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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4월혁명과 이태원 참사, 홍진기와 이상민

등록 2022-12-21 19:33수정 2022-12-21 20:03

홍진기 전 내무부 장관(왼쪽)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한겨레> 자료사진, 연합뉴스
홍진기 전 내무부 장관(왼쪽)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한겨레> 자료사진, 연합뉴스

[왜냐면] 임미리 | 자유연구자

1960년 4월26일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이 원한다면 사퇴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한 직후다. 국회의사당에 모인 시민들은 ‘즉시 하야’를 요구하며 “한희석·홍진기·최인규·장경근·이존화·양유찬·유태하 등의 목을 잘라서 국회 앞에 달아라!” 하고 외쳤다. 부정선거 주범이거나 발포 책임자들이었다.

특히 발포 책임자에 대한 처벌 요구가 거셌다. 4월19일 수많은 사상자를 낸 경무대 앞 무차별 사격은 오후 1시반께 시작됐다. 계엄령은 이보다 늦게 오후 2시 넘어 발령됐지만 1시부터 소급 적용됐다. 계엄령에 앞서 발포 명령을 내린 책임을 덮기 위해서였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김정렬은 계엄령 얘기를 홍진기 내무부 장관이 가장 먼저 꺼냈다고 회고록에 썼다.

이승만의 하야로 혁명이 성공하자 검찰은 발포 명령 관련자를 재판에 회부하고 홍진기와 시경국장 유충렬, 대통령 경호관 곽영주를 사형에 처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하지만 승리한 혁명도 이들을 단죄하지는 못했다. 그해 10월8일 서울지법은 유충렬에게만 사형을 언도했고 나머지는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렸다.

단죄의 기회는 다시 한번 열렸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혁명재판이 열리고 최인규, 곽영주, 이정재, 임화수, 신정식이 사형에 처해졌다. 홍진기에게도 사형이 언도됐지만 무기로 감형됐다가 사면됐다. 연이은 혁명과 정변에서 모두 살아남은 것이다. 그 이후 행적은 잘 알려져 있다.

4월혁명 시기 수많은 사상자를 낸 내무부 치안국은 1974년 치안본부로 승격됐다가 1991년 7월 외청인 경찰청으로 독립했다. 그랬던 것이 올 8월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이 설치되면서 예전으로 돌아가게 됐다. 경찰청은 여전히 외청으로 남았지만 경찰국을 통해 행안부 장관의 강력한 통제를 받게 된 것이다.

그때와 같아진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186명이 희생된 4월혁명처럼 올 10월29일에도 이태원에서 158명이 숨졌다. 1960년 수많은 사상자를 낸 ‘발포 명령’이 당시 내무부 소관이었다면, 이태원 참사 예방에 필요했던 안전확보 의무는 행안부에 있다. 하필이면 경찰국까지 설치해 행안부의 권한과 의무가 더욱 커진 상황이다.

물론 차이가 있다. 1960년 4월 국가가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을 국민에게 했다면 2022년 10월에는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방기했다. 하지만 62년 간격의 두 사건에서 경중을 가리기는 쉽지 않다. 직접 죽인 일과 죽도록 내버려 둔 일, 국가에 저항한 사람들의 죽음과 국가의 보호를 믿었던 사람들의 죽음, 과연 어느 쪽에 국가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는가.

2016년 겨울, 서울 광화문과 시청에 1백만명이 모였지만 모두가 안전할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보호한 결과였다. 그리고 2022년 10월 말, 국가를 믿고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한 그날, 국가는 개인을 배신했다.

그 옛날 홍진기 내무부 장관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이상민 행안부 장관도 처벌은커녕 정치적 책임도 빗겨나갈 전망이다. 1961년 혁명재판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된 홍진기를 박정희가 특별사면해줬듯이, 국회의 이 장관 해임건의안에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홍씨가 누린 부귀영화를 이씨도 누리는 것을 지켜봐야 할지 모른다. 대신 국민은 묻는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는 존재할 이유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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