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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논쟁] 학교폭력, 누구를 탓해야 하나?

등록 2013-03-21 19:24수정 2013-03-21 19:26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

11일 경북 경산의 고교생 최아무개(15)군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고 대책도 줄줄이 나왔지만 누구도 최군을 구하지 못했다. 이번 사례는 학교폭력 감시용 폐회로텔레비전(CCTV)의 사각지대에서 폭행이 이어졌다는 점에서 충격을 줬다. 최군이 중학생 때 학교 쪽이 폭력 피해에 대해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학교폭력 방지책의 허점도 보여줬다.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학교폭력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할지에 관해 두 전문가의 견해를 들어봤다.

이명박 정부 경쟁교육이 낳은 참사

재탕 대책은 근본적 해법 안돼
경제 논리로 접근한 정부 책임 커
교육 황폐화 주범 경쟁교육 청산해야

정부는 학교폭력 대책으로 △고화질 폐회로텔레비전(CCTV) 확대 설치 △경비실 확대 운영 △폭력서클 집중 단속 등 ‘재탕’ 대책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는 본질적 원인을 외면하고, 스스로 꽃다운 목숨을 끊은 수많은 학생들 목소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나무뿌리가 심하게 병들었는데, 잎을 소독하고 약을 바른다고 건강해지겠는가?

매일 한 명꼴로 청소년들이 죽어간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0년 10대 청소년 자살자는 353명이다. 전염병으로 매일 한 명꼴로 국민이 죽는다면 주무 장관이 몇 번 사퇴했을 것이고, 대통령도 몇 번이나 사과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사과는커녕 방향 전환도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교육은 밀집 사육에 가깝다. 동물을 방목하면 건강하게 자란다. 그러나 좁은 우리에 가두면 스트레스를 받아 약한 자를 괴롭힌다. 학생들을 교실에 가두고 너희들은 공부만 하라고 강요하니까 약한 아이를 상대로 해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아닐까? 학교폭력은 학생들보다 어른들 책임이다.

처벌과 징계만으로는 학교폭력이 근절되기 어렵다. 선생님들이 폐회로텔레비전이 돼야 한다. 학급당 학생 수를 선진국 수준(20명 이하)으로 낮추고, 선생님이 수업과 생활 지도에만 전념하도록 잡무를 획기적으로 경감하고, 상담 시간을 수업시수에 포함해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만 아이들을 상담하면 그들이 왜 아파하는지 알 것이다.

교육은 한때 우리나라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교육 때문에 다들 못 살겠다며 고통스러워한다. 학생 입장에서 보면, 왜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공부한다. 세계 최장 시간의 학습 노동에 시달린다. 하기 싫은 공부만 하려니 죽을 노릇이다. 그러다 보니 게임·음란물 중독, 음주 등으로 탈선하고, 집단 따돌림과 학교폭력도 심화된다. 청소년 우울증도 심각하다. 친구가 친구가 아니다. 짓밟아야 할 경쟁자일 뿐이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학력 사회의 현실 때문에 아이가 어릴 때부터 공부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억지로 강요하다 보니 아이와의 갈등도 피할 수 없다. 사교육비 마련하느라 등골이 휜다.

교사 입장에서는 입시 위주 교육을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 없다. 교육 전문가가 아닌 단순한 지식 전달자로 전락했다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성적과 대학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우리 교육은 이제 벼랑 끝에 이르렀다. 병든 교육, 미친 교육은 중단돼야 한다. 북유럽처럼 협력 교육, 행복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교육, 자율성과 창조성이 숨쉬는 교육, 개성과 소질을 살려주는 맞춤식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교육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졌다.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이고 바른 인성을 키우겠다고 부르짖었으나 사교육비가 줄었는가? 교육은 교육 논리로 접근해야 하는데도 섣부른 경제 논리를 적용해 교육을 망쳤다. 학생, 교사, 학교, 심지어 교육청까지 경쟁시키는 필요 이상의 경쟁 교육이 됐다. 낙오하는 학생들의 위화감이나 상처는 커지고, 학업을 중단하거나 자살을 하는 학생이 속출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달라지기를 기대한다.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지나친 경쟁 교육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


학교폭력은 범죄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정부의 노력만으로 해결 어려워
‘인권’과 함께 교사 지도권 중요
형사미성년자 면책 재검토 필요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지난해 정부의 종합대책 발표가 있은 지 1년 뒤에 다시 발생한 학생 자살로 학교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자살과 폭력 예방 대책이 서로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으로 악순환이 반복되는 느낌이다. 문제는 이번에 경북 경산에서 자살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지난 2년 동안 중학교에서 학교폭력에 시달렸다는 사실이며, 해당 중학교에서는 상담 교사가 가해 학생을 상담했는데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금만 신경을 썼어도 꽃다운 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는데 학교와 교사의 미온적 대처로 한 학생이 학교폭력의 희생양이 되도록 방관했다는 점에서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울 뿐이다.

지난해 초부터 정부는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모든 부처가 나서서 집중적으로 추진해 왔다. 전례 없는 학교폭력 전수조사, 117 학교폭력 신고 전화, 학교폭력 전담 경찰 인력 확대 등으로 학생과 학부모가 이제는 안심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할 시점에 또 자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사후 땜질식의 정부 대책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국민들도 서서히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들도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전국에 초·중·고 학교가 1만1000여개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정부 차원의 대책들이 지난 1년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폐회로텔레비전(CCTV) 확대나 전수조사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교사·학생을 포함한 일반 국민의 인식 변화와 적극적 참여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우선 교사부터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아무리 정부가 학교폭력 처리 매뉴얼을 잘 만들어 현장에 보급한다고 해도, 학교와 교사가 서류에 의존한 형식적 처리에 집중하면 학교폭력은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교사들이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 학교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수수방관한다면 제2,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교사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더 관심을 기울이게 하려면 교사의 손발을 묶어놓는 학생인권조례도 변화될 필요가 있다. 교사가 지도하다 보면 다양한 형태로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게 되는데 지나치게 학생 인권이 강조되면 교사들이 혹시나 문제가 될까 싶어서 지도에 소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학생을 포함해 사회 전체가 학교폭력은 범죄라는 엄격한 사회적 인식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사소한 말장난부터 성인 범죄 수준의 폭력은 어느 하나도 학교에서 용인될 수 없다. 하지만 성폭행처럼 심한 폭력이 발생해도 현재처럼 만 14살이 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학교폭력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온정주의를 넘어, 나이와 상관없이 엄격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제 학교폭력은 학교만의 문제를 넘어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산 고등학생 자살을 계기로 삼아 학교폭력은 단시간 안에 해결될 수 없을뿐더러, 학생, 교사, 학부모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이 학교폭력 방지를 위한 지속적 노력을 통해 학교에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됐으면 한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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