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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논쟁] 정부의 ‘무상보육’ 폐지, 어떻게 봐야 하나

등록 2012-10-04 19:37

정부의 ‘무상보육’ 폐지, 어떻게 봐야 하나

정부가 재원 부족 등을 이유로 만 0~2살 아이에 대한 전면 무상보육을 내년 3월부터 폐지하기로 하면서, 보편복지냐 선별복지냐를 둘러싼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재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고소득층까지 무상보육을 지원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 정부와 선별적 복지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복지는 국가의 책무이니 기존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보편적 복지론자들의 반론도 만만찮다. 양쪽의 견해를 들어봤다.

가구소득 따라 차등지원 바람직

무상보육 탓 복지 과수요 발생
고소득층까지 확대할 이유 없어
취약 계층에 선별적 지원해야

김인경 KDI 재정·사회정책 연구부 연구위원

최근 정부는 양육지원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전 계층에게 종일제로 지원되던 영아 보육료는 여성의 근로 여부에 따라 반일제와 종일제로 구분되고 가구소득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원될 계획이다.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영아에게는 시간제 보육이 제공된다. 유아의 경우, 현행과 같이 모든 계층이 종일제 보육료를 전액 지원받는 한편, 양육보조금이 신설돼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저소득층에게는 현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현 보육정책의 여러 부작용을 고려해볼 때, 이번 개편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무상보육에 따른 보육료와 양육수당이 지원 대상과 액수 면에서 균형을 이루지 못해 시설보육에 대한 과도한 수요가 발생했으며, 비근로 여성에게 보육료를 전액 지원하면서 경제활동에 참여할 필요성이 감소한 것이다. 여성의 경력단절 기간이 장기화되면 노동시장에 복귀할 시점에는 그간 쌓아온 인적자본이 마모됨에 따라 임금이 큰 폭으로 하락할 수 있다. 그리고 소득이 낮아져 부모가 아동의 발달에 필요한 지원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다면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추가로 요청되면서 복지지출이 더욱 증가할 수 있다. 또한 여성 인력의 생산성이 저하된다면 경제활동인구의 질적 수준이 하락하면서 저출산 및 고령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영아기는 양육자와 긍정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시기로, 여성이 영아를 직접 돌볼 수 있다면 장시간의 시설보육이 아동의 발달에 긴요한 것도 아니다. 특히 다양한 교육 기회에 노출된 고소득층 자녀에게도 보육료를 전액 지원하는 것은 인적 역량의 개발 측면에서 성과가 그리 높지 않아 사회적으로 효율적인 투자라고 볼 수 없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가구의 소득에 따른 교육 기회의 차이는 그리 좁혀지지 않아 계층 간 형평에도 어긋난다.

이번에 발표된 양육지원체계 개편안은 이런 문제점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영아의 경우, 비근로 여성보다 근로 여성에게 장시간 보육료를 지원해줌으로써 보육료가 부담되었던 저소득층 여성의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동시에 장시간 보육을 희망하는 여성에게 근로 유인을 부여하게 됐다. 그리고 가정양육 때 지원받는 시간제 보육료가 시설보육 때 지원받는 반일제 보육료 바우처와 너무 높지 않은 수준에서 균형을 이룬다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양육방식에 대한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고소득층이 영아를 시설에 맡길 때에는 보육료를 일부 부담하게 됨에 따라 동일한 예산을 사용하면서도 시설보육으로 인한 인적 역량의 향상 폭이 저소득층 자녀를 중심으로 증가해 계층 간 형평성이 제고됐다.

그러나 추가적인 보완도 필요하다고 본다. 영아를 개별적으로 맡기고 싶은 부모를 위해서는 아이돌보미 서비스가 보육료 바우처와 유사한 혜택으로 대체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유아 보육료 역시 여성의 근로 여부와 가구소득에 따라 차등 지원해야 한다. 유아가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접할 수 있다면 시설 밖에서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시설에 못 다니는 아이를 위해서라면 현금보다는 학습 및 생활지도 등 필요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편적 보육은 시대적 과제

무상보육할 재원 없다는 정부
감세·4대강으론 100조원 지출
5조원 사업 못할 이유가 뭘까

이상은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정부가 내년 예산에서 보육료 전면 지원 대상을 하위 70% 가구로 제한하면서 보편적 보육서비스 제공을 둘러싼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보편적 보육을 둘러싼 논란을 차분하게 점검해 보고 국민의 합의를 형성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보편적 보육은 보육서비스에 대한 일종의 공동구매다. 정부를 통하여 좀더 값싸고 믿을 수 있는 양질의 보육서비스를 공동구매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동구매의 참여자 범위를 둘러싸고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 선택의 문제다. 노동자 계급의 공동구매라면 하위 70% 가구만의 공동구매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한 민족 한 국가의 성원으로서의 공동구매라면 전국민을 포괄해야 할 것이다. 서구에는 ‘하나의 국가 정책’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도 하나의 국가 공동체로서 우리의 후세대를 같이 양육하려는 것이라면 보편적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보육서비스를 통한 재분배는 단순한 소득계층 간의 재분배가 아니라, 다면적 재분배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보육서비스는 여성 대 남성 간의 재분배 문제이다. 이는 여성을 아동양육의 부담으로부터 해방시켜 독립적 주체로서 경제활동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보육서비스는 아동을 부양하지 않는 가구로부터 아동을 부양하는 가구로의 재분배이다. 동일 소득계층 내에서도 아동 부양에 따른 부담을 덜어주려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개인의 생애주기 차원에서도 아동을 부양하지 않는 시기로부터 아동을 부양하는 시기로 자원을 재분배하는 것이다. 이처럼 보육서비스를 둘러싼 재분배의 구조는 다면적이다. 보육서비스가 단순히 소득계층 간의 문제를 넘어, 다면적 재분배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보편적 보육서비스가 적합할 것이다.

보육서비스는 가족정책의 주요한 두 축 가운데 하나다. 선진국들의 가족정책은 아동수당과 보육서비스의 두 가지 축 위에 서 있다. 아동수당은 모든 아동들에게 매달 일정액의 현금을 제공하는 보편적 제도이다. 우리나라는 이 두 가지 정책 중 아동수당을 포기하고 보육서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정책을 구축해 왔다. 우리가 보편적 보육서비스 제도를 구축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가족정책은 여전히 서구 가족정책의 절반에 해당될 뿐이다.

정부는 그동안 재정건전성 문제를 보편적 보육에 대한 반대 논리로 내세우면서 국민들의 보편적 보육에 대한 요구를 무책임한 공짜심리라고 매도해 왔다. 하지만 현 정부의 지난 기간을 돌이켜 보면, 정부의 이런 주장이 과연 신뢰할 만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현 정부는 감세로 82조원, 4대강 사업으로 20조원, 합쳐 100조원가량을 지출해 왔다. 그런데 정부가 재정건전성 때문에 내년도 약 5조원이 소요될 보편적 보육서비스를 할 돈이 없다는 것은 신뢰를 얻기 어렵다. 국민들은 정부의 감세와 토목사업 예산지출을 보면서 여전히 정부가 운용할 수 있는 여윳돈이 상당히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지난여름 지방자치단체들의 예산 고갈 사태로 미루어 볼 때, 정부의 여윳돈도 거의 말라가는 것 같다. 이제 국민들의 복지 공동구매는 그 예산에 대한 공동부담으로부터 와야 한다. 국민과 정부 모두 진정성을 갖고 책임성 있는 복지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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