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피임약 가운데 하나인 ‘노레보’. <한겨레> 자료사진
[논쟁] 사후 피임약,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나?
정부가 사후(응급) 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심사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첨예해지고 있다. 현재 사후 피임약은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구입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부작용과 생명경시 풍조’가 우려된다는 반대 쪽과, ‘여성의 임신선택권 보장’과 ‘성폭행 사고에 대한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양쪽의 의견을 들어본다.
응급약이 이렇게 팔리는 경우는 없다
판매 7·8·12월에 집중…
응급상황에 써야 함에도
일반 피임약처럼 인식
제한적 사용 마땅하다 응급 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요청한 단체들은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낙태 예방을 위해 응급 피임약의 접근성을 높이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모든 기대가 현실적이지 않다. 응급 피임약을 전문의의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기대와는 달리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준비되지 않은 임신을 늘리며, 불법적인 낙태를 고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 응급 피임약은 일반 피임약보다 호르몬제를 10~20배 고농도 처리한 약품이다. 고농도 호르몬은 여성의 생리체계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건강에도 좋지 않고 수반되는 여러 가지 부작용도 있다. 피임하지 않은 상태의 여성이 응급 피임약이라는 비상구가 있다는 이유로 남성의 성관계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피임률이 낮은데 응급 피임약을 과신하여 피임을 더 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응급 피임약이 언제 어떻게 팔리는지를 보면 응급 피임약이 ‘응급용’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응급 피임약은 7·8·12월에만 집중적으로 판매된다. 요일로는 대부분이 월요일에 판매된다. 이는 성관계의 확률이 가장 높은 주말이나 피서철, 연말에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응급 피임약이 있기 때문에 도리어 책임감 없고, 준비되지 않은 성관계에 자신을 허용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피임이라는 것은 사전에 하는 것이지 사후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후 피임약이라는 용어 자체가 틀린 것이다. 그런데 사후에도 피임 조처가 가능하다는 과신 때문에 성관계와 피임과 임신에 대한 책임을 등한히 하고 있다. 그동안 응급 피임약과 관련해 상담한 사례들을 보면 응급 피임약이 여성의 성적인 피해와 원치 않는 임신, 낙태를 유발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무분별한 성관계를 부추기고, 오남용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에서 정리한 세계 각국 보고서의 결론은 응급 피임약의 보급이 원치 않는 임신과 낙태를 줄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응급 피임약은 성폭행이나 데이트 성폭행과 같은 비상상황에서 임신(배아착상)이라는 2차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최후수단으로 사용하는, 말 그대로 응급약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응급약으로 인식하지 않고 피임약의 한 종류로 알고 있기 때문에 오남용이 우려되었고 실제로 오남용이 되고 있다. 어떻게 응급약이 연간 59억원어치, 62만팩(하루에 1700팩)이나 판매될 수 있는가? 응급약이라면 한 여성이 평생에 한 번 쓸까 말까 해야 한다. 반복 사용을 하고 있다면 여성의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고, 준비되지 않은 임신으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응급 피임약을 반복적으로 복용하게 되면 약효도 떨어지게 된다. 이와 같은 약의 속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약을 사용한 사람이 53~67%로 조사되었다(순천향대 산부인과 피임연구회).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일반 피임약보다 간편한 피임약으로 알고 상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응급 피임약은 전문의의 상담을 거쳐 복약처방을 해야 하는 전문약으로 분류되어야 하며,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약이다. 그래서 2001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응급 피임약 수입 판매를 허가할 때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결코 일반약으로의 전환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고, 지난해 가장 발전된 형태의 응급 피임약인 엘라원의 수입을 허가할 때도 전문약으로 분류해서 원칙을 지켰다. 이런 원칙을 계속 지켜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올바른 피임을 하고, 책임 있는 성생활을 하기 바란다. 김현철 낙태반대운동연합 회장
원치 않는 임신, 그 자체가 응급상황이다
남성들의 피임 실천율
낮은 성차별적 피임문화…
병원 처방 받느라 정작
