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광순 여성운동가·한의사
[논쟁] 제사·차례, 꼭 지내야 하나?
설이 다가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명절이 다가오면 ‘차례’를 두고 지낼 것인가 말 것인가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급기야 가족·친지들이 모여 웃음꽃을 피워야 할 명절에 이 문제를 두고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과거에는 ‘우상숭배 금지’라는 기독교 교리에 기반한 ‘종교적 차원’에서의 문제제기였다면, 요즘에는 양성평등과 노동 형평성을 중심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번 ‘논쟁’에선 설 연휴를 앞두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제사나 차례는 과연 필요한 의식인가’라는 물음을 던져 보았다.
죽음보다 현재의 삶이 중요하다
차별이 가혹한 시절 만들어진
허세적인 양반문화일 뿐이다
살아계신 동안 가족여행, 소풍,
오락회를 열어 함께 즐겨보자 조상 제사가 우리의 오래된 전통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국 황실의 문화를 조선 왕실과 양반들이 모방한 것이며, 평민과 상민이 따라 하면 불러다가 곤장을 때릴 정도로 상류층이 독점했던 문화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평민의 집 마당에 능소화를 심는 것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문화를 고집했던 것이 그 시절 신분제 사회의 질서였다. 중국 갑골문 전문가인 김경일 교수는 3300여년 전 중국 은나라의 조갑이 형을 해치우고 왕이 된 뒤 권좌에 오른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천신과 황하신에게 지내던 제사를 없애고 무당들로 하여금 까다로운 형식의 조상 제사를 관장하게 했다고 그 기원을 밝힌 바 있다. 이성계가 고려 왕을 배신하고 조선을 세운 뒤 세종 때 <용비어천가>를 지어 자기의 조상들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으며 그런 조상의 후손임을 내세워 쿠데타를 합리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에서 족보 만들기나 조상 제사가 대중에게 일반화된 것은 양반의 세도가 무력해진 일제강점기 이후의 일이다. 일제는 식민지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호적제도를 도입했고 성씨가 없던 평민과 상민들은 그때 비로소 성을 만들어 관청에 등록했다. 그러니 그 뒤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족보가 가짜일 수밖에 없고, 김·이·박 3성이 전 국민의 45%를 차지하는, 세계에서 희귀한 ‘성 쏠림 현상’도 나타나게 된 것이다. 왕조 시대의 귀족들은 자기의 피가 다르니 감히 자신의 권력을 넘보지 말라는 차별화 전략으로 조상 제사나 족보를 이용했다. 프랑스 민중은 혁명을 성공시켜 독점권력을 무너뜨리고 자유·평등·형제애와 같은 새로운 가치를 내세웠지만, 조선의 백성은 외세의 침략으로 양반이 무력해지자 양반의 문화를 흉내 냄으로써 차별의 서러움에서 벗어나려 했다. 양반 또한 과거의 자존심을 잊지 않으려고 족보나 조상 제사를 고수했으니 일제강점기에 조상 제사는 전 국민의 행사가 되었다.
