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술’과의 전쟁이다. ‘주폭’(주취폭력) 척결에 여념이 없는 경찰은, 음주운전으로 세 차례 적발되면 운전자의 차량을 몰수하겠다는 방침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또 강릉 경포해수욕장에서는 음주 자체를 경찰이 단속하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서울시는 공원 안 음주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그릇된 음주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조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적 영역에 국가가 과도하게 개입하면 인권침해의 우려가 있고,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양쪽의 견해를 들어봤다.
건전한 음주문화 위해 통제해야 비뚤어진 술문화 폐해 심각
관대하게 덮어둬선 안 돼
건강한 사회 위해 규제 필요 최근 우리 사회는 술과 싸우고 있다. 언론에서는 우리 사회의 음주문제를 특집으로 보도하고 있고, 경찰은 이에 화답하듯 상습 음주운전자에 대한 차량 몰수, 공원 내 음주 금지, 경포대 백사장으로의 주류 반입 단속 등 강력한 법집행을 예고하고 있다. 1980년대에도 언론은 음주문화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고, 경찰과 검찰은 음주운전자를 무조건적으로 구속하기도 하였으며, 음주행패자 등을 엄벌하기도 했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선포 이후에는 심야·퇴폐 영업행위를 단속하면서 술 소비량이 21% 감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2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또다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음주문화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잘못된 음주문화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절실히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취폭력과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와 같이 가시적인 문제도 심각하지만, 음주는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를 발생시킨다. 우선 질병을 들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조사 결과 우리나라의 간질환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라고 한다. 또 음주는 급성 췌장염, 위궤양, 당뇨병, 고혈압, 뇌졸중, 뇌출혈에다 정신적인 질병까지 야기한다. 폭음문화와 2~3차로 이어지는 술자리는 인간관계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 당장은 음주로 인한 싸움이나 갈등이 문제가 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가족관계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는 자녀들과 부모의 대화를 단절시키며, 상당수의 가정폭력이 술을 매개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음주는 배우자와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주취자로 인한 경찰 업무 마비도 심각한 수준이다. 일선 지구대 등에서 자주 발생하는 주취자의 행패와 폭력은 경찰력을 소진시켜 다른 긴급 사안에 대한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 특히 음주로 인한 각종 사고는 야간에 일어난다는 점에서 성폭력 등 심야에 발생하는 각종 범죄 대응에 치안 공백이 생기게 된다. 이런 문제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심각하지만 사회적 비용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다. 음주로 인한 조기사망비용이 연간 3조2880억원에 달하고, 주취자 폭력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연간 8조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여기에 음주로 인한 가정문제, 교통사고 등 각종 사회적 비용을 더한다면 수십조원이 될 것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음주문화는 이제 관행이나 관습이라고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건강한 사회와 삶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지나친 음주문화에 대한 규제와 단속이 필요하다. 물론 규제와 단속만으로 음주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정당하게 집행되는 공권력 행사는 국민들에게 문제의식을 갖게 하고 새로운 문화를 이루어가는 추동력이 될 것이다. 경찰은 헌법의 정신인 ‘국민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보호’하고, 경찰의 본래적 기능인 범죄 예방과 공공의 안녕 및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공공장소에서의 주취자 문제에 정당성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집행은 공정하고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국민들은 나름대로 새로운 음주문화를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통제보다 사회적 안전망이 절실 요란한 ‘주폭척결’ 약자만 단속
술 마실 수밖에 없는 사정은 외면
