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 한양대 교수·중동학
잠잠하던 중동 평화에 다시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란산 원유의 금수조처를 내리는 강경대응에 나섰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은 이란의 ‘핵’이다. 이란이 우라늄 농축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나오자,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세계가 즉각 견제에 나선 것이다. 이란은 세계 석유 유통의 핵심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맞불을 놓고 있다. 전체 원유 수입량의 약 10%를 이란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딜레마에 빠졌다. 서방세계와의 관계를 고려해 제재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견과, 한국에 우호적인 이란을 굳이 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양쪽의 의견을 들어본다.
냉전적 현실론 벗어나야
중국·러시아의 제재 반대 상황서
실효성 없고 시장마저 잃을 것…
<대장금>시청률 90%에 이르는
경제·문화적 친구를 홀대할 건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으로 걸프해에 또다시 불길한 전쟁 기운이 감돌고 있다. 이번 사태는 미국이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포기시키려는 의도로 이란 국민들의 생명선인 원유 수출을 금지시키는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한 직후에 이란이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함으로써 촉발되었다. 이란은 그동안 일관되게 ‘평화적 핵 주권’을 내세우며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충실하게 수용하고 국제사회를 향해 협상과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강조해왔다. 다만 ‘이란만은 어떤 핵 프로그램도 안 된다’는 미국식 독선과 패권적 압력에 강하게 저항해왔던 것이다. 미국은 1979년 친미정권인 팔레비 왕가가 부패와 독재로 무너진 직후부터 이란 이슬람공화국에 대한 경제제재를 30년 이상 지속하면서 ‘악의 축’ 낙인 정책을 펼쳐왔다. 미국의 막대한 군사원조를 받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등지에서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적 국가테러를 자행하자, 이란은 합법적인 정치조직인 헤즈볼라 등의 투쟁을 지원해왔다. 그래서 ‘테러지원국’ 리스트에도 올랐다. 극심한 경제제재의 고난 속에서 이란은 자연히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반미국가가 되었고, 반미를 표방하는 정권만이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기형적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친미정권이 등장할 가능성이 희박한 적대적 이란을 버리는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이란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란은 아마 지구촌에서 한국에 가장 우호적인 나라 중 하나일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우리의 중요한 교역 파트너이자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국가였고, 그동안 총 119억달러 규모의 건설·플랜트 수주는 물론 중동 최대의 시장으로 한국의 고부가가치 상품 점유율이 가장 높은 국가로 우뚝 섰다. 문화적으로도 평균 시청률 90%의 <대장금>을 비롯해 <해신>, <상도>, <주몽> 등 한국 드라마만 골라 보고 ‘서울로’의 주요 상점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가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에 일방적으로 따라가는 정책이 아니라, ‘한국 사랑’에 깊이 빠진 나라 이란을 우호적으로 관리하고, 정교한 대안적 어젠다를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기본 국익이 아닌가. 그런데도 왜 국제적 합의도 없는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제재에 우리가 무조건 동참해야 하나. 이번 이란 경제제재는 원유 수입과 사실상 양국간 모든 금융거래까지 전면 금지하는 고강도 수준이다. 이미 2010년 9월 정부의 이란 경제제재로 타격을 입은 뒤 겨우 살아남은 1000여개의 중소 수출업체들이 사실상 이란과의 비즈니스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더욱이 러시아와 중국이 제재에 반대하고 있어 이란 핵의 포기라는 본래의 제재 실효성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제제재 동참으로 그나마 힘들게 다져놓았던 시장이 고스란히 중국이나 인도로 넘어가게 되는 상황을 지켜보아야 한다. 친미가 국익이라는 동일체 의식과 한-미 동맹이라는 절대가치로 덮어버리기에는 우리의 미래전략적 가치의 손상이 너무나 크다. 나아가 행정명령이나 국방수권법이라는 미국의 국내법이 핵 주권을 보장한 국제법을 앞설 수 있다는 섬뜩한 논리에 동참하는 것은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왔던, 국제사회에서의 책임있는 역할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인다. 중국이나 러시아까지도 주변부로 간주하면서 워싱턴하고만 통하면 만사형통이라는 20세기적 외교인식에서 벗어나, 글로벌 국격에 맞는 새로운 외교철학과 성찰이 진정으로 필요한 때이다. ‘힘의 논리가 곧 국제사회의 정의’라는 냉전적 현실론으로는 역사성과 인류 공동체의 글로벌 가치 공감이 중시되는 미래 시대를 주도해나가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안보·정치적 문제와 경제적 관계를 구분하면서 우리의 실익을 지키고, 국제법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제재 동참에 거리를 둠으로써 새로운 외교전통을 세워나갈 용의는 없는가? 경제적·문화적 친구를 미국 때문에 계속해서 홀대한다면, 인내의 한계에 달한 중동·이슬람권 정서가 회복되기 어려운 수렁으로 빠져들게 될지도 모른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그들의 40년 ‘한국 짝사랑’이 이번 일로 파국을 맞지 않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이희수 한양대 교수·중동학
‘세계 평화’의 문제다
‘원유 확보’ 실리 고려 마땅하지만
한-미간 신뢰 한순간에 잃을 수도…
‘양다리 걸치기’식 엉거주춤보다는