돌아가신 이를 기리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래전 신분이나 성별에 따른 차별이 가혹했던 시절에 만들어지거나 유통된 문화가 지금에도 필요하거나 아름다울 리 없다. 작가 이문열은 제사상에 올릴 떡시루에 김이 안 올라 목을 맨 며느리에게서 섬뜩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고 하지만, 우리 여성들에게는 이문열의 미적 취향이 섬뜩할 뿐이다. 조상 제사의 원조국인 중국에서도 이제는 사후 1~3년간만 아들딸 불문하고 형편 되는 자식이 상을 차린다. 우리의 관혼상제 문화에 아직도 허례허식이 많은 것은 그것이 창의적인 것도 아니며 차별적이고도 허세적인 양반문화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타이가에 살면서 지혜를 전하는 아나스타시야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그의 영을 깨어나지 못하게 하며 그를 죽은 상태에 묶어둠으로써 그의 영혼을 괴롭히는 일이 된다고 말한다. 윤회·내세를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덤, 비석, 수십년씩 이어지는 제례를 통해 죽음의 세계에 가두어 두고 후손을 위해 복을 달라고 비는 것은 망자를 위해서도 예의가 아니다. 어느 인디언의 시처럼 죽은 뒤엔 천 개의 바람이 되고, 눈 위의 반짝임이 되며, 곡식 위로 내리쬐는 햇빛이 되고, 고요한 아침 부드럽게 내리는 가을비가 되며, 새들의 날갯짓이 되고, 빛 나는 별빛이 되는 것이, 된다고 믿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은가. 혹 꿈에 망자가 안 좋은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무덤을 옮기거나 점집을 찾을 일이 아니라, 찬란한 빛 속에서 환한 미소를 띠고 세상 만물에 사랑과 축복을 내리는 모습을 수시로 상상해드리는 것도 좋겠다. 남들이 하니까, 옛날부터 해온 것이니 그대로 따를 게 아니라 합리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며 살아보자. 고령화 사회다. 살아 계신 동안 가족여행, 가족소풍, 가족오락회를 열고 검은 흙에서 돋는 초록 새싹과 노랗고 빨간 꽃에 감동받으며 새들의 예쁜 지저귐이나 나와 타인의 미소를 감사하며 함께 즐겨보자. 부모·조상의 유전자는 모두 내게 전해지는 것이니 나와 타인을 귀하게 여기며 서로 돕는 우리에게 조상들은 박수를 쳐주실 것이다.
형식이 아니라 정성이다
‘조상숭배’란 일본식 용어 탓에
고리타분하다는 오해 받아…
제사는 집안 내력과 가족 질서
몸으로 배우는 인성교육의 장 대한민국의 경제지표 중에 ‘제수물가’라는 것이 있다. 1년에 두 번 찾아오는 설과 추석 명절이면 어김없이 보도되는 ‘설이나 추석의 제수 비용’이다. “올해는 4인 가족 제수비용 ○○원”이라는 기사가 그것이다. 참고로 올해는 전통시장을 이용할 경우 18만원 정도란다. 한 해도 거르지 않은 이런 기사는 제사가 한국 문화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이고,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문화요소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과연 제사를 지내야 하는가’라는 질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미 1791년 5월 ‘진산사건’부터 있었던 일이다. 종교적인 이유야 종교윤리로 설명할 일이다. 그러나 현재 다종교 사회 대한민국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제사를 반대하는 이유는 ‘제사를 위한 여성의 노동 강요’이다. 그들은 조선시대부터 남존여비로 여성이 비하되었고, 오늘날도 제사는 여성의 노동만 강요하는 폐습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음양의 원리에 따라, 힘든 노동이라는 이유로 여성은 논일도 못하게 하였다. 맏며느리는 한 집안의 경제를, 회계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안방물림’이라는 민속이 이를 증명한다. 이러한 전통이 요즘 남성의 월급통장이 고스란히 부인들에게 넘어가게 했는지도 모른다. 제사란 무엇인가? 넓게는 초월적 존재에게 제물을 바치고 정성을 표하는 일이다. 한국에서는 조선시대부터 조상을 추모하고 섬기는 일을 제사로 여겨왔다. 이는 보본반시(報本反始), 즉 자신의 존재 근원인 시원을 되돌아보게 하는 문화적 장치이다. <예기>에선 귀신에게 순종하고, 밖으로 임금과 어른에게 순종하고, 안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모두 갖춘 어진 사람이라 하였고, 이러한 사람만이 제사를 지낼 수가 있다고 하였다. 제사에서는 정결하게 제수를 올릴 뿐이요 자기에게 복이 되는 것을 구하지 않는다. 이것이 효자의 마음이다. 여기서 복이라는 것은 제사를 통해 물질적 혜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도리에 따라 순응한 결과 내 속에 갖추어지는 덕’이라는 것이다. 