형사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술에 너그러운 문화 때문에 범죄를 키우고 선량한 시민들만 피해를 입는단다.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주폭 척결’을 들고나오자 <조선일보>는 경찰의 강력한 대응을 주문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 결과 서울경찰청은 69일 만에 200명을 구속하는 ‘성과’를 거뒀다. 현기증 나는 속도다. 공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부채질을 해대니, 경찰은 더욱 과감해졌다. 공원에서 술 마시는 사람들을 추방하겠다고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해수욕장에서의 음주도 없애겠단다. 강릉경찰서는 음주문화를 바꾸기 위해 적극적인 계도를 하겠다는 게 잘못 알려졌다지만, 그게 경찰이 해야 할 일인지는 의문이다. 상습 음주운전을 하면 아예 차량을 몰수하겠다는 등의 법률적 근거가 취약한 대책도 연일 쏟아지고 있다. 강력한 형사처분과 요란한 캠페인이 반복되고 있다. ‘주폭 척결’로 구속된 사람들의 전과기록을 합치면 5041범, 평균 전과는 25.2범이란다. 하지만 주폭 200명이 벌인 범행횟수 총 2693건 중에 폭력은 397건(14.7%)뿐이다. 대부분 무전취식, 업무방해, 그도 아니면 예비군 훈련 불참 따위였다. 하긴 전과 25범을 채우려면 과태료나 매기면 그만인 기초질서 위반 행위가 잔뜩 쌓여야 가능하다. 다른 사람을 25번이나 해친 사람을 너그럽게 봐줄 정도로 한국의 형사사법기관들은 무기력하지도 만만하지도 않다. 구속된 사람의 80%는 직업이 없었고, 나머지도 변변한 일거리가 없었다. 약자여서 더욱 술에 의지하는 사람들이다. 경찰은 국가가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최후의 수단을 동원해 이들을 구속했지만, 막상 효과는 별로 없다. 기껏해야 교도소에 갇혀 있는 동안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게 전부다. 이래서는 출소 뒤에 다시 술을 마시는 악순환을 막을 수 없다. 술기운을 빌려 평소와 다른 거친 언동을 하고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은 고약하지만, 그들에게도 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어떤 사정들이 있다.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모진 삶을 꾸려가기 힘드니 자포자기 상태에서 술이라도 마시는 사람들도 있고, 치료가 필요한 알코올 중독 환자들도 있다. 그렇지만 술에 의존하는 원인을 살피지 않으면 <조선일보>와 서울경찰청 식의 대응은 겉돌 수밖에 없다. 200명을 넘어, 서울경찰청장이 공언한 것처럼 1000명을 구속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직업 없는 사람에겐 일자리가,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치료가, 가족관계가 붕괴된 사람에게는 꼼꼼한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요란한 구속실적을 자랑하는 서울경찰청과 달리, 부산경찰청은 3년 전부터 ‘주폭 치료 및 보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성과는 확실했다. 알코올 중독 치료 실적이 쌓이는 만큼 술로 인한 범죄 발생도 줄었다. 역시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 요란하지만 실속 없고, ‘선량한 시민’도 얻을 게 없는 ‘주폭 척결’의 깃발은 이제 그만 내려라. 시민을 계도의 대상으로나 여기는 오만한 생각도 접어라. 술에 의지해 사는 사회적 약자들만 잔뜩 잡아넣고는 우리 사회가 안전해진 것처럼 호들갑 떠는 일도 그만해야 한다.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다면, 이제는 차분하고도 꼼꼼하게 제대로 된 처방을 만들어보자. 물론 그 일은 경찰이 아니라 보건복지부가 주도해야 하겠지만.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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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음주문화 위해 통제해야 비뚤어진 술문화 폐해 심각
관대하게 덮어둬선 안 돼
건강한 사회 위해 규제 필요 최근 우리 사회는 술과 싸우고 있다. 언론에서는 우리 사회의 음주문제를 특집으로 보도하고 있고, 경찰은 이에 화답하듯 상습 음주운전자에 대한 차량 몰수, 공원 내 음주 금지, 경포대 백사장으로의 주류 반입 단속 등 강력한 법집행을 예고하고 있다. 1980년대에도 언론은 음주문화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고, 경찰과 검찰은 음주운전자를 무조건적으로 구속하기도 하였으며, 음주행패자 등을 엄벌하기도 했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선포 이후에는 심야·퇴폐 영업행위를 단속하면서 술 소비량이 21% 감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2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또다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음주문화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잘못된 음주문화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절실히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취폭력과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와 같이 가시적인 문제도 심각하지만, 음주는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를 발생시킨다. 우선 질병을 들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조사 결과 우리나라의 간질환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라고 한다. 또 음주는 급성 췌장염, 위궤양, 당뇨병, 고혈압, 뇌졸중, 뇌출혈에다 정신적인 질병까지 야기한다. 폭음문화와 2~3차로 이어지는 술자리는 인간관계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 당장은 음주로 인한 싸움이나 갈등이 문제가 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가족관계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는 자녀들과 부모의 대화를 단절시키며, 상당수의 가정폭력이 술을 매개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음주는 배우자와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주취자로 인한 경찰 업무 마비도 심각한 수준이다. 