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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한전·가스공사 적자 20조원…요금인상과 수요조절이 답

등록 2022-10-03 18:14수정 2022-10-04 02:35

10월1일부터 전기요금과 도시가스요금이 4인 가족 기준 평균 7670원 오른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주택가의 도시가스 계량기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0월1일부터 전기요금과 도시가스요금이 4인 가족 기준 평균 7670원 오른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주택가의 도시가스 계량기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왜냐면] 석광훈 |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

유럽발 국제 에너지 공급난으로 한국전력공사(한전)와 한국가스공사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상반기 한전의 적자는 14조3천억원, 가스공사의 적자인 미수금도 5조4천억원에 이르렀다. 국제 가스가격 추세를 볼 때 적자와 부채 규모는 연말과 내년에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부는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h)당 7.5원 인상했지만 연말 적자 개선 효과는 1조원에도 못 미친다.

정치권 일각에 “원래 공기업은 적자를 봐야 한다”는 논리도 있지만, 한전 적자는 세금으로 메워야 하기에 전형적인 조삼모사 논리다. 더욱이 윤석열 정부가 기업과 다주택 소유자 감세까지 추진하는 마당에 천문학적인 한전 적자를 세금으로 보전할 여력도 없어 보인다.

정부는 내심 10년 전 고유가 때 약간의 요금인상과 정부보조금으로 급한 불을 끈 뒤 유가 하락으로 한전이 자연스레 나머지 적자를 해소했던 전례를 기대하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러시아산 가스를 대체하려는 유럽이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현물을 싹쓸이해가고 있어 유가가 내려간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수십년간 전기·도시가스가 ‘공공재’처럼 여겨졌고, 원가와 상관없이 저렴하게 공급돼야 한다는 인식이 굳어졌다. 하지만 에너지요금 보조는 복지와 달리 구매력 높은 소비자에게 혜택이 집중되고, 가격의 수요관리 기능을 박탈하며, 고효율 에너지 기기와 재생가능한 에너지의 시장 진입을 막는 ‘달콤한 독배’다.

외국 사례를 보자. 2013년 이집트 정부는 고유가 상황에서 공기업을 통해 전기·가스·석유 요금 보조에 35조원(현재 가치 기준)을 지출했다. 정부 예산의 22%로 보건의료와 교육 예산 합계를 넘는 액수였다. 세계은행의 조사 결과, 당시 요금 보조로 상위 20% 부유층은 하위 20%보다 8배 많은 혜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집트는 막대한 재정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뒤 10년째 에너지보조금 개혁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 추세라면 우리나라도 에너지 공기업들의 부채와 이자까지 무서운 속도로 불어나 정부 예산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탓’만 하며 ‘쓰나미’ 앞에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정쟁에만 매달리고 있다. 국내 원자력계가 ‘원전 강국’으로 칭송하는 프랑스조차 노후 원전들이 설비 결함으로 무더기 가동 중단되는 바람에 엘엔지 사재기에 나서 세계 엘엔지 가격 폭등의 주범이 됐다.

미증유의 에너지난을 맞아 정부는 전기·도시가스 요금에 원가를 반영해 수요를 줄이는 일부터 나서야 한다. 또 대대적인 주택 단열 개선사업을 통해 도시가스 수요를 근원적으로 낮추는 노력도 필요하다. 공급 쪽에서는 최근 미국과 유럽의 대대적인 해상풍력 투자 사례처럼, 수입 연료가 필요없는 재생가능한 에너지에 대한 대대적 투자와 시장 진입 장벽 해소도 필요하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국내 태양광, 풍력, 히트펌프 제조업체들이 정작 국내에서는 왜곡된 에너지요금으로 설 자리가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이런 정답이 있지만 정부·여당의 전기요금으로 생색내기 관행은 쉽게 바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과거 외환위기의 교훈은 자발적 시장개혁의 기회를 놓치면 결국 외란에 의해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강제적 개혁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재현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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