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예능의 시대’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경선 후보에 이어 최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까지 <에스비에스>(SBS) 예능 토크쇼 <힐링캠프>에 출연하면서 대선주자들의 예능 출연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들의 출연이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무관심을 극복할 수 있고, 후보와 시민의 소통 기회를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예능의 특성상 이미지 정치로 변질될 수 있고 이는 정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양쪽의 견해를 들어봤다.
정치에 대한 관심 키울 좋은 기회 예능은 대선주자-유권자 이어줘
더 자주 출연시켜 그들의 비전과
정책 검증하는 것이 정치에 도움 <콜베어 리포트>는 미국 <코미디 센트럴> 채널의 인기 프로그램이다. 말수가 적고 점잖은 중년 남성 스티븐 콜버트는, 월요일부터 목요일 밤 11시30분만 되면 공화당을 열렬히 지지하는 극우 논객 스티븐 ‘콜베어’로 변신한다. <폭스뉴스>의 극우 방송인 빌 오라일리의 언행을 흉내 내어 만든 캐릭터 콜베어는, <콜베어 리포트>를 통해 네오콘들의 주장을 극한까지 밀어붙임으로써 그 주장이 얼마나 황당하고 상궤에서 벗어났는지를 폭로한다. 여기까지는 뭐, 흔한 이야기다. 미국은 원체 정치 풍자가 흔한 나라니까. 이 프로그램이 다른 코미디 쇼와 명확하게 차별이 되는 지점은, ‘434부작’이라는 거창한 부제를 단 시리즈물 ‘지역구 알기’ 코너다. 미국의 434개 지역구를 전부 소개하는 것이 목표인 ‘지역구 알기’에서, 콜베어는 해당 선거구의 하원의원을 인터뷰한다. 평범한 인터뷰를 기대했던 의원들은 난처하고 엉뚱한 질문만 막무가내로 던지는 콜베어 앞에서 당황하고 때론 할 말을 잃는다. 일리노이 제5지역구 하원의원에게 옆 동네 찬가인 ‘내 사랑 시카고’를 불러보라 부추기는 콜베어는 확실히 평범한 인터뷰어는 아니다. 그런데 이 속에 뼈가 있다. ‘동성결혼 금지 법안’에 반대 의사를 밝히며 소신 투표를 한 공화당 하원의원 마이크 캐슬에게, 콜베어는 뜬금없이 자신이 닭하고 결혼해도 괜찮은가 묻는다. ‘동성결혼을 허용하면 동물과의 결혼도 허용해야 하나?’라는 극우 논객들의 억지를, 콜베어는 공화당 하원의원의 입을 빌려 파훼한다. 단순히 비아냥거리고 끝나는 코미디가 아니라, 정치인들이 어떤 정책을 지지하며 얼마나 소양이 있는지 구체적인 정보를 웃음이란 당의를 씌워 전달하는 <콜베어 리포트>의 인터뷰는, 보는 이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이쯤 해서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왜 한국 대선주자들의 예능 출연 이야기를 하면서 미국 이야기를 하느냐고. 한국 예능 프로그램은 기껏해야 인간적인 면모나 부각시켜주고, 껄끄러운 질문은 적당히 넘어가 주지 않느냐고. 당연한 일이다. 평소에 예능 쪽으론 눈길도 안 주던 ‘귀하신 분’들을 선거가 임박해서 불러다 ‘모셨’으니, 묻는 입장에서도 불편하고 답하는 입장에서도 어색할 수밖에. 정치인을 데리고 코미디를 해본 적이 없던 이들이 갑자기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정치인들의 진면모를 밝혀내길 바라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그러니 어쩌면 정치인의 예능 출연에 관한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예능에 더 자주 출연하지 않는다는 점인지도 모른다. 대선주자가 예능에 나오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나선 사람이라면, 활용 가능한 모든 창구를 통해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국민에게 알리고, 그에 대한 질문을 받고 대답할 의무가 있다. 만약 웃음의 당의를 쓴 예능의 형태가 더 많은 국민과 만나는 데 적합한 형식이라면, 정치인들도 그것을 마다해선 안 되고 방송도 그것을 겁내선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선주자들의 예능 출연을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이돌만큼, 탤런트만큼 더 흔하게 예능에 출연하는 것이다. ‘귀하신 분’이 아니라 ‘흔한 사람’이 되어야, 예능인들도 더 편하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이미지로 유권자 눈 가릴까 두렵다 포장된 모습만 넘치는 예능서
국가 지도자로서의 비전과
철학을 확인할 수는 없다 대선 후보들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려는 이유는 크게 지지율 제고와 이미지 관리를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능프로그램에선 정치적으로 민감한 발언이나, 지지층을 나누는 발언은 피할 수 있고, 정책과 공약의 결함은 덮어진다. 도끼눈을 뜬 기자도 없고, 충분히 자기 얘기만 할 수 있다. <힐링캠프>에 출연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에게 어느 누구도 ‘5·16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경선 후보에게도 ‘참여정부 실패론’과 ‘총선 책임론’ 등을 제기하지 않는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4월 총선에서 야당의 패배를 보고 대선 출마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발언을 해도, 그냥 그대로 넘어갈 뿐이다. 