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호 태풍 힌남노로 경북 포항에 큰 피해가 난 가운데 지난 13일 포항시 남구 대송면 남성초등학교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침수된 기자재를 씻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김은주 | 포항시의원
예전 라디오를 즐겨 들었던 고등학생 시절, 서울에 비가 내리면 온종일 음악 라디오 프로그램에선 비와 관련된 노래를 들어야 했다. 내가 사는 지역에 비가 내리지 않아도 비가 내리는 지역에 감정이입을 강요당했던 셈이다. 세월이 흘러 지역방송국에 20여년 몸담으면서 로컬리티, 지역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일했다. 울진, 영덕, 경주, 포항 등 경북 동해안지역 동네 이슈를 찾아 알리는 게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서울이나 수도권 또는 거대 담론 위주로 보도하는 중앙언론에서 지역 소식은 철저하게 배제됐기 때문이다.
얼마 전 포항이 태풍 ‘힌남노’의 직격탄을 맞았다. 지진 피해 상처도 채 아물지 않은 포항이었기에, 너무 큰 피해를 몰고 온 태풍은 시민들의 가슴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
18일 현재 공식 접수된 피해 규모는 9명 사망 1명 실종, 1천가구 1493명 이재민 발생, 시설물 피해 8천여곳, 차량 침수 8500여대 등이다. 50년 만의 침수로 포스코도 큰 손실이 예상된다. 포항지역 힌남노 피해액은 2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에스엔에스(SNS)에 올리자 다른 지역 지인들의 반응이 놀라웠다. “방송 뉴스에 잘 안 나오니 그렇게 피해가 심각한지 몰랐다.”
태풍 피해가 이렇게 심각한데, 뉴스에 안 나간다고? 찾아보니 전혀 없진 않았다. 비중의 문제였다. 전국 단위 방송에서 포항 태풍은 발생 초기에 잠깐 나오고 금세 사라졌으니, 다른 지역에 사는 분들은 잘 모를 수밖에 없었다.
포항 태풍 피해가 중앙언론에서는 이렇게 빠른 속도로 사라질 사안일까? 여기서 지난 8월 초 서울 강남지역 폭우 피해를 다룬 뉴스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안타까운 인명 피해는 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피해 규모가 훨씬 컸던 포항의 ‘힌남노’에 관한 중앙언론 보도는 인색 그 자체였다. 고등학생 시절 서울에 비가 오면 전 국민이 비 노래를 들어야 하는 상황과 비슷했다. 서울지역 피해는 전국 이슈가 되지만, 포항의 피해는 그렇지 못하다는 건 지방 사람들의 피해 의식일까.
이는 포항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위기의 시대 어디에서나 이런 피해는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이냐 아니냐에 따라 뉴스 대접이 이렇게 달라지는 게 맞을까.
지금이라도 태풍으로 고통받는 포항시민들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시기 바란다. 무엇보다 재난주관 방송사에서는 태풍 피해에 관한 긴 호흡의 심층보도가 이뤄지길 소망한다. 우리에겐 따뜻한 관심과 연대가 절실하고, 언론이 그 일을 할 수 있다.
며칠 전 우연히 ‘초코파이 가격이 400에서 450원으로 인상된다’는 심층 뉴스를 봤다. 초코파이 가격 인상이 저렇게 중요한 뉴스인가? 초코파이 간접광고 아닌가? 부디 초코파이 가격 인상을 심층 보도하는 만큼이라도, 딱 그 정도만 포항 태풍 피해에 관심을 가져주길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간곡하고 간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