일선 지구대 등에서 자주 발생하는 주취자의 행패와 폭력은 경찰력을 소진시켜 다른 긴급 사안에 대한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 특히 음주로 인한 각종 사고는 야간에 일어난다는 점에서 성폭력 등 심야에 발생하는 각종 범죄 대응에 치안 공백이 생기게 된다. 이런 문제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심각하지만 사회적 비용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다. 음주로 인한 조기사망비용이 연간 3조2880억원에 달하고, 주취자 폭력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연간 8조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여기에 음주로 인한 가정문제, 교통사고 등 각종 사회적 비용을 더한다면 수십조원이 될 것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음주문화는 이제 관행이나 관습이라고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건강한 사회와 삶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지나친 음주문화에 대한 규제와 단속이 필요하다. 물론 규제와 단속만으로 음주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정당하게 집행되는 공권력 행사는 국민들에게 문제의식을 갖게 하고 새로운 문화를 이루어가는 추동력이 될 것이다. 경찰은 헌법의 정신인 ‘국민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보호’하고, 경찰의 본래적 기능인 범죄 예방과 공공의 안녕 및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공공장소에서의 주취자 문제에 정당성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집행은 공정하고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국민들은 나름대로 새로운 음주문화를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통제보다 사회적 안전망이 절실 요란한 ‘주폭척결’ 약자만 단속
술 마실 수밖에 없는 사정은 외면
형사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술에 너그러운 문화 때문에 범죄를 키우고 선량한 시민들만 피해를 입는단다.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주폭 척결’을 들고나오자 <조선일보>는 경찰의 강력한 대응을 주문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 결과 서울경찰청은 69일 만에 200명을 구속하는 ‘성과’를 거뒀다. 현기증 나는 속도다. 공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부채질을 해대니, 경찰은 더욱 과감해졌다. 공원에서 술 마시는 사람들을 추방하겠다고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해수욕장에서의 음주도 없애겠단다. 강릉경찰서는 음주문화를 바꾸기 위해 적극적인 계도를 하겠다는 게 잘못 알려졌다지만, 그게 경찰이 해야 할 일인지는 의문이다. 상습 음주운전을 하면 아예 차량을 몰수하겠다는 등의 법률적 근거가 취약한 대책도 연일 쏟아지고 있다. 강력한 형사처분과 요란한 캠페인이 반복되고 있다. ‘주폭 척결’로 구속된 사람들의 전과기록을 합치면 5041범, 평균 전과는 25.2범이란다. 하지만 주폭 200명이 벌인 범행횟수 총 2693건 중에 폭력은 397건(14.7%)뿐이다. 대부분 무전취식, 업무방해, 그도 아니면 예비군 훈련 불참 따위였다. 하긴 전과 25범을 채우려면 과태료나 매기면 그만인 기초질서 위반 행위가 잔뜩 쌓여야 가능하다. 다른 사람을 25번이나 해친 사람을 너그럽게 봐줄 정도로 한국의 형사사법기관들은 무기력하지도 만만하지도 않다. 구속된 사람의 80%는 직업이 없었고, 나머지도 변변한 일거리가 없었다. 약자여서 더욱 술에 의지하는 사람들이다. 경찰은 국가가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최후의 수단을 동원해 이들을 구속했지만, 막상 효과는 별로 없다. 기껏해야 교도소에 갇혀 있는 동안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게 전부다. 이래서는 출소 뒤에 다시 술을 마시는 악순환을 막을 수 없다. 술기운을 빌려 평소와 다른 거친 언동을 하고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은 고약하지만, 그들에게도 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어떤 사정들이 있다.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모진 삶을 꾸려가기 힘드니 자포자기 상태에서 술이라도 마시는 사람들도 있고, 치료가 필요한 알코올 중독 환자들도 있다. 그렇지만 술에 의존하는 원인을 살피지 않으면 <조선일보>와 서울경찰청 식의 대응은 겉돌 수밖에 없다. 200명을 넘어, 서울경찰청장이 공언한 것처럼 1000명을 구속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직업 없는 사람에겐 일자리가,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치료가, 가족관계가 붕괴된 사람에게는 꼼꼼한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요란한 구속실적을 자랑하는 서울경찰청과 달리, 부산경찰청은 3년 전부터 ‘주폭 치료 및 보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성과는 확실했다. 알코올 중독 치료 실적이 쌓이는 만큼 술로 인한 범죄 발생도 줄었다. 역시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 요란하지만 실속 없고, ‘선량한 시민’도 얻을 게 없는 ‘주폭 척결’의 깃발은 이제 그만 내려라. 시민을 계도의 대상으로나 여기는 오만한 생각도 접어라. 술에 의지해 사는 사회적 약자들만 잔뜩 잡아넣고는 우리 사회가 안전해진 것처럼 호들갑 떠는 일도 그만해야 한다.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다면, 이제는 차분하고도 꼼꼼하게 제대로 된 처방을 만들어보자. 물론 그 일은 경찰이 아니라 보건복지부가 주도해야 하겠지만.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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