딴죽을 걸고, 곤란한 질문을 던져 답을 받아내고, 답변의 논리를 따지는 것은 애초 예능프로그램의 목적이 아니다. 예능의 목적은 시청자의 ‘즐거움’에 있다. 출연자의 삶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내 시청자를 웃기고, 인생의 역경과 극복 과정을 말하며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박근혜 후보는 비키니를 입은 젊은 날의 사진을 꺼냈고, 비명에 간 어머니 이야기를 풀어냈다. 문재인 고문은 특전사 시절의 사진과 아내와의 연애 이야기,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털어놓았다. 안철수 원장은 군 시절 아내에게 쓴 편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국가 지도자로서의 비전과 철학이 드러나기보다는 다소 포장된 과거와 발언들만 넘쳐난다. 이미지만 있고 내용이 빠져 있는 것이다. 대선주자들은 예능에 출연한 직후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문재인 후보는 대안론으로 떠오를 만큼 지지율이 치솟았고,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다소 뒤져 있던 안 원장은 <힐링캠프> 출연 뒤 양자 대결에서 박 후보와 ‘박빙’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앞서 ‘백신회사 사장’ 정도로만 알려졌던 안 원장이 <문화방송>(MBC)의 <무릎팍 도사> 출연으로 단숨에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속 내용은 어떻게 됐든 자기를 뽐내고 예쁘게 포장할 수 있는 예능에 대선주자들이 ‘한탕주의’ 꿈을 꾸고 줄을 서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예능정치, 예능정치인의 등장이 머지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예능을 통해 만들어진 후보자의 이미지가 유권자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을 선택하는 기준이 ‘그 일을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능력과 직무윤리를 갖춘 사람’이 아니라, 막연히 ‘호감 가는 이미지의 사람’이 돼선 곤란하다. 벽돌 깨기에 도전하다 실패하자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던 후보, 어머니 이야기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던 후보에 마음이 가서 후보가 아닌 ‘사람’에 표를 던지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어떻게 좋은 정책을 만들까’가 아니라, ‘어떻게 (예능에서) 시청자를 웃기고 울리며, 호감 가는 이미지를 만들까’를 먼저 고민하는 정치인이 늘어난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다. <힐링캠프>가 진부해진다면 대선주자들의 다음 행보는 어디로 향할까? 예능인들과 야외취침을 놓고 까나리액젓 빨리 마시기를 하고 있진 않을까? 개그맨 유재석과 함께 무한도전을 외치며 레이스를 하는 건 아닐까? 김준석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치에 대한 관심 키울 좋은 기회 예능은 대선주자-유권자 이어줘
더 자주 출연시켜 그들의 비전과
정책 검증하는 것이 정치에 도움 <콜베어 리포트>는 미국 <코미디 센트럴> 채널의 인기 프로그램이다. 말수가 적고 점잖은 중년 남성 스티븐 콜버트는, 월요일부터 목요일 밤 11시30분만 되면 공화당을 열렬히 지지하는 극우 논객 스티븐 ‘콜베어’로 변신한다. <폭스뉴스>의 극우 방송인 빌 오라일리의 언행을 흉내 내어 만든 캐릭터 콜베어는, <콜베어 리포트>를 통해 네오콘들의 주장을 극한까지 밀어붙임으로써 그 주장이 얼마나 황당하고 상궤에서 벗어났는지를 폭로한다. 여기까지는 뭐, 흔한 이야기다. 미국은 원체 정치 풍자가 흔한 나라니까. 이 프로그램이 다른 코미디 쇼와 명확하게 차별이 되는 지점은, ‘434부작’이라는 거창한 부제를 단 시리즈물 ‘지역구 알기’ 코너다. 미국의 434개 지역구를 전부 소개하는 것이 목표인 ‘지역구 알기’에서, 콜베어는 해당 선거구의 하원의원을 인터뷰한다. 평범한 인터뷰를 기대했던 의원들은 난처하고 엉뚱한 질문만 막무가내로 던지는 콜베어 앞에서 당황하고 때론 할 말을 잃는다. 일리노이 제5지역구 하원의원에게 옆 동네 찬가인 ‘내 사랑 시카고’를 불러보라 부추기는 콜베어는 확실히 평범한 인터뷰어는 아니다. 그런데 이 속에 뼈가 있다. ‘동성결혼 금지 법안’에 반대 의사를 밝히며 소신 투표를 한 공화당 하원의원 마이크 캐슬에게, 콜베어는 뜬금없이 자신이 닭하고 결혼해도 괜찮은가 묻는다. ‘동성결혼을 허용하면 동물과의 결혼도 허용해야 하나?’라는 극우 논객들의 억지를, 콜베어는 공화당 하원의원의 입을 빌려 파훼한다. 단순히 비아냥거리고 끝나는 코미디가 아니라, 정치인들이 어떤 정책을 지지하며 얼마나 소양이 있는지 구체적인 정보를 웃음이란 당의를 씌워 전달하는 <콜베어 리포트>의 인터뷰는, 보는 이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이쯤 해서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왜 한국 대선주자들의 예능 출연 이야기를 하면서 미국 이야기를 하느냐고. 한국 예능 프로그램은 기껏해야 인간적인 면모나 부각시켜주고, 껄끄러운 질문은 적당히 넘어가 주지 않느냐고. 당연한 일이다. 평소에 예능 쪽으론 눈길도 안 주던 ‘귀하신 분’들을 선거가 임박해서 불러다 ‘모셨’으니, 묻는 입장에서도 불편하고 답하는 입장에서도 어색할 수밖에. 