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명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민주통합당이 교육개혁 방안의 하나로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제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안의 핵심은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 30개 국공립대를 하나의 거대 대학 체제로 묶어 신입생을 통합 선발하고 공동 학위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찬성하는 쪽은 대학 서열화에 따른 무한경쟁 교육의 폐해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편에선 서울대가 없어지면 국가 경쟁력이 하락하고, 사립대학 중심의 또다른 학벌 서열구조가 생길 것이라고 비판한다. 양쪽의 견해를 들어봤다.
세계적 수준의 대학 만들 수 있다 국공립대 통합 목적은
서울대 폐지가 아니라
좋은 대학 전국에 두자는 것 국공립대학 통합 네트워크 안의 목적은 단순하다. 국가가 책임지고 좋은 대학을 전국에 골고루 만들자는 것이다. 전국의 국공립대학들을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대학들로 탈바꿈시키고 입시지옥을 해소해 중등교육을 정상화시키면, 국토 균형발전도 이룰 수 있고 학문 후속세대를 국내에서 훈련시킬 수 있는 역량도 강화할 수 있다. 이것이 일부에서 오인하고 있는 이른바 ‘서울대 폐지론’과 같을 수는 없다. 지금까지 정부는 지방대학을 살리겠다고 여러 가지 정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는 개별 대학에 초점을 맞추는 경쟁주의 원칙에 따른 접근방식이었다. 국가가 세운 국립대학이 법정 기준에 못 미치는데도 투자 확대로 해결하기보다 개별 대학에 책임을 전가했고, 상대적으로 싼값에 교육을 제공해온 국공립대 재학생 비율이 25%인데 이를 구조조정 대상으로 삼았다. 국립대학들은 정부 정책에 휘둘리면서 통폐합도 해보고, 성과급제도 도입하고, 총장 직선제도 포기하고, 법인화도 했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경쟁력 있는 대학이 되지 못했다. 대학의 발전을 원한다면 장기적인 계획과 지속적인 재원 확보가 필요하다. 이는 국내외 사례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자랑하는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들-카이스트·포항공대·광주과기원·대구경북과기원·울산과학기술대학-은 정부 또는 공기업의 투자로 단기간에 양질의 대학이 되었다. 모두 비수도권에 있지만 이른바 ‘스카이’(SKY)를 넘어서는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국공립 체제로 대학 무상교육을 하는 북유럽 국가들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나 세계경제포럼의 고등교육 경쟁력 평가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는다. 미국의 주립대학 체제나 프랑스의 대학도 마찬가지다. 이제 국가의 경제는 고등교육 전반의 연구수준과 교육역량에 의존하고 있어 소수의 우수한 대학들과 다수의 그렇지 못한 대학들로 국민의 높은 삶의 질과 정치공동체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이제 개혁의 프레임을 개별대학이 아닌 대학체제 차원으로 이동해야 한다. 국공립대 통합안은 새로운 대학을 세우는 방식보다 이미 다양한 양태로 존재하는 국공립대학들을 계통화하고, 수평적으로 연계하여 국공립대학 체제의 질적 도약을 시도하여 사회의 장기적 필요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현재의 국공립대학들이 경쟁력이 낮다는 점을 우려하여 같은 비용으로 새로운 대학을 세우는 것을 고려할 수 있지만, 이미 이들 대학은 상당한 연구와 교육의 기반을 갖추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체제 혁신을 이루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혁신의 과정은 국가와 대학 구성원이 사회적 합의 기구를 만들어 함께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국공립대학들도 각고의 자기반성과 혁신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다. 국공립대학의 선도적 혁신은 장기적으로 사립대학을 포함한 고등교육 전체의 공공성을 확산하고 대학의 문화를 높은 차원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재정투자는 늘지만 국민 전체의 교육투자는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안은 완성된 것도 완벽한 것도 아니다. 근거가 있는 우려와 생산적 반대 의견을 경청함으로써 방안을 가다듬고 차분한 실행계획을 잘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정당들과 대통령 후보들이 좋은 대학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기 바란다. 장수명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어리석고도 무책임한 발상이다
학력 서열구조 깨기는커녕
연·고대 등 사립대 중심으로
