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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출신 일색 재판관 구성도 문제
검찰 출신 불가론은 협소한 시각 박한철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헌재 소장으로 지명된 것은 기존 틀을 깨는 신선한 충격이다. 이는 24년의 헌법재판 역사와 사법 시스템에서 두 가지 중요한 전환을 의미한다. 하나는 재판관 출신이 소장에 지명돼 헌재의 독자적 위상이 비로소 확립된다는 것이다. 헌재 소장은 1기를 제외하고 2~4기 모두 대법관 출신이었다. 대법원장이 3명의 재판관을 지명하는 제도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소장마저 대법관 출신이 맡아 헌재의 권위는 대법원의 권위에 눌려왔다. 우리 헌법은 헌재와 대법원의 위상을 대등하게 놓고, 공익과 인권의 긴장을 헌법적 관점에서 조율하는 막중한 책임과 권능을 헌재에 맡겼다. 이번 지명은 그런 대등한 권위를 복원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의미는 법관 출신 일색이던 인적 구성에 변화의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이다. 헌재 재판관은 약 80%가 법관 출신이었다. 그나마 1기에는 소장을 비롯해 법관 출신 재판관들 중 오랜 변호사 또는 국회의원 경륜을 지닌 분이 있었지만, 이후 대부분 법관 신분에서 곧바로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임명됐다. 소장마저 18년 연속 대법관 출신이었다. 20~30년 민형사 재판 경륜만 있는 재판관들로 대부분 구성되는 헌재는 안정적 헌법 해석으로 법적 안정성에 기여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대 변화를 읽어내 그것을 헌법적 가치 결정에 투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검찰 출신 재판관의 소장 지명은 경직된 인적 구성에 변화를 줘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좀더 큰 틀에서 담아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그가 검찰 출신이라고 비판하지만, 위와 같은 중요한 의의를 고려하면 이 비판은 적절하지 못하다. 더구나 검찰 출신은 재판관은 돼도 소장은 될 수 없다는 논리는 기이하다. 헌법은 헌재 소장을 헌재 재판관 중에서 임명하도록 할 뿐, 법관 출신 재판관만 소장을 해야 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미국에서 헌법 재판권을 최초로 확립한 존 마셜 전 대법원장은 국무장관을 하다 대법원장으로 임명됐고, 1950~60년대에 진보적 판결들을 쏟아낸 얼 워런 전 대법원장은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 출신이다. 또한 50살에 임명된 존 로버츠 현 대법원장은 레이건 행정부에서 검찰총장 특별보좌관,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법무차관을 지냈다. 그는 보수적인 아들 부시 대통령에 의해 2005년 대법원장에 임명됐지만, 작년에 보수층의 예상을 깨고 오바마 대통령의 상징적 개혁법안(건강보험개혁법)에 손을 들어줬다. ‘검찰 출신 헌재 소장은 문제’라는 관점은 너무 좁은 시각이 아닐까? 또 일부에서는 박 재판관이 대검 공안부장 때 ‘촛불집회 무차별 기소, 미네르바 사건 수사 지휘 등으로 국민을 겁박했다’고 공격하지만, 이는 재판관 인사청문회 때 종결된 쟁점이다. 회의록을 보면, 민주당의 박지원·박영선 의원의 질의에 박 재판관은 ‘관여한 바가 없다’고 답변했고, 두 의원은 ‘알겠다’며 더 추궁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영선 의원은 “법무장관이 촛불집회 강경진압을 요구했는데 공안부장으로서 반대 의견을 피력했고 그 때문에 고검장 승진에서 탈락했다고 보는 것이 검찰의 일반적 분위기더라고요”라고 발언했다. 당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는 “헌법재판관으로서 필요한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고, 인사청문위원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검찰 출신 소장 ‘헌법 현실’과 상충 정치 중립 생명인데 검찰 출신 곤란
공안적 시각과 헌재 역할은 모순
박 후보자 기존 결정 봐도 부적절 헌법재판의 본질은 정치다. 다양한 이념과 가치, 이해관계가 마지막 일합을 겨루는 정치투쟁의 공간이 헌법재판이다. 세간의 정치가 다수결에 의한 힘겨루기라면, 헌법재판은 헌법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헌법 해석 투쟁일 따름이다. 헌법재판소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함은 이 때문이다. 헌재의 판단 기준은 힘의 논리가 아니라 국민의 주권적 의지가 결집된 헌법이어야 한다. 최근 헌법재판소장으로 공안검사 출신의 박한철 재판관이 지명됐을 때 많은 이들이 직관적으로 당혹감을 느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치적 중립성·공정성을 모토로 하는 헌재 수장이라는 지위와 정치적 편향성으로 지탄을 받아온 공안검사라는 경력이 권위주의 통치의 고통이 여전히 남아 있는 우리의 헌법 현실에서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주지하듯 공안검찰의 역할은 국가보안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중심으로 해 시민사회의 이념적·사상적 다양성을 통제하고 시민들의 입과 귀를 막는 데 집중돼 있다. 혹은 집시법 집행 또는 선거사범 단속의 명분으로 시민사회가 정치에 참여하는 통로를 막아왔다. 노동 사건을 체제 문제로 변형시켜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형해화시킨 것 역시 그들의 몫이었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가 시민사회를 옥죄려고 행사한 정치 폭력을 법의 이름으로 포장해 은폐·엄폐하는 중심 기구가 공안검찰이었고, 정치권력의 편애를 받아 항시 중용됐던 것도 바로 공안검사였다. 그래서 개인적 자질이나 능력과는 무관하게 공안검사 출신의 헌재 소장이라는 조합은 형용모순의 혐의를 벗기 어렵다. 자유로운 민주주의를 향한 헌법의 의지를 거부하면서 정치 검찰을 자임해 온 공안검찰의 이미지와 헌법 정치를 통해 인권 보장과 정치 민주화를 도모해야 하는 헌재의 헌법적 역할은 양립 불가능의 대척점에 자리잡는 것이다. 물론 공안검사 출신도 헌법재판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입헌주의가 요구하는 헌재의 위상과 아직도 현실을 옥죄고 있는 과거사를 고려한다면 헌법재판관은 몰라도 헌재의 수장만큼은 달리 생각해봐야 한다. 정치투쟁의 꼭짓점에서 투철한 헌법 의지 하나만으로 움직여 나가야 할 헌재는 무한한 국민적 신뢰와 지지가 유일한 존재 기반이 된다. 그런 만큼 공안검사 출신 소장이 이끄는 헌재가 국민적 신뢰의 대상으로 적절한지는 의문스럽다. 박한철 재판관이 그동안 내놓은 결정들도 우려를 부추긴다. 그는 온라인을 통한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찰의 서울광장 통행 저지, 공무원의 정치 행위 금지, 단체협약 시정명령 위반행위 처벌 등 공안검찰의 소관 사항과 연관된 법률에 대해 일관되게 그 효력을 유지시키고자 했다. 구시대적 국가주의에 따라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이나 노동권을 억압하는 공안적 시각이 여전히 목도되는 것이다. 더러 ‘87년 체제’의 최대 성과로 헌법재판 제도를 들긴 하지만, 그동안 보수화 국면에서 헌재가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격하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게 일고 있다. 심지어 최근 그 수장의 임명을 둘러싸고 최대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 바람에 박 재판관의 소장 임명 여부는 헌재와 우리 헌법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대사가 됐다. 그가 공안검사의 틀을 벗고 헌재를 제자리에 세울 수 있을 것인지를 진중히 질문해 보는 것은 청문에 임하는 국회의원뿐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주어진 막중한 헌법적 의무로 다가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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