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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어려울 때 부양 노력 동참해야
정치인 등 직설적 발언은 자제해야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한국은행, 더 좁게는 금융통화위원회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국민경제 차원에서 한은의 독립성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물가 안정 또는 금융 및 경제 안정을 위해 독립성이 필요하고 보장돼야 한다. 독립성 유지 자체가 최고의 선일 수는 없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재정 당국과 통화 당국 간 정책 공조도 당연한 일이다. 국제적으로도 정책 공조가 강조되는 터에 국내에서 재정과 통화 정책이 겉도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도 최근 몇 달간 통화 당국과 금융시장 참가자 및 재정정책 당국자 사이에 갈등과 불편한 상황이 빚어졌다. 현 경제 상황과 앞으로의 전망, 그리고 통화 완화의 강도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이다. 대다수 금융시장 참가자들이나 정부는 경기가 어려우니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한은은 지난해 7·10월 두 차례 인하를 단행한데다 차츰 경기가 나아지는 추세여서 추가 인하는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견지했다. 그러던 금통위가 이달에 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세계 경제는 2008년 글로벌 위기의 연장선상에 여전히 놓여 있다. 소비와 투자를 비롯한 수요 부족으로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더 우려된다. 우리 경제도 크게 다를 바 없다. 8분기째 전기 대비 성장률이 1% 미만이다. 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개월째 1% 초중반을 유지해 목표 범위대를 훨씬 밑돈다. 지금은 대외 불확실성, 엔화 약세, 가계 부채 문제 등으로 상방보다 하방 리스크가 크다. 통화정책 기조가 다소 지나치게 완화적이더라도 부작용과 위험이 크지 않다. 오히려 통화정책이 긴축적일 때 경제 주체들 심리를 위축시켜 저성장 기조를 고착화시킬 수 있는 위험이 커 보인다. 이번 금리 인하가 정부의 경기 부양 노력에 동참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정부와 통화 당국 간 인식의 간극이 근본적으로 메워질지는 의문이다. 금리 인하 과정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 논란이 있었고 금통위원 간의 의견 조율이 순탄치 않았을 수도 있다. 이번 인하가 마지못해 한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고 한은이 다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다면 앞으로도 논란은 가라앉기 어려워 보인다. 정책 당국자 간 의견이 항상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견해차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한은과 금통위이지만, 통화정책의 적정성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의견 제시가 가능해야 한다. 특히 통화와 재정 정책 담당자들 간에 활발한 의견 개진과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다만 책임 떠넘기기식 발언, 괜한 오해를 야기할 정책 당국자나 정치인의 직설적 발언은 자제될 필요는 있다. 시장이 항상 옳거나, 시장이 원하는 대로 통화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소통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것이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높이는 길이다. 몇 달 동안 통화 당국은 지극히 소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동안 독립성 및 통화 정책과 관련해 한은의 입장에 동조해 온 많은 사람들이 지지를 거둬들일 정도였다. 경제가 어려울 때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 제고와 통화 당국의 영향력 확대가 가능해지고 독립의 당위성도 확보되지 않을까 한다. 이창선 엘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은 독립성, 기회를 줘야 책임도 생겨 정권 압박에 흔들리는 모습 여전
미·일 통화정책이 꼭 모범은 아냐
스스로 갈 길 찾게 기회를 줘야 지금부터 7년 전인 2006년 11월8일 도하 신문은 발칵 뒤집혔다.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결정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가 한국은행에 압력을 넣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전말은 이러했다. 청와대 김수현 사회정책비서관이 11월6일 이성태 한은 총재를 방문해서 면담했는데, 이는 김 비서관이 “사적으로 인사를 드리기 위한” 자리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언론은 없었다. 그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집값을 잡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던 시절이었다. 그 결실이 이 방문 조금 앞서 발표했던 8·31 부동산 정책이었고 그 산파역이 자타가 공인하는 부동산통인 김 비서관이었다. 따라서 김 비서관의 방문은 한은 총재를 압박하기 위한 자리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당시 압박은 전방위적이었다. 김 비서관의 방문 하루 전인 11월5일에는 국정홍보처가 ‘부동산 가격상승 원인이 저금리로 인한 과잉 유동성’이라고 지적하는 국정 브리핑을 했다. 며칠 전인 11월2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외국인 투자 유치 보고회에서 “요즘 부동산 문제가 혹시 금융의 해이에서 발생한 것 아닌가 하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까지 언급했다. 그러나 언론이 들끓은 다음날인 9일 한은은 금리를 동결했다. 체면 때문에 도저히 금리를 인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한은이 ‘남대문 출장소’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까지 몰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이성태 총재는 2주일 뒤 다시 맞은 금통위에서 지급준비율 인상이라는 편법으로 노 대통령에게 보은했다. 한은 직원들이 다 시인하듯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상태에서 지준율을 인상해 봐야 시중 금리는 조금도 변화할 수 없다. 달라지는 것은 시중은행의 이윤이 줄고 한은의 이익이 증가하는 것뿐이다. 그래도 한은은 긴축 효과가 있다고 억지를 부렸다. 2주일 전 금리를 동결할 때의 논리는 간 곳도 없이. 이때의 교훈은 무엇이었나. 우리나라에는 한은 독립성이 없다는 점.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무 노골적으로 한은을 압박하면 한은도 삐친다는 점. 물론 삐쳐봐야 오래 못 가고 결국 정부가 하자는 대로 한다는 점. 이런 것이 서글픈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났지만 서글픈 현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정권도 바뀌고 사람들도 바뀌었지만 행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나 한은을 압박하고, 한은은 한번 대드는 척하고 한 달 만에 손바닥을 뒤집고. 변화하지 않은 것이 하나 더 있기는 하다. 한은 독립성을 규정한 한국은행법 제3조다. 모피아의 등쌀과 정치권의 탐욕 때문에 ‘독립성’이라는 말조차 사용하지 못하고 ‘중립성’이라고 표현되었지만 그 내용은 엄연한 한은 독립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 한은법 제3조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7년 말 13개 금융개혁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 금융 ‘개혁’의 차원에서 비로소 명시적으로 도입된 조항이었다. 돈을 찍어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미국과 평가절하만으로 성장하려는 일본이 정말 우리의 모범이 된다는 말인가.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이 이처럼 쉽다면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의 공무원들부터 다 해고해서 세금이라도 절약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은은 스스로 제 갈 길을 찾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래야 책임도 생기고 전통도 생기는 법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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