응급상황에서 구입 못해 한국에서 사후(응급) 피임약 복용은 병원에 직접 방문하여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최근 병원 판매만 가능한 사후 피임약을 약국에서 시판할 수 있도록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는 문제와 관련된 논쟁이 뜨겁다. 종교계는 성 문란과 생명존중 풍토 저해를 이유로 반대하고, 일부 의사들은 여성들이 약의 위험성을 알지 못한 채 ‘응급’시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간편한 피임약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약국에서 구매가 가능해질 경우 과다 복용, 남용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일반의약품 전환을 반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사후 피임약이 응급상황인 성폭행 등만이 아닌 ‘보통’의 상황에서도 사용되고 있을까? 이것은 여성들이 느끼는 응급의 상황이 성관계가 일어난 그 시점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임신이 염려되는 순간, 여성들의 인생에선 응급상황이다. 애초에 왜 ‘결혼도 하지 않고 문란하게’ 성관계를 가졌느냐고 탓하기 전에 그 상황에 이르게 된 과정을 보자. 현재 한국 사회는 성차별적인 피임문화를 갖고 있다. 피임은 성관계에 참여하는 여성과 남성, 공동의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피임 실천율은 여전히 낮다. 이처럼 피임 방법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발언력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어렵게 콘돔 사용에 대해 말을 꺼내도 피임 실천으로 이어지긴 어렵다. 더욱이 일부 남성들은 자신의 성감을 위해 여성들에게 사후 피임약을 포함한 경구피임약(먹는 피임약)을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 여성들의 일반 피임약 복용률보다 사후 피임약의 복용률이 더 높은 것을 따지고 들며 여성들이 사전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에 앞서 남성들의 피임률을 조사해보자. 사정에 이르는 단계까지 콘돔을 착용하고 있는 남성의 수 말이다. 종교계의 의견은 차치하더라도 다양한 피임 방법에 대한 시도 없이 간단히 약을 복용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짜 여성들의 생각일까? 또한 의사들이 제시하는 사후 피임약이 여성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만큼 현재 병원에서는 사후 피임약을 처방할 때 제대로 된 복약 방법, 부작용에 대한 고지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약국 판매 때 약에 대한 제대로 된 안내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현장에 대한 성찰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이는 그 판매처가 병원이든 약국이든 복용 방법, 부작용 등에 대한 충분한 고지에 대한 감시가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사후 피임약에 대한 접근성을 생각해보자. 현재 사후 피임약은 병원 처방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야간이나 휴일, 연휴에 구입이 불가능하다. ‘응급성’이라는 약의 기본적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후 피임약의 접근성을 높이는 측면에서 일반의약품으로의 전환이 하나의 방법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이처럼 사후 피임약 접근성 확보에 대한 논의와 함께 성차별적인 피임문화 속에서 겪는 여성들의 피임 과정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성적 의사소통의 문화·구조를 만들기 위한 정책적인 고민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여성들의 경험적 맥락을 근거로 한 건강권 확보를 위한 고려, 보호장치 마련 등이 이뤄질 때 사후 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이 가지는 의미성이 실현될 수 있다.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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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피임약처럼 인식
제한적 사용 마땅하다 응급 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요청한 단체들은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낙태 예방을 위해 응급 피임약의 접근성을 높이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모든 기대가 현실적이지 않다. 응급 피임약을 전문의의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기대와는 달리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준비되지 않은 임신을 늘리며, 불법적인 낙태를 고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 응급 피임약은 일반 피임약보다 호르몬제를 10~20배 고농도 처리한 약품이다. 고농도 호르몬은 여성의 생리체계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건강에도 좋지 않고 수반되는 여러 가지 부작용도 있다. 피임하지 않은 상태의 여성이 응급 피임약이라는 비상구가 있다는 이유로 남성의 성관계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피임률이 낮은데 응급 피임약을 과신하여 피임을 더 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응급 피임약이 언제 어떻게 팔리는지를 보면 응급 피임약이 ‘응급용’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응급 피임약은 7·8·12월에만 집중적으로 판매된다. 요일로는 대부분이 월요일에 판매된다. 이는 성관계의 확률이 가장 높은 주말이나 피서철, 연말에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응급 피임약이 있기 때문에 도리어 책임감 없고, 준비되지 않은 성관계에 자신을 허용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피임이라는 것은 사전에 하는 것이지 사후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후 피임약이라는 용어 자체가 틀린 것이다. 그런데 사후에도 피임 조처가 가능하다는 과신 때문에 성관계와 피임과 임신에 대한 책임을 등한히 하고 있다. 그동안 응급 피임약과 관련해 상담한 사례들을 보면 응급 피임약이 여성의 성적인 피해와 원치 않는 임신, 낙태를 유발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무분별한 성관계를 부추기고, 오남용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에서 정리한 세계 각국 보고서의 결론은 응급 피임약의 보급이 원치 않는 임신과 낙태를 줄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응급 피임약은 성폭행이나 데이트 성폭행과 같은 비상상황에서 임신(배아착상)이라는 2차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최후수단으로 사용하는, 말 그대로 응급약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응급약으로 인식하지 않고 피임약의 한 종류로 알고 있기 때문에 오남용이 우려되었고 실제로 오남용이 되고 있다. 