이랬던 제사가 고리타분하여 버려야 할 문화로 치부되고 종교적 오해를 받게 된 것은 ‘조상숭배’라는 일본식 학문 용어를 무비판적으로 갖다 쓴 결과이다. 현대사회에서 제사의 가장 큰 걸림돌은 ‘귀차니즘’이다. ‘얼굴도 모르는 조상을 왜?’, ‘제사 절차와 상 차리는 방법이 너무 복잡해!’, ‘날짜 기억하기도 귀찮아!’이다. 이는 학교에서 에티켓은 배워도 인간 서로간의 행위를 규정하는 ‘예’를 가르치지 않았고, 제사를 지나치게 형식화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제사는 형식으로 말하지 않고 정성으로 말한다. 유교가 우리의 문화적 전통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제사 역시 유교식이 되었고, 이것이 의례의 문화적 전통으로 정착된 것이다. 현대의 다종교 사회에서는 제사의 원래 의미만 살릴 수 있다면 유교식이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좋다. 의례는 ‘형식’과 ‘반복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로 인해 의례는 관습적이고 보수적이고 전통주의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조명해 보면 ‘반복적인 형식화’로 인해 고착되어 보이던 의례가 매우 ‘가변적’이고 ‘다양성’을 갖춘 문화요소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의례의 시행은 새로운 삶의 형식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학교폭력, 청소년 폭력이 심각하다. 가정에서 몸으로 체험한 폭력의 악순환 때문이란다. 자신이 편하자고 자식들의 인성교육까지 방기하여 자식의 장래를 망치는 우를 범할 것인가. 전통사회에서는 제사를 기해 형제와 친척이 모여 집안의 내력과 가족의 질서를 몸으로 배우는 인성교육이 행해진다. 다리 밑에서 주워 온 근원 없는 내가 아니고 가문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가진 나를 알게 된다. 우리의 문화적 전통을 어릴 때부터 몸으로 배운 청소년이 과연 문제아가 될 수 있을까? 21세기를 맞으며 선포한 문화전쟁의 가장 큰 무기와 전략은 전통문화이다. 이젠 제발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사대주의적 생각을 버리자. 오늘 우리를 있게 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적 전통의 유전자(DNA)를 현재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법고창신’을 해야 할 때이다. 이것이 ‘제사, 과연 지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허세적인 양반문화일 뿐이다
살아계신 동안 가족여행, 소풍,
오락회를 열어 함께 즐겨보자 조상 제사가 우리의 오래된 전통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국 황실의 문화를 조선 왕실과 양반들이 모방한 것이며, 평민과 상민이 따라 하면 불러다가 곤장을 때릴 정도로 상류층이 독점했던 문화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평민의 집 마당에 능소화를 심는 것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문화를 고집했던 것이 그 시절 신분제 사회의 질서였다. 중국 갑골문 전문가인 김경일 교수는 3300여년 전 중국 은나라의 조갑이 형을 해치우고 왕이 된 뒤 권좌에 오른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천신과 황하신에게 지내던 제사를 없애고 무당들로 하여금 까다로운 형식의 조상 제사를 관장하게 했다고 그 기원을 밝힌 바 있다. 이성계가 고려 왕을 배신하고 조선을 세운 뒤 세종 때 <용비어천가>를 지어 자기의 조상들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으며 그런 조상의 후손임을 내세워 쿠데타를 합리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에서 족보 만들기나 조상 제사가 대중에게 일반화된 것은 양반의 세도가 무력해진 일제강점기 이후의 일이다. 일제는 식민지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호적제도를 도입했고 성씨가 없던 평민과 상민들은 그때 비로소 성을 만들어 관청에 등록했다. 그러니 그 뒤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족보가 가짜일 수밖에 없고, 김·이·박 3성이 전 국민의 45%를 차지하는, 세계에서 희귀한 ‘성 쏠림 현상’도 나타나게 된 것이다. 왕조 시대의 귀족들은 자기의 피가 다르니 감히 자신의 권력을 넘보지 말라는 차별화 전략으로 조상 제사나 족보를 이용했다. 프랑스 민중은 혁명을 성공시켜 독점권력을 무너뜨리고 자유·평등·형제애와 같은 새로운 가치를 내세웠지만, 조선의 백성은 외세의 침략으로 양반이 무력해지자 양반의 문화를 흉내 냄으로써 차별의 서러움에서 벗어나려 했다. 양반 또한 과거의 자존심을 잊지 않으려고 족보나 조상 제사를 고수했으니 일제강점기에 조상 제사는 전 국민의 행사가 되었다.