또다른 서열화 불러올 것 민주통합당의 ‘국립대 연합체제 구축방안’은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과거에도 서울대 폐지론, 국립대 통폐합론, 국립대 공동학위제 등 이런저런 대안과 시도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주장과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 사이에 괴리가 있다. 주류언론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이를 ‘서울대 폐지론’으로 받아들였다. 장본인이 나서서 거듭 서울대 폐지나 국공립대 통폐합이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얘기가 그렇게 전개될 줄 예상 못한 바도 아닐 테고 또 은근히 흥행을 기대한 게 아닌지도 의심스럽다. 아무튼 이 방안이 서울대의 정체성 박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2017년까지 서울대의 명칭을 아예 없애자는 게 핵심인데, 이는 서울대의 존재 자체가 과열 입시경쟁과 학벌주의 서열구조의 근원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서울대의 실체 자체를 없애는 게 아니고 단지 이름만 없앤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전국의 주요 국립대 학부를 통합해 ‘국립대 서울캠퍼스’ ‘국립대 부산캠퍼스’ 등으로 개편하여 서울캠퍼스엔 기초학문 분야만 남기고 각 지방캠퍼스를 의학·공학 등으로 특성화한다는 구조개혁안이기 때문이다. 서울대의 위상과 권위를 박탈해 국립대학 체제에 분산·편입시키고, 다른 국립대학과 다름없는 그저 ‘서울 소재’ 일개 캠퍼스 정도로 평준화·중성화하겠다는 구상에 다름 아니다. 이 주장은 얼핏 그럴듯하지만 정책의 목표와 수단 등 모든 면에서 문제가 많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 중 하나인 학벌중심 서열구조의 정점에 서울대가 있으니 이를 잘라내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무모하고 위험한 주장이다. 서울대 같은 교육연구기관 하나를 새로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5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아니 요즘 같은 무한경쟁시대에 도대체 실현 자체가 가능할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국가재정을 집중투자해 국공립대 교육의 질을 서울대 수준으로 상향평준화하자는 것이라고 하지만 국공립대에 투자를 확대하면 될 것이지 왜 반드시 서울대의 정체성을 박탈해 국립대 연합체제로 용해시켜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정책 수단의 측면에서도 국립대 연합체제를 구축하면 학벌중심 서열구조가 혁파된다는 주장은 수긍할 수 없다. 서울대가 없어지면 학교 서열화도 자연히 사라지고 지방 학생이 서울에 유학을 할 필요도 없어진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연·고대 등 사립대학 중심으로 학력 서열화가 재편될 것이라는 주장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국립대 연합체제라는 ‘수단’으로 학벌중심 서열구조를 뜯어고친다는 ‘목표’를 잡겠다는 것 자체가 무모하고 천진난만한 발상이다. 학벌중심 서열구조를 개혁하는 것은 훨씬 더 근본적이고 복합적인 문제이다. 서울대의 이름을 없애고 학부를 없앤다고 달성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서울대가 법인으로 출범한 게 불과 6개월 전 일이다. 법인화로 대학의 자율성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이 생기고 있는 데는 민주통합당이 원죄를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뚜렷한 반성 없이 국립대 연합체제안을 제기하여 ‘손님’을 끌어 보겠다고 한다. 어리석거나 무책임하거나, 아니면 어리석고도 무책임한 발상이다. 정권 탈환을 노리는 제1야당이라지만 의도가 그리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포퓰리즘이니, 속 보이는 ‘표퓰리즘’이니 하는 비난이 나오는 까닭이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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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수준의 대학 만들 수 있다 국공립대 통합 목적은
서울대 폐지가 아니라
좋은 대학 전국에 두자는 것 국공립대학 통합 네트워크 안의 목적은 단순하다. 국가가 책임지고 좋은 대학을 전국에 골고루 만들자는 것이다. 전국의 국공립대학들을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대학들로 탈바꿈시키고 입시지옥을 해소해 중등교육을 정상화시키면, 국토 균형발전도 이룰 수 있고 학문 후속세대를 국내에서 훈련시킬 수 있는 역량도 강화할 수 있다. 이것이 일부에서 오인하고 있는 이른바 ‘서울대 폐지론’과 같을 수는 없다. 지금까지 정부는 지방대학을 살리겠다고 여러 가지 정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는 개별 대학에 초점을 맞추는 경쟁주의 원칙에 따른 접근방식이었다. 국가가 세운 국립대학이 법정 기준에 못 미치는데도 투자 확대로 해결하기보다 개별 대학에 책임을 전가했고, 상대적으로 싼값에 교육을 제공해온 국공립대 재학생 비율이 25%인데 이를 구조조정 대상으로 삼았다. 국립대학들은 정부 정책에 휘둘리면서 통폐합도 해보고, 성과급제도 도입하고, 총장 직선제도 포기하고, 법인화도 했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경쟁력 있는 대학이 되지 못했다. 대학의 발전을 원한다면 장기적인 계획과 지속적인 재원 확보가 필요하다. 이는 국내외 사례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자랑하는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들-카이스트·포항공대·광주과기원·대구경북과기원·울산과학기술대학-은 정부 또는 공기업의 투자로 단기간에 양질의 대학이 되었다. 모두 비수도권에 있지만 이른바 ‘스카이’(SKY)를 넘어서는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국공립 체제로 대학 무상교육을 하는 북유럽 국가들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나 세계경제포럼의 고등교육 경쟁력 평가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는다. 미국의 주립대학 체제나 프랑스의 대학도 마찬가지다. 이제 국가의 경제는 고등교육 전반의 연구수준과 교육역량에 의존하고 있어 소수의 우수한 대학들과 다수의 그렇지 못한 대학들로 국민의 높은 삶의 질과 정치공동체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이제 개혁의 프레임을 개별대학이 아닌 대학체제 차원으로 이동해야 한다. 