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북에 대한 ‘위협 신뢰성’ 높아져
북은 위협 통한다는 ‘우상’ 버려야 연일 새로운 위협 카드를 꺼내드는 북한을 보면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가 연상된다. 북한은 ‘동굴의 우상’에 빠져 있으며 동굴 밖으로 나와 해를 보기보다는 동굴 안에 스며든 빛의 그림자에 의존하면서 우상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첫째, 북한은 위협적 발언과 행동을 취하면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이 위협들을 실질적 위협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우상에 빠져 있다. 북한은 정전협정 백지화, 남북 불가침 선언과 비핵화 공동선언 무효화 등 수사적 위협을 가하고 1호 전투근무태세 명령 하달, 군 통신선 단절, 5㎿ 원자로 재가동, 개성공단 입경 금지 등의 행동으로 위협 수위를 증대시키고 있다. 위협이 ‘실질적’ 위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위협의 신뢰성’을 높이려는 조처다. 반면, 한-미 동맹의 강경 대응 의지에 대한 ‘신뢰성’은 높아졌다. 한-미 연합훈련에 참가한 비(B)-52 전략폭격기, 비-2 스텔스 폭격기, 그리고 에프(F)-22 스텔스 전투기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볼 때, 북한이 이를 실질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협의 ‘신뢰성’이 높아졌다. 둘째, 북한은 미국과의 대결 구조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담판 지을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이 인질이 될 수 있다는 우상에 빠져 있다. 그러나 한-미 연합훈련 기간에 보여준 미국의 강경한 입장은 북한이 얼마나 오판에 빠져 있는가를 보여준다. 비-52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샤이엔 참여에 이어, 비-2 스텔스 폭격기와 에프-22 스텔스 전투기가 미국 본토와 일본에서 전개된 것은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비용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조처라고 할 수 있다. 즉, 잘못된 행동에 대한 비용을 높임으로써 행동 변화를 촉구하는 미국의 의지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미국은 최첨단 군사력 전개를 통해 동맹국인 한국에 포괄적 확장 억지 전략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한국에 대한 확고한 방어 능력과 의지를 보여줬다. 셋째, 북한은 위협 고조로 한국 사회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상에 빠져 있다. 북한은 미군의 첨단 군사력이 한반도에 전개된 이후, 개성공단 카드로 한국 사회의 분열을 조성하려고 한다. 개성공단 진입을 금지함으로써 한국 근로자들의 신변 안전 문제와 개성공단 사업자들의 손실 문제 등을 공론화시켜서 남-남 갈등을 부추기려고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대북 이슈들에 대한 이해력과 대처 능력의 성숙도가 높아졌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북한 주민들과 군이 이런 상황을 참고 견디며 위기의 즉응 태세를 최고조로 유지하는 가운데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 노선’이 성공할 수 있다는 우상에 빠져 있다.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건소는 지도자의 주요 덕목으로 ‘분별력’을 꼽았다. 분별력이란 실천적 지혜와 통찰력, 그리고 상상력, 서로 다른 것들을 동시에 고려하는 능력 및 초연함 등을 의미한다. 북한은 ‘분별력’을 갖고 ‘동굴’ 밖으로 나와야 한다. 비-52, 비-2, 에프-22는 짧은 훈련을 마치고 미국과 일본의 기지로 되돌아갔다. 북한은 진정한 두려움과 위협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동굴’ 안에 비친 그림자에 갇혀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동굴’ 밖으로 나오면 위협의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북 군사주의자 입지 강화시킬 우려 한반도 군사적 대치 일촉즉발 상황
핵폭격기에 북 반응 더 거칠어져
무력시위보다 출구 모색 나설 때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대치가 일촉즉발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서로를 자극하는 군사적 언동 외에 다른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최선인가? 아니면 차선이라도 되는가? 북한은 3월5일 키리졸브 훈련을 “조선정전협정에 대한 체계적인 파괴행위”라고 규정하고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도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음이 없이 임의의 시기, 임의의 대상에 대하여 타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훈련에 지난해와 달리 비(B)-52 전략폭격기가 참여하는 것을 거론하며 “정밀 핵타격 수단”으로 맞서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에 질세라 한·미 양국은 비-52를 세 차례나 한반도 상공에 띄웠고, 3월26일에는 미국 본토에서 날아온 비-2 스텔스 핵폭격기의 모의 폭격 훈련을 공개했다. 세계 최강 스텔스 전투기 에프(F)-22도 가세했다. 미국도 ‘임의의 시기, 임의의 대상에 대해 타격’할 수 있음을 과시한 셈이다. 한·미 양국의 대응은 남한 내 핵무장론을 잠시 잠재우는 데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런 식의 무력시위는 핵무장론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다. 한편 이 방식이 북한의 군사주의자들을 주눅들게 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도리어 그들의 영향력을 키워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군사적 언행이 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문제를 군사적으로만 인식하면 상대방의 자극적 언행에 대해 민감해지는 반면 우리 쪽의 군사적 언행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둔감해질 수 있다. 특히 상대에 대해 도덕적·군사적 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하다고 느낄 때 더 심각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사실 북한 군부는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한·미 군사 당국이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내뱉었던 용어들을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다. 선제 핵공격, 정밀타격, 2차·3차 보복공격 등이 그것이다. 2009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자 한·미는 유사시 북한을 군사적으로 점령해 대량살상무기를 접수해 해체하고 북한을 안정화한다는 계획을 공표했고, 이를 2010년 키리졸브 훈련 목표로 명시하기까지 했다. 이보다 앞서 9·11 사건 직후,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와 북한 같은 ‘불량국가’에 대해 설사 핵을 보유하지 않아도 미국이 핵 선제공격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했다. 부시 행정부는 실제로 이라크를 공격했다. 그러나 그 전쟁은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장담하는 것처럼 5일 이내에 적에게 궤멸적 타격을 입히는 것으로 깔끔하게 끝나지 않았다. 3월5일의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에는 “이 땅은 결코 발칸반도가 아니며 이라크나 리비아는 더욱 아니다”라는 표현이 있다. 과거 10년 동안 북한 군사주의자들이 어떻게 북한 내에서 힘을 얻어왔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과거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었을 터이니 약간의 희망은 있다. 하지만 북한 역시 지난 10년 동안 세상 이치에 대해 배웠다고 생각할 터이니 그런 북한을 설득하려면 과거보다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한다. 문제는 미국과 한국이 그 비용과 노력을 들일 준비가 돼 있느냐다. 어떤 분석가는 앞으로 젊은 세대들을 전후 세대가 아니라 전전 세대라고 불러야 하는 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한다. 박근혜 정부는 무력시위가 아니라 출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