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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논쟁] 완전 도서정가제,어떻게 봐야 하나

등록 2013-02-07 19:23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단다. 그런데 “사람을 만든다”는 책의 위신이 말이 아니다. 가격 책정에 시비가 붙어서다. 최근 도서정가제를 강화하는 법 개정이 추진되면서 책값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지금은 발행일로부터 18개월이 지난 대부분의 책을 20~5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지만, 완전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이런 혜택은 없어진다. 신간 도서의 가격 상승과 중소서점의 몰락을 막기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찬성론과 이 제도를 시행하면 구매가 위축되고 출판시장 전반에 악영향이 미칠 것이라는 반대론이 팽팽하다. 양쪽의 견해를 들어봤다.

저작자 보호·거래질서 확립 위해 필요

도서정가제 취지는 문화적 배려 차원
책이란 상품의 특수성 인정해야
가격비교에 독자들 휘둘려선 안 돼

경제학에서 ‘가격’이란 기업이 제조·판매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대가로 구매자가 지급하는 화폐금액을 뜻한다. 이와 같은 가격은 한편으로 기업의 제조원가를 보상하고 이윤이 생기도록 해주는 방향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구매자의 지급능력과 구매의욕에 대응하는 방향에서 결정되어야 하는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다. 또한 가격이란 상품이 흘러가게 만들어주는 기능을 함으로써 소비자와 생산자를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이러한 가격이 시장에서 일정하게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해주는 제도가 정가제인데, 법률적·경제적 용어로는 재판매가격 유지제도를 말한다.

우리 공정거래법에서는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를 독립사업자들의 자유로운 판매가격 책정을 구속하여 가격경쟁을 제한하는 반경쟁적 행위로 보고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법정재판’과 ‘지정재판’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현재 법정재판으로서 도서정가제가 시행중에 있으며, 공정거래위원회가 별도로 지정해준 상품은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서정가제를 인정하는 근본취지는 서점에 일정한 마진을 보장해주기 위해 마련된 제도라기보다는 문화적 배려 차원에서 저작자를 보호하여 창작 의욕을 북돋우고 출판물의 거래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측면이 더 강하다.

이처럼 도서정가제는 ‘책’이라는 상품의 특수성을 인식하는 데서 나온 제도인 셈이다. 상품으로서 책이 갖는 특징은 사용가치가 창출되는 그것의 근본적인 질이 비물질적인 것에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의 사용가치는 책의 종류나 모양, 즉 매개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로부터 나온다. 메시지는 비물질적인 것이며, 이러한 특징은 과자나 전자제품 같은 물질적인 재화의 가치가 물질의 소비 과정에서 발생하며 욕구가 있을 때까지 소비가 반복된다는 점과 비교해볼 때,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책의 사용가치는 이질적인 소비자 욕구에서 나오기 때문에 상품 차별화가 가능하며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준다. 그 밖에 책은 판매 면에서도 다른 제품과는 사뭇 다른 특성을 보인다. 우선 출판물의 판매는 위탁 또는 상비임치제도로써 발전해왔다. 현금거래만으로는 판매증진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성실하고 신용 있는 서점에 일정량의 책을 위탁하여 판매하게 하거나 서점과의 합의로 일정량을 항상 보관토록 하는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또한 전통적으로 정가판매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법정재판 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아울러 시장조사가 어려운 상품이어서 수요예측이 매우 곤란하다.

따라서 적정 생산량을 측정하기도 어렵고, 반품률이 매우 높으며, 그만큼 유통업자에 대한 의존도 또한 높을 수밖에 없다. 상품의 단가는 다른 상품에 비해 낮지만, 품종이 많다 보니 판매 과정에서 손이 많이 간다. 게다가 광고의존도 강하며, 소비가 되풀이되는 다른 상품과는 달리 독자의 반복구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질적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이럴진대, 책의 가치는 결코 물질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나아가 그것이 인류의 질적 수준을 이끄는 본령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도서정가제는 완전하게 지켜져야만 한다. 더 이상 가격을 비교하느라 독자들이 이리저리 휘둘려서는 안 된다. 한번 씹고 버리는 껌과 다를 바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책일 수 없기 때문이다.