돌아가신 이를 기리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래전 신분이나 성별에 따른 차별이 가혹했던 시절에 만들어지거나 유통된 문화가 지금에도 필요하거나 아름다울 리 없다. 작가 이문열은 제사상에 올릴 떡시루에 김이 안 올라 목을 맨 며느리에게서 섬뜩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고 하지만, 우리 여성들에게는 이문열의 미적 취향이 섬뜩할 뿐이다. 조상 제사의 원조국인 중국에서도 이제는 사후 1~3년간만 아들딸 불문하고 형편 되는 자식이 상을 차린다. 우리의 관혼상제 문화에 아직도 허례허식이 많은 것은 그것이 창의적인 것도 아니며 차별적이고도 허세적인 양반문화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타이가에 살면서 지혜를 전하는 아나스타시야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그의 영을 깨어나지 못하게 하며 그를 죽은 상태에 묶어둠으로써 그의 영혼을 괴롭히는 일이 된다고 말한다. 윤회·내세를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덤, 비석, 수십년씩 이어지는 제례를 통해 죽음의 세계에 가두어 두고 후손을 위해 복을 달라고 비는 것은 망자를 위해서도 예의가 아니다. 어느 인디언의 시처럼 죽은 뒤엔 천 개의 바람이 되고, 눈 위의 반짝임이 되며, 곡식 위로 내리쬐는 햇빛이 되고, 고요한 아침 부드럽게 내리는 가을비가 되며, 새들의 날갯짓이 되고, 빛 나는 별빛이 되는 것이, 된다고 믿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은가. 혹 꿈에 망자가 안 좋은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무덤을 옮기거나 점집을 찾을 일이 아니라, 찬란한 빛 속에서 환한 미소를 띠고 세상 만물에 사랑과 축복을 내리는 모습을 수시로 상상해드리는 것도 좋겠다. 남들이 하니까, 옛날부터 해온 것이니 그대로 따를 게 아니라 합리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며 살아보자. 고령화 사회다. 살아 계신 동안 가족여행, 가족소풍, 가족오락회를 열고 검은 흙에서 돋는 초록 새싹과 노랗고 빨간 꽃에 감동받으며 새들의 예쁜 지저귐이나 나와 타인의 미소를 감사하며 함께 즐겨보자. 부모·조상의 유전자는 모두 내게 전해지는 것이니 나와 타인을 귀하게 여기며 서로 돕는 우리에게 조상들은 박수를 쳐주실 것이다.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추진단 과장
고리타분하다는 오해 받아…
제사는 집안 내력과 가족 질서
몸으로 배우는 인성교육의 장 대한민국의 경제지표 중에 ‘제수물가’라는 것이 있다. 1년에 두 번 찾아오는 설과 추석 명절이면 어김없이 보도되는 ‘설이나 추석의 제수 비용’이다. “올해는 4인 가족 제수비용 ○○원”이라는 기사가 그것이다. 참고로 올해는 전통시장을 이용할 경우 18만원 정도란다. 한 해도 거르지 않은 이런 기사는 제사가 한국 문화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이고,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문화요소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과연 제사를 지내야 하는가’라는 질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미 1791년 5월 ‘진산사건’부터 있었던 일이다. 종교적인 이유야 종교윤리로 설명할 일이다. 그러나 현재 다종교 사회 대한민국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제사를 반대하는 이유는 ‘제사를 위한 여성의 노동 강요’이다. 그들은 조선시대부터 남존여비로 여성이 비하되었고, 오늘날도 제사는 여성의 노동만 강요하는 폐습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음양의 원리에 따라, 힘든 노동이라는 이유로 여성은 논일도 못하게 하였다. 