 중심에 서 있다. 우병우는 불법과 비리 의혹이, 이상민은 무능과 실패가 책임의 이유이다. 그러나 국가를 통치하는 데에는 불법이나 무능이나 죄악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상민은 국가 전체의 무능과 실패에 콕 집어 책임져야 할 바로 그 당사자다. 국민과 여론이 강하게 사퇴를 요구한다는 것도 똑같다. 여론조사에서는 65%가 이상민 장관 사퇴를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진즉 물러났어야 할 인사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끝까지 그를 감싸고 있다. 이는 정권의 불통과 오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국민의 실망과 분노를 증폭시킬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랬다. 그래서 그 끝은 어떻게 됐나? 윤석열 대통령은 이상민에게 어른거리는 우병우의 그림자를 어떻게 지워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