‘핵개발=평화의 적’이란 인식 필요 새해 벽두부터 미국의 대이란 제재 강화 조처에 대한 동참 여부 문제가 우리 정부를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제한하기 위해 지난해 12월31일 이란산 원유 금수조처에 해당하는 ‘국방수권법’에 최종 서명함으로써 조만간 그 시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은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모든 단체와 미국 은행 사이의 거래를 금지함으로써 실제적으로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를 강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원유대금 결제는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의 이란 중앙은행 계좌로 이뤄지기 때문에 매우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미국은 대이란 제재에 한국의 동참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란산 원유 도입량 비중이 2011년에만 9.7%(11월말 기준 8259배럴)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이란산 석유 수입을 중지하거나 감축하게 되면 유가급등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매우 심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유럽연합이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기로 결정했으며 이웃나라 일본 역시 동참 의사를 보이는 등 미국의 동맹국들이 대이란 제재에 협력·동참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만 대이란 제재조처에서 빠지기는 매우 곤란한 처지가 되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북핵 문제의 당사국인 만큼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이란의 우라늄 농축 실험을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이란에 대한 국내에서의 제재는 이번만이 아니다. 2010년에는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거래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은 이란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에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2개월 영업정지 조처를 내리고 4만유로(약 6000만원)가 넘는 모든 금융거래는 정부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이란산 원유 수입은 제재 대상에서 제외했었다. 이번 제재는 이란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게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대이란 제재 중 가장 강력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로서도 미국과 이란 중 어느 한쪽만을 일방적으로 편들 수 없는 ‘안보적 딜레마’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미국 등 서방과의 돈독한 국제관계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지혜를 짜내기가 쉽지 않은 매우 곤혹스러운 사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과는 오랜 동맹국으로서 우방관계를 훼손해서는 안 되지만, 또한 원유 수입과 관련한 경제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조심스러운 상황이지만 선택은 해야 한다. 물론 명분과 실리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피해갈 수 없는 것은 미국과의 깊은 관계이다. 제재에 반대하면 상대적으로 도입 단가가 싼 이란산 원유를 확보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우방으로 다져온 미국·서방세계와의 유대관계는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전 개전 때도 미국의 편에 섰고 북한의 핵 위기 해소와 대테러리즘 차원에서도 동참하고 있는 가장 가까운 우방관계다. 결정은 신중하더라도 빨라야 한다. 이왕 동참해야 한다면 ‘양다리 걸치기’식 엉거주춤은 안 된다. 만약 이란산 원유 도입 중단으로 인한 경제적 파장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미국의 동참 요구에 소극적으로 임한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한-미 관계는 한순간 신뢰를 잃을 위험이 있다. 어차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의 이란 제재는 미국의 안보 헤게모니로 보일 수도 있으나 핵확산을 금지하기 위한 핵무기 제재가 주요 목적이다. 따라서 일부 국민의 비판이 있고 경제적으로 부분적 손해를 보더라도 미국과 서방의 이란 제재에 우리 정부는 적극 동참해야 한다. 더구나 세계는 9·11 테러 이후 이미 이란을 북한·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하였고 이런 인식은 최근 들어서도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번 미국과 서방의 대이란 제재 강화조처도 미국의 압박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란의 핵개발 시도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국제분쟁의 원인이자 ‘평화의 적’이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란의 핵확산 저지를 위한 제재는 단순한 양자택일의 사안이 아니라 미국 등 동맹과 함께 굴러가야 할 수레바퀴와도 같은 것이라는 점을 국민들도 인식하고 정부의 고민을 이해해야 한다. 이만종 호원대 교수 한국테러학회 회장
실효성 없고 시장마저 잃을 것…
<대장금>시청률 90%에 이르는
경제·문화적 친구를 홀대할 건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으로 걸프해에 또다시 불길한 전쟁 기운이 감돌고 있다. 이번 사태는 미국이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포기시키려는 의도로 이란 국민들의 생명선인 원유 수출을 금지시키는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한 직후에 이란이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함으로써 촉발되었다. 이란은 그동안 일관되게 ‘평화적 핵 주권’을 내세우며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충실하게 수용하고 국제사회를 향해 협상과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강조해왔다. 다만 ‘이란만은 어떤 핵 프로그램도 안 된다’는 미국식 독선과 패권적 압력에 강하게 저항해왔던 것이다. 미국은 1979년 친미정권인 팔레비 왕가가 부패와 독재로 무너진 직후부터 이란 이슬람공화국에 대한 경제제재를 30년 이상 지속하면서 ‘악의 축’ 낙인 정책을 펼쳐왔다. 미국의 막대한 군사원조를 받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등지에서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적 국가테러를 자행하자, 이란은 합법적인 정치조직인 헤즈볼라 등의 투쟁을 지원해왔다. 그래서 ‘테러지원국’ 리스트에도 올랐다. 