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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논쟁]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타당한가

등록 2012-08-23 19:21

학교폭력을 저지른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에 그 내용을 기록하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침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찬성하는 쪽은 학교폭력을 막으려면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조처가 인권침해와 낙인효과의 우려가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실제로 전북·경기·강원 등의 이른바 ‘진보교육감’들은 교과부의 이번 지침을 거부하거나 유보하면서 ‘특별감사를 실시하겠다’는 교과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엇갈리는 찬반 양쪽의 견해를 들어봤다.

솜방망이 처벌로는 학교폭력 해결 못해

학생부에 가해 사실 기록하면
경각심 일으켜 학교폭력 줄 것
약자 권리 보호가 인권에 부합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

학교폭력으로 자살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가 독버섯처럼 피어난 폭력으로 얼룩지면서 우리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여러 차례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폭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솜방망이’ 처벌로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다.

지금까지 학교폭력에 대해 제대로 된 징계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학생들은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크게 죄의식을 느끼지 못해왔다. 학교폭력을 심각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장난삼아’ 폭력을 휘두른 경우도 많다. 피해학생들이 학교폭력을 외부에 알려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으려 하기보다는 속으로만 앓다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되는 것도 가벼운 처벌과 학교 쪽의 소극적 대응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놓은 ‘학교폭력 가해사실에 대한 학교생활기록부 기록 방침’은 환영할 만하다. 학생부에 가해사실을 기록하게 되면, 입시를 앞둔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일으켜 자연스럽게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에게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도 효과적이다.

그런데 일부 지방교육청에서 가해학생의 ‘인권’이 침해된다는 이유를 들어 이런 조처를 보류하고 있다는 사실에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 한번의 실수로 남은 인생에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이 두렵다면, 평생을 학교폭력으로 고통받고, 학업까지 포기하며 살아야 하는 피해학생과 그 가족의 아픔은 무엇이란 말인가. 지속적인 폭력으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학생이 받은 고통을 생각한다면, 과연 학교폭력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를 재고한다는 방침을 논할 수가 있는지 묻고 싶다.

더욱이 상급학교 진학 때 우려되는 불이익에서 가해학생을 보호하기 위하여 학생의 행동이나 태도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는 경우, 이를 학교생활기록부의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난 등에 구체적으로 기록하도록 하여 ‘낙인효과’를 방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가해학생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판이 마련돼 있는데도 학생부 기재를 반대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가해학생의 인권도 물론 중요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의 인권이 대립했을 때는 약자의 권리가 우선돼야 한다. 그것이 인권의 본질적인 측면에 부합하는 것이다. 예컨대 성범죄자의 인권을 제한하거나, 가정폭력의 경우 남성에게 ‘접근 제한’ 명령 등을 내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로 가해학생이 받는 불이익보다, 학교폭력으로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피해학생의 인권 보호가 더 중요하다.

학교폭력에 관해 우리 사회는 가해자에게 온정적이다. 피해자가 평생 시달릴 고통에 대해서는 전혀 배려가 없다. 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은 외면한 채 가해자의 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은 과연 학교폭력의 시퍼런 서슬 앞에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가해학생에겐, 죄를 지으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것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또 진정한 반성의 기회를 통해 새로운 사회·도덕적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해주는 것 역시 교육의 한 부분이다. 더이상 가해자에게 변명과 발뺌의 기회를 줘선 안 된다. 그로 인해 더욱 고통받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학교폭력 전과 ‘주홍글씨’는 반교육적

학교폭력 주된 원인은 경쟁교육
가해학생도 우리가 만든 피해자
처벌보다 교육적 선도가 먼저다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

대전의 한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한순간의 실수와 일탈로 ‘서면 사과’ 징계를 받았다.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조치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한다’는 교육과학기술부의 방침에 따라, 이들은 졸업 뒤 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학교폭력 전과’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한다. 사리분별력이 부족한 만 6살 어린이까지 학교폭력범으로 낙인찍어 고2까지 빨간줄을 달고 살게 하는 것이 과연 교육기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자 교육적인 처사일까 의문이 든다.

언제부터인가 교과부의 교육정책에선 교육논리와 영혼이 사라졌다. ‘학생’을 중심에 놓고 교육적인 잣대로 접근해야 함에도 경제논리와 일방적인 밀어붙이기 행정만 있을 뿐이다.

누가 뭐래도 학교폭력의 가장 큰 원인은 과도한 경쟁교육이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가해학생도 우리의 일그러진 교육제도가 만들어낸 피해자일 수 있다. 따라서 교과부가 학교폭력의 가장 큰 원인을 제거하려는 노력과 함께 피해학생에게는 치유를, 가해학생에게는 치료의 기회를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경찰청이 학교폭력에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교과부가 나서서 징계와 처벌 위주로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 교육정책을 관장하는 부처답지 못하다. 학교폭력 문제를 가해학생들에게 전가하는 꼼수로까지 보인다.

교과부는 한술 더 떠,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주홍글씨로 새겨 입시와 취업에서 불이익을 주라고 강요한다. ‘학교폭력 기록을 장기 보존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인권위의 권고도 무시하고, ‘이중처벌 원칙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되기에, 먼저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라’며 거부하거나 보류하는 교육청에 대해서는 특별감사에 착수하겠다며 마치 조폭처럼 협박을 가하고 있다.

참고로, 소년법상 보호처분은 소년의 미래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고(제32조 6항), 이에 대한 공표, 사건 내용에 대한 조회에 응답하지 않도록 되어 있는 등(제70조) 매우 엄격하게 비밀 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다. 교과부의 학교폭력 가해사실 학생부 기재 방침은 소년법의 취지를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는 것이다. 인권위의 권고도 무시하고, 위헌의 소지가 있음에도 교과부는 왜 이렇게 무리수를 둬가며 반인권적, 초법적인 행동을 감행하는 걸까.

교육기관도 아닌 법원이, 최근 학교폭력 문제를 처벌보다는 교육적으로 선도하자며 ‘통고제도’를 활성화하기로 해 신선한 바람이 일고 있다. 이를 활용하면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관할 법원의 소년부를 통해 소년보호재판을 받을 수 있다. 범죄 경력을 남기지 않고 처벌보다 선도와 사회복귀를 우선시한다. 또 전문가들이 심리상담, 진단, 치료까지 해준다. 무엇보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전과기록이 남지 않도록 해주려는 법원의 노력이 눈물겹다. 대법원장까지 나서서 “교육현장과 협의해 처벌이 아닌 화해를 이끌어낼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한다.

교육논리로 감동을 주는 법원의 ‘영혼 있는 정책’과, 교육논리를 저버린 교과부의 ‘영혼 없는 정책’이 대비된다. 유엔 가입국임에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외면하고, 학생인권에는 관심이 없는 교과부는 과연 누굴 위한 교과부일까. 학교폭력 사실 학생부 기재 방침은 즉각 철회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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