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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논쟁] 강력한 금연정책, 약인가 독인가?

등록 2012-06-07 19:34수정 2012-06-08 09:54

서홍관 국립암센터 본부장·금연운동협의회장
서홍관 국립암센터 본부장·금연운동협의회장
이제는 먼 이야기가 됐지만,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흡연자들은 거칠 게 없었다. 실내흡연은 물론이고, 고속버스나 기차에서도 마음껏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오죽하면 고속버스나 시외버스 좌석 등받이에 조그마한 재떨이가 달려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젠 강력한 금연정책으로 실내는 물론이고 공원, 버스정류장, 심지어 대로에서도 흡연을 할 수 없게 된다. 서울시에서는 시내 모든 음식점에서 금연을 의무화하는 법 개정도 추진중이다. 강력한 금연정책을 지지하는 쪽은 국민건강을 위해 필요한 조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사적 영역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반론도 있다. 양쪽의 의견을 들어봤다.


금연정책은 모두를 위한 것

방종이 학생 위한 길 아니듯
담배 맘껏 피우게 하는 게
흡연자 위하는 정책 아니다

서울시는 지난 6월1일부터 광장과 공원, 버스정류소를 포함한 1950개 금연구역에서 흡연을 하면 본격적으로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서초구와 강남구 등 자치구에서는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대로와 양재대로 등도 금연구역으로 지정해 단속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금연구역을 최초로 규정한 법은 1995년 제정된 국민건강증진법이다. 지난해 이 법이 개정되면서 ‘지방자치단체는 조례로 관할구역 안의 일정한 장소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게 됐다. 실외공간을 금연으로 규제하고 과태료를 부과할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흡연자들은 볼멘소리로 이런 정책이 일방적으로 흡연자를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냐고 항의한다. 담배회사의 지원을 받는 한 담배소비자단체는 실외 금연구역이 확대되니 흡연실을 설치해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금연정책을 선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만 봐도 몇 군데의 광장과 버스정류장, 일부 금연거리를 빼고는 대부분 흡연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극히 일부인 금연구역에 또다시 흡연구역을 설치해달라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담배 연기에는 온갖 발암물질과 독성물질이 들어 있다. 짧은 노출로도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심근경색이나 협심증을 유발할 수 있고, 천식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다. 또한 담배 연기는 당장 질병을 유발하지 않는다 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게 명백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타인에게 불편을 감수하라는 생각은 성숙한 시민의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

서울시는 최근 보건복지부에 음식점에서의 완전금연 실시 시기를 앞당겨줄 것을 촉구했다. 실외에서의 간접흡연보다 더 심각하고 치명적인 것이 실내 흡연에 따른 피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서울시의 주장은 백번 타당하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잊어선 안 될 것이 바로 아파트에서의 간접흡연이다. 아파트는 다중이 이용하는 주거공간인데, 열어놓은 창문이나 배수구를 타고 위아랫집에서 피우는 담배연기가 새어 들어와 이웃 간의 다툼으로 번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서울시는 2007년부터 ‘금연아파트’ 사업을 벌여왔다. 주민 50% 이상이 찬성하면 공용공간인 주차장, 복도, 놀이터 등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이 사업으로 간접흡연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이 사업 전과 견줘 73.8%에서 35.5%로 줄었다고 한다. 담배 연기 안 마시며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은 것이 과도한 욕심으로 치부되지 않기를 바란다.

작가 박범신씨는 지난 6일 <한겨레> 칼럼에서 흡연을 규제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규제 일변도의 정책에서 벗어나 흡연자를 위한 정책도 펴달라고 주장했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흡연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정책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봐야 한다. 과연 흡연자에게 마음껏 담배를 피우게 하는 것이 그들을 위한 정책일까?

금연구역 확대는 4000만의 비흡연자를 간접흡연으로부터 보호하고 1000만의 흡연자가 언젠가는 금연 결심을 하도록 돕는 정책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수업시간에 마음껏 게임을 하고, 수업을 마음대로 빼먹게 해주는 것이 청소년을 위하는 길이 아니듯, 흡연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정책은 흡연자가 편하게 흡연하도록 돕는 정책이 아니라, 금연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본부장·금연운동협의회장


정경수 한국담배소비자협회 회장
정경수 한국담배소비자협회 회장
흡연권과 혐연권은 상생해야 한다

흡연·비흡연자 상생 가능한데
국민건강 지킨다는 이유로
흡연자들만 내모는 건 아닌지

담배라는 상품은 국가가 제조·판매를 허가한 합법적인 성인기호품이요, 흡연자는 담배를 소비하는 소비자다. 다른 기호식품은 마시거나 먹거나 하는 상품이라면 담배만은 흡연행위를 통해 소비하는 상품이다. 그렇다면 흡연자들도 소비자로서 권리를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많은 사람들은 담배는 유해하다고 생각하고 금연정책 강화에 신바람이 나 있다. 보건당국과 지방정부는 각각 국민건강증진법과 금연조례를 강화해 실내 금연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조차 흡연할 수 없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국가는 담배란 상품을 통해 해마다 10조원의 세수를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1000만 흡연자들을 ‘죄인’ 취급하고 있다. 개인의 행복추구권은 우리나라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 하지만 최근 상황을 보면, 국가가 국민건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가는 곳마다 금연구역, 금연건물 등을 지정해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박탈하고 있다. 최근에는 재벌그룹 등 기업들까지 가세했다. 전 사업장을 금연구역을 지정하고 흡연자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이다.

간접흡연에 따른 비흡연자들의 건강을 지키고 흡연자들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흡연자들이 담배를 소비할 수 있는 적당한 공간을 마련해주면 충분히 가능하다. 혐연권과 흡연권이 상생할 수 있는데도, 지금 우리는 흡연자들만 무조건 내몰고 있다. 흡연자들을 위한 정책적인 배려는 어디에도 없다.

무슨 예산으로 흡연구역을 마련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미 흡연자들이 매년 담배를 피운 죗값(?)으로 내놓는 1조9천억원에 달하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을 사용하면 된다. 목적세 성격인 이 기금 가운데 흡연자들에게 쓰인 돈은 거의 없다. 선진국의 사례를 볼 때, 이웃 일본의 경우 금연거리를 정하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가에 별도의 흡연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간접흡연 피해가 없도록 흡연공간을 마련해 혐연권과 흡연권이 충돌하지 않고 상생하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일방적인 금연운동과 규제만이 국민건강을 지킨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흡연은 개인의 자의에 의한 행위이기에 흡연자들도 필요에 따라 담배를 끊으려고 노력하고 실제로도 끊고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지속해온 금연교육과 홍보 덕으로 해마다 2~3%씩 흡연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흡연자들도 자의적으로 담배를 끊고 건강도 챙길 줄 아는 지각을 가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 추세는 흡연 자체의 피해보다는 ‘흡연자’로 인한 비흡연자의 피해를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흡연자에 대한 비흡연자의 적대감만 커질 수밖에 없다. 강력한 금연정책을 펼치기 위해 비흡연자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개인의 사적 영역을 국가나 사회가 죄악시하고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묻고 싶다. 혹독한 처벌과 강력한 규제만이 해결 방법은 아니다. 흡연을 개인의 의지에 맡겨두고, 비흡연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물리적인 방법이 아니라 합리적인 이유로 흡연자들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금연을 실행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사회일수록 성숙한 사회다. 서로를 이해하며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어갈 때 혐연권과 흡연권의 충돌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정경수 한국담배소비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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