맏며느리는 한 집안의 경제를, 회계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안방물림’이라는 민속이 이를 증명한다. 이러한 전통이 요즘 남성의 월급통장이 고스란히 부인들에게 넘어가게 했는지도 모른다. 제사란 무엇인가? 넓게는 초월적 존재에게 제물을 바치고 정성을 표하는 일이다. 한국에서는 조선시대부터 조상을 추모하고 섬기는 일을 제사로 여겨왔다. 이는 보본반시(報本反始), 즉 자신의 존재 근원인 시원을 되돌아보게 하는 문화적 장치이다. <예기>에선 귀신에게 순종하고, 밖으로 임금과 어른에게 순종하고, 안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모두 갖춘 어진 사람이라 하였고, 이러한 사람만이 제사를 지낼 수가 있다고 하였다. 제사에서는 정결하게 제수를 올릴 뿐이요 자기에게 복이 되는 것을 구하지 않는다. 이것이 효자의 마음이다. 여기서 복이라는 것은 제사를 통해 물질적 혜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도리에 따라 순응한 결과 내 속에 갖추어지는 덕’이라는 것이다. 이랬던 제사가 고리타분하여 버려야 할 문화로 치부되고 종교적 오해를 받게 된 것은 ‘조상숭배’라는 일본식 학문 용어를 무비판적으로 갖다 쓴 결과이다. 현대사회에서 제사의 가장 큰 걸림돌은 ‘귀차니즘’이다. ‘얼굴도 모르는 조상을 왜?’, ‘제사 절차와 상 차리는 방법이 너무 복잡해!’, ‘날짜 기억하기도 귀찮아!’이다. 이는 학교에서 에티켓은 배워도 인간 서로간의 행위를 규정하는 ‘예’를 가르치지 않았고, 제사를 지나치게 형식화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제사는 형식으로 말하지 않고 정성으로 말한다. 유교가 우리의 문화적 전통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제사 역시 유교식이 되었고, 이것이 의례의 문화적 전통으로 정착된 것이다. 현대의 다종교 사회에서는 제사의 원래 의미만 살릴 수 있다면 유교식이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좋다. 의례는 ‘형식’과 ‘반복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로 인해 의례는 관습적이고 보수적이고 전통주의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조명해 보면 ‘반복적인 형식화’로 인해 고착되어 보이던 의례가 매우 ‘가변적’이고 ‘다양성’을 갖춘 문화요소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의례의 시행은 새로운 삶의 형식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학교폭력, 청소년 폭력이 심각하다. 가정에서 몸으로 체험한 폭력의 악순환 때문이란다. 자신이 편하자고 자식들의 인성교육까지 방기하여 자식의 장래를 망치는 우를 범할 것인가. 전통사회에서는 제사를 기해 형제와 친척이 모여 집안의 내력과 가족의 질서를 몸으로 배우는 인성교육이 행해진다. 다리 밑에서 주워 온 근원 없는 내가 아니고 가문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가진 나를 알게 된다. 우리의 문화적 전통을 어릴 때부터 몸으로 배운 청소년이 과연 문제아가 될 수 있을까? 21세기를 맞으며 선포한 문화전쟁의 가장 큰 무기와 전략은 전통문화이다. 이젠 제발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사대주의적 생각을 버리자. 오늘 우리를 있게 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적 전통의 유전자(DNA)를 현재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법고창신’을 해야 할 때이다. 이것이 ‘제사, 과연 지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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