국공립대 통합안은 새로운 대학을 세우는 방식보다 이미 다양한 양태로 존재하는 국공립대학들을 계통화하고, 수평적으로 연계하여 국공립대학 체제의 질적 도약을 시도하여 사회의 장기적 필요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현재의 국공립대학들이 경쟁력이 낮다는 점을 우려하여 같은 비용으로 새로운 대학을 세우는 것을 고려할 수 있지만, 이미 이들 대학은 상당한 연구와 교육의 기반을 갖추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체제 혁신을 이루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혁신의 과정은 국가와 대학 구성원이 사회적 합의 기구를 만들어 함께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국공립대학들도 각고의 자기반성과 혁신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다. 국공립대학의 선도적 혁신은 장기적으로 사립대학을 포함한 고등교육 전체의 공공성을 확산하고 대학의 문화를 높은 차원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재정투자는 늘지만 국민 전체의 교육투자는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안은 완성된 것도 완벽한 것도 아니다. 근거가 있는 우려와 생산적 반대 의견을 경청함으로써 방안을 가다듬고 차분한 실행계획을 잘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정당들과 대통령 후보들이 좋은 대학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기 바란다. 장수명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연·고대 등 사립대 중심으로
또다른 서열화 불러올 것 민주통합당의 ‘국립대 연합체제 구축방안’은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과거에도 서울대 폐지론, 국립대 통폐합론, 국립대 공동학위제 등 이런저런 대안과 시도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주장과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 사이에 괴리가 있다. 주류언론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이를 ‘서울대 폐지론’으로 받아들였다. 장본인이 나서서 거듭 서울대 폐지나 국공립대 통폐합이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얘기가 그렇게 전개될 줄 예상 못한 바도 아닐 테고 또 은근히 흥행을 기대한 게 아닌지도 의심스럽다. 아무튼 이 방안이 서울대의 정체성 박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2017년까지 서울대의 명칭을 아예 없애자는 게 핵심인데, 이는 서울대의 존재 자체가 과열 입시경쟁과 학벌주의 서열구조의 근원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서울대의 실체 자체를 없애는 게 아니고 단지 이름만 없앤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전국의 주요 국립대 학부를 통합해 ‘국립대 서울캠퍼스’ ‘국립대 부산캠퍼스’ 등으로 개편하여 서울캠퍼스엔 기초학문 분야만 남기고 각 지방캠퍼스를 의학·공학 등으로 특성화한다는 구조개혁안이기 때문이다. 서울대의 위상과 권위를 박탈해 국립대학 체제에 분산·편입시키고, 다른 국립대학과 다름없는 그저 ‘서울 소재’ 일개 캠퍼스 정도로 평준화·중성화하겠다는 구상에 다름 아니다. 이 주장은 얼핏 그럴듯하지만 정책의 목표와 수단 등 모든 면에서 문제가 많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 중 하나인 학벌중심 서열구조의 정점에 서울대가 있으니 이를 잘라내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무모하고 위험한 주장이다. 서울대 같은 교육연구기관 하나를 새로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5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아니 요즘 같은 무한경쟁시대에 도대체 실현 자체가 가능할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국가재정을 집중투자해 국공립대 교육의 질을 서울대 수준으로 상향평준화하자는 것이라고 하지만 국공립대에 투자를 확대하면 될 것이지 왜 반드시 서울대의 정체성을 박탈해 국립대 연합체제로 용해시켜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정책 수단의 측면에서도 국립대 연합체제를 구축하면 학벌중심 서열구조가 혁파된다는 주장은 수긍할 수 없다. 서울대가 없어지면 학교 서열화도 자연히 사라지고 지방 학생이 서울에 유학을 할 필요도 없어진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연·고대 등 사립대학 중심으로 학력 서열화가 재편될 것이라는 주장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국립대 연합체제라는 ‘수단’으로 학벌중심 서열구조를 뜯어고친다는 ‘목표’를 잡겠다는 것 자체가 무모하고 천진난만한 발상이다. 학벌중심 서열구조를 개혁하는 것은 훨씬 더 근본적이고 복합적인 문제이다. 서울대의 이름을 없애고 학부를 없앤다고 달성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서울대가 법인으로 출범한 게 불과 6개월 전 일이다. 법인화로 대학의 자율성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이 생기고 있는 데는 민주통합당이 원죄를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뚜렷한 반성 없이 국립대 연합체제안을 제기하여 ‘손님’을 끌어 보겠다고 한다. 어리석거나 무책임하거나, 아니면 어리석고도 무책임한 발상이다. 정권 탈환을 노리는 제1야당이라지만 의도가 그리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포퓰리즘이니, 속 보이는 ‘표퓰리즘’이니 하는 비난이 나오는 까닭이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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