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황기철 대한민국 대통령 특사단장·국가보훈처장
“독립군 수는 셀 수가 없어. 왜 그런 줄 아니?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독립군이 될 수 있다, 이 말이야.”
홍범도(1868~1943) 장군님의 유해를 모셔오는 특별수송기 안. 문득 영화 <봉오동 전투>의 대사가 생각났다. 극장 스크린을 통해 봤을 우리 국민들도 영화 속 명대사로 기억하고 있다. 이 짧은 말에는 나라를 빼앗긴 선열들의 기개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어제까지 농사를 짓던 농부, 어제까지 새와 산짐승을 잡던 포수….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말이 결코 평범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머슴, 포수, 의병장, 대한민국 독립군 총사령관의 삶을 살았던 인물. 고아에서 조국 독립운동에 희생하고, 이역만리 카자흐스탄까지 강제이주당하는 등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자주독립의 꿈과 희망을 잃거나 포기하지 않았던 백두산 호랑이. 훗날 카자흐스탄 고려인 동포들의 구심점이자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큰 어른 ‘홍범도’. 그가 꿈에 그리던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순국 78년, 봉오동 전투 101년 만의 ‘장군의 귀환’. 수송기로 불과 7시간 거리에 잠들어 있던 장군을 ‘이제야 모셔왔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대통령 특사로서, 국가보훈처장으로서 한국에 도착해 우리 땅을 밟았던 첫발의 묵직함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공군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서울공항에 도착한 장군의 유해를 문재인 대통령이 예우를 다해 맞이하고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모신 뒤 국민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조국의 땅에서 영면에 들기까지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그를 추모했다. 이전에도 그렇지만 이번 유해 봉환은 우리의 장엄한 독립운동사에 그의 이름 석자를 더욱 뚜렷하게 새기는 성과임이 분명하다.
“진심으로 정부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얼마나 설움과 한이 맺히셨을지 가슴이 먹먹합니다.” “조국을 위해 한평생 목숨 바친 장군님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국가보훈처가 마련한 추모 홈페이지에 남긴 수많은 마음, 대전현충원에서 거수경례를 하는 어린아이, 큰절을 올리던 어르신의 모습에서 우리 국민은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장군의 귀환은 우리의 역사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면서 우리 모두에게 큰 울림이 되었다.
광복을 2년 앞두고 머나먼 땅 카자흐스탄에서 쓸쓸히 순국하셔야 했던 홍범도 장군. 나라 빼앗긴 설움이 뼛속까지 사무쳤을 그의 유해는 태극기를 두르고 광복을 맞은 지 76년 만에 그가 그리던 조국의 품에, 국민의 품에 안겼다.
장군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인 제3묘역에 모시면서 유해 봉환 절차는 마무리됐다. 하지만 홍범도 장군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심은 앞으로도 후손들의 마음속에서 오늘의 역사로 살아 숨 쉴 것이다. 그리고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 속에 장군이 그린 자주독립의 꿈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긍지’와 ‘희망’이라는 두 단어로 선명하게 새겨질 것이다. 정부 역시 우리의 독립영웅들을 조국과 국민들의 품으로 모시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