어떻게 응급약이 연간 59억원어치, 62만팩(하루에 1700팩)이나 판매될 수 있는가? 응급약이라면 한 여성이 평생에 한 번 쓸까 말까 해야 한다. 반복 사용을 하고 있다면 여성의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고, 준비되지 않은 임신으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응급 피임약을 반복적으로 복용하게 되면 약효도 떨어지게 된다. 이와 같은 약의 속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약을 사용한 사람이 53~67%로 조사되었다(순천향대 산부인과 피임연구회).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일반 피임약보다 간편한 피임약으로 알고 상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응급 피임약은 전문의의 상담을 거쳐 복약처방을 해야 하는 전문약으로 분류되어야 하며,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약이다. 그래서 2001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응급 피임약 수입 판매를 허가할 때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결코 일반약으로의 전환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고, 지난해 가장 발전된 형태의 응급 피임약인 엘라원의 수입을 허가할 때도 전문약으로 분류해서 원칙을 지켰다. 이런 원칙을 계속 지켜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올바른 피임을 하고, 책임 있는 성생활을 하기 바란다. 김현철 낙태반대운동연합 회장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낮은 성차별적 피임문화…
병원 처방 받느라 정작
응급상황에서 구입 못해 한국에서 사후(응급) 피임약 복용은 병원에 직접 방문하여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최근 병원 판매만 가능한 사후 피임약을 약국에서 시판할 수 있도록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는 문제와 관련된 논쟁이 뜨겁다. 종교계는 성 문란과 생명존중 풍토 저해를 이유로 반대하고, 일부 의사들은 여성들이 약의 위험성을 알지 못한 채 ‘응급’시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간편한 피임약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약국에서 구매가 가능해질 경우 과다 복용, 남용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일반의약품 전환을 반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사후 피임약이 응급상황인 성폭행 등만이 아닌 ‘보통’의 상황에서도 사용되고 있을까? 이것은 여성들이 느끼는 응급의 상황이 성관계가 일어난 그 시점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임신이 염려되는 순간, 여성들의 인생에선 응급상황이다. 애초에 왜 ‘결혼도 하지 않고 문란하게’ 성관계를 가졌느냐고 탓하기 전에 그 상황에 이르게 된 과정을 보자. 현재 한국 사회는 성차별적인 피임문화를 갖고 있다. 피임은 성관계에 참여하는 여성과 남성, 공동의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피임 실천율은 여전히 낮다. 이처럼 피임 방법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발언력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어렵게 콘돔 사용에 대해 말을 꺼내도 피임 실천으로 이어지긴 어렵다. 더욱이 일부 남성들은 자신의 성감을 위해 여성들에게 사후 피임약을 포함한 경구피임약(먹는 피임약)을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 여성들의 일반 피임약 복용률보다 사후 피임약의 복용률이 더 높은 것을 따지고 들며 여성들이 사전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에 앞서 남성들의 피임률을 조사해보자. 사정에 이르는 단계까지 콘돔을 착용하고 있는 남성의 수 말이다. 종교계의 의견은 차치하더라도 다양한 피임 방법에 대한 시도 없이 간단히 약을 복용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짜 여성들의 생각일까? 또한 의사들이 제시하는 사후 피임약이 여성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만큼 현재 병원에서는 사후 피임약을 처방할 때 제대로 된 복약 방법, 부작용에 대한 고지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약국 판매 때 약에 대한 제대로 된 안내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현장에 대한 성찰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이는 그 판매처가 병원이든 약국이든 복용 방법, 부작용 등에 대한 충분한 고지에 대한 감시가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사후 피임약에 대한 접근성을 생각해보자. 현재 사후 피임약은 병원 처방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야간이나 휴일, 연휴에 구입이 불가능하다. ‘응급성’이라는 약의 기본적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후 피임약의 접근성을 높이는 측면에서 일반의약품으로의 전환이 하나의 방법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이처럼 사후 피임약 접근성 확보에 대한 논의와 함께 성차별적인 피임문화 속에서 겪는 여성들의 피임 과정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성적 의사소통의 문화·구조를 만들기 위한 정책적인 고민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여성들의 경험적 맥락을 근거로 한 건강권 확보를 위한 고려, 보호장치 마련 등이 이뤄질 때 사후 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이 가지는 의미성이 실현될 수 있다.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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