정치인을 데리고 코미디를 해본 적이 없던 이들이 갑자기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정치인들의 진면모를 밝혀내길 바라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그러니 어쩌면 정치인의 예능 출연에 관한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예능에 더 자주 출연하지 않는다는 점인지도 모른다. 대선주자가 예능에 나오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나선 사람이라면, 활용 가능한 모든 창구를 통해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국민에게 알리고, 그에 대한 질문을 받고 대답할 의무가 있다. 만약 웃음의 당의를 쓴 예능의 형태가 더 많은 국민과 만나는 데 적합한 형식이라면, 정치인들도 그것을 마다해선 안 되고 방송도 그것을 겁내선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선주자들의 예능 출연을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이돌만큼, 탤런트만큼 더 흔하게 예능에 출연하는 것이다. ‘귀하신 분’이 아니라 ‘흔한 사람’이 되어야, 예능인들도 더 편하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이미지로 유권자 눈 가릴까 두렵다 포장된 모습만 넘치는 예능서
국가 지도자로서의 비전과
철학을 확인할 수는 없다 대선 후보들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려는 이유는 크게 지지율 제고와 이미지 관리를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능프로그램에선 정치적으로 민감한 발언이나, 지지층을 나누는 발언은 피할 수 있고, 정책과 공약의 결함은 덮어진다. 도끼눈을 뜬 기자도 없고, 충분히 자기 얘기만 할 수 있다. <힐링캠프>에 출연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에게 어느 누구도 ‘5·16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경선 후보에게도 ‘참여정부 실패론’과 ‘총선 책임론’ 등을 제기하지 않는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4월 총선에서 야당의 패배를 보고 대선 출마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발언을 해도, 그냥 그대로 넘어갈 뿐이다. 딴죽을 걸고, 곤란한 질문을 던져 답을 받아내고, 답변의 논리를 따지는 것은 애초 예능프로그램의 목적이 아니다. 예능의 목적은 시청자의 ‘즐거움’에 있다. 출연자의 삶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내 시청자를 웃기고, 인생의 역경과 극복 과정을 말하며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박근혜 후보는 비키니를 입은 젊은 날의 사진을 꺼냈고, 비명에 간 어머니 이야기를 풀어냈다. 문재인 고문은 특전사 시절의 사진과 아내와의 연애 이야기,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털어놓았다. 안철수 원장은 군 시절 아내에게 쓴 편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국가 지도자로서의 비전과 철학이 드러나기보다는 다소 포장된 과거와 발언들만 넘쳐난다. 이미지만 있고 내용이 빠져 있는 것이다. 대선주자들은 예능에 출연한 직후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문재인 후보는 대안론으로 떠오를 만큼 지지율이 치솟았고,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다소 뒤져 있던 안 원장은 <힐링캠프> 출연 뒤 양자 대결에서 박 후보와 ‘박빙’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앞서 ‘백신회사 사장’ 정도로만 알려졌던 안 원장이 <문화방송>(MBC)의 <무릎팍 도사> 출연으로 단숨에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속 내용은 어떻게 됐든 자기를 뽐내고 예쁘게 포장할 수 있는 예능에 대선주자들이 ‘한탕주의’ 꿈을 꾸고 줄을 서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예능정치, 예능정치인의 등장이 머지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예능을 통해 만들어진 후보자의 이미지가 유권자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을 선택하는 기준이 ‘그 일을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능력과 직무윤리를 갖춘 사람’이 아니라, 막연히 ‘호감 가는 이미지의 사람’이 돼선 곤란하다. 벽돌 깨기에 도전하다 실패하자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던 후보, 어머니 이야기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던 후보에 마음이 가서 후보가 아닌 ‘사람’에 표를 던지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어떻게 좋은 정책을 만들까’가 아니라, ‘어떻게 (예능에서) 시청자를 웃기고 울리며, 호감 가는 이미지를 만들까’를 먼저 고민하는 정치인이 늘어난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다. <힐링캠프>가 진부해진다면 대선주자들의 다음 행보는 어디로 향할까? 예능인들과 야외취침을 놓고 까나리액젓 빨리 마시기를 하고 있진 않을까? 개그맨 유재석과 함께 무한도전을 외치며 레이스를 하는 건 아닐까? 김준석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