김기태 세명대 미디어창작학과 교수


소비자 외면한 시대착오적인 발상

출판시장 침체가 가격할인 탓인가
완전정가제론 도서시장 강제 못해
소비자 편익 왜 막으려고만 할까

도서정가제의 역사는 대략 3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가 ‘책값 정가판매제’로 법적 시행을 하면서다. 이는 옛 종로서적을 중심으로 자리잡아가는 듯했으나, 1980년 교보문고를 필두로 신생 대형서점들이 들어서면서 서서히 약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 중·후반 인터넷서점의 등장으로 서적에서도 유통점이 출판사를 이끄는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완전 도서정가제 시행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 제도를 시행하면 침체된 출판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고, 동네서점이 몰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출판시장 침체와 동네서점 몰락이 가격할인 탓이라는 지적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출판사의 경쟁력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콘텐츠 작가 확보를 기반으로 한 기획 능력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중소 출판사는 재고관리가 핵심이 되곤 한다.

반면 유통방식은 시대에 맞춰 빠르게 변하고 있다. 바야흐로 시장(독자)의 변화가 유통(서점)을 기점으로 생산(출판)자를 이끌기 시작한 것이다. 마케팅 기획 능력을 갖춘 몇몇 대형 출판사의 경우 여전히 유통점을 통제할 수 있겠으나, 대부분의 출판사는 그렇지 못하다. 오늘날의 독자는 과거의 독자처럼 오프라인에서만 구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독서 행태도 완전히 바뀌었다. 많은 책들이 보존가치보다는 즉각적 사용가치로 구입되고, 신간과 구간의 구분도 과거처럼 연도 기준이 아니라 인기도와 대체 도서 여부가 된 지 오래다.

도서정가제가 지금의 도서유통시장을 강제하지 못할 이유는 여럿 있다. 첫째로는 법적 강제가격제의 성공 여부는 오로지 시장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최근 추진했다 실패한 오픈 프라이스(판매가격 표시제도)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인기상품과 같은 베스트셀러의 가격은 절대 강제로 통일될 수 없다. 둘째로 독자(소비자)는 다양한 서점(유통)을 이미 경험했다. 할인된 가격에 마일리지까지 쌓아가며 집에서 편리하게 책을 구입하고 있다. 이러한 소비자 편익을 왜 막겠다는 것인가. 강제로 막는다면 반드시 또다른 형태의 서점이 생겨날 것이다. 시장에 대한 강제정책이 제조분야에서는 비교적 가능할지 몰라도 유통분야에선 성공한 사례가 없다. 그래서 시장정책은 마약류와 같은 부정상품을 제외하곤 반드시 소비자 중심적 사고에서 입안돼야 한다.

다양한 시각의 도서 발간을 위한 작가층 발굴·유지와 출판사 육성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고자 한다. 우선 책이 정신적 양식이라면, 식품·의류 시장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즉 패스트패션류는 소비자 욕구에 빠르게 맞추면서 때때로 아주 조금 앞서 끌어가는 제안(상품)을 내놓는다. 이런 경우에는 제조-유통이 다양한 형태로 엮이지만 가격만은 단계별로 할인율이 적용되는 재고 제로를 목표로 한다. 최종적으로는 아웃렛에서 정가의 10~30% 수준에 판매된다. 다음으로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장서용(내구 사치품)과 소비용(편의품)으로 구분 제작해야 할 것이다. 독자의 효용가치 관점에서 구분하여, 지금과 같은 고비용 마케팅 일변도의 출판제작을 지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재래서점은 나름의 지역적 장점을 살린 변신을 해야 한다. 이제껏 서적 재고 판매 방식이었다면 앞으로는 지역민 밀착으로 좀더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는 변신이 요구된다.

이승창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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