극심한 경제제재의 고난 속에서 이란은 자연히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반미국가가 되었고, 반미를 표방하는 정권만이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기형적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친미정권이 등장할 가능성이 희박한 적대적 이란을 버리는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이란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란은 아마 지구촌에서 한국에 가장 우호적인 나라 중 하나일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우리의 중요한 교역 파트너이자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국가였고, 그동안 총 119억달러 규모의 건설·플랜트 수주는 물론 중동 최대의 시장으로 한국의 고부가가치 상품 점유율이 가장 높은 국가로 우뚝 섰다. 문화적으로도 평균 시청률 90%의 <대장금>을 비롯해 <해신>, <상도>, <주몽> 등 한국 드라마만 골라 보고 ‘서울로’의 주요 상점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가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에 일방적으로 따라가는 정책이 아니라, ‘한국 사랑’에 깊이 빠진 나라 이란을 우호적으로 관리하고, 정교한 대안적 어젠다를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기본 국익이 아닌가. 그런데도 왜 국제적 합의도 없는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제재에 우리가 무조건 동참해야 하나. 이번 이란 경제제재는 원유 수입과 사실상 양국간 모든 금융거래까지 전면 금지하는 고강도 수준이다. 이미 2010년 9월 정부의 이란 경제제재로 타격을 입은 뒤 겨우 살아남은 1000여개의 중소 수출업체들이 사실상 이란과의 비즈니스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더욱이 러시아와 중국이 제재에 반대하고 있어 이란 핵의 포기라는 본래의 제재 실효성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제제재 동참으로 그나마 힘들게 다져놓았던 시장이 고스란히 중국이나 인도로 넘어가게 되는 상황을 지켜보아야 한다. 친미가 국익이라는 동일체 의식과 한-미 동맹이라는 절대가치로 덮어버리기에는 우리의 미래전략적 가치의 손상이 너무나 크다. 나아가 행정명령이나 국방수권법이라는 미국의 국내법이 핵 주권을 보장한 국제법을 앞설 수 있다는 섬뜩한 논리에 동참하는 것은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왔던, 국제사회에서의 책임있는 역할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인다. 중국이나 러시아까지도 주변부로 간주하면서 워싱턴하고만 통하면 만사형통이라는 20세기적 외교인식에서 벗어나, 글로벌 국격에 맞는 새로운 외교철학과 성찰이 진정으로 필요한 때이다. ‘힘의 논리가 곧 국제사회의 정의’라는 냉전적 현실론으로는 역사성과 인류 공동체의 글로벌 가치 공감이 중시되는 미래 시대를 주도해나가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안보·정치적 문제와 경제적 관계를 구분하면서 우리의 실익을 지키고, 국제법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제재 동참에 거리를 둠으로써 새로운 외교전통을 세워나갈 용의는 없는가? 경제적·문화적 친구를 미국 때문에 계속해서 홀대한다면, 인내의 한계에 달한 중동·이슬람권 정서가 회복되기 어려운 수렁으로 빠져들게 될지도 모른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그들의 40년 ‘한국 짝사랑’이 이번 일로 파국을 맞지 않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이희수 한양대 교수·중동학
이만종 호원대 교수 한국테러학회 회장
한-미간 신뢰 한순간에 잃을 수도…
‘양다리 걸치기’식 엉거주춤보다는
‘핵개발=평화의 적’이란 인식 필요 새해 벽두부터 미국의 대이란 제재 강화 조처에 대한 동참 여부 문제가 우리 정부를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제한하기 위해 지난해 12월31일 이란산 원유 금수조처에 해당하는 ‘국방수권법’에 최종 서명함으로써 조만간 그 시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은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모든 단체와 미국 은행 사이의 거래를 금지함으로써 실제적으로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를 강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원유대금 결제는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의 이란 중앙은행 계좌로 이뤄지기 때문에 매우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미국은 대이란 제재에 한국의 동참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란산 원유 도입량 비중이 2011년에만 9.7%(11월말 기준 8259배럴)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이란산 석유 수입을 중지하거나 감축하게 되면 유가급등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매우 심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유럽연합이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기로 결정했으며 이웃나라 일본 역시 동참 의사를 보이는 등 미국의 동맹국들이 대이란 제재에 협력·동참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만 대이란 제재조처에서 빠지기는 매우 곤란한 처지가 되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북핵 문제의 당사국인 만큼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이란의 우라늄 농축 실험을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이란에 대한 국내에서의 제재는 이번만이 아니다. 2010년에는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거래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은 이란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에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2개월 영업정지 조처를 내리고 4만유로(약 6000만원)가 넘는 모든 금융거래는 정부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이란산 원유 수입은 제재 대상에서 제외했었다. 이번 제재는 이란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게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대이란 제재 중 가장 강력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로서도 미국과 이란 중 어느 한쪽만을 일방적으로 편들 수 없는 ‘안보적 딜레마’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미국 등 서방과의 돈독한 국제관계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지혜를 짜내기가 쉽지 않은 매우 곤혹스러운 사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과는 오랜 동맹국으로서 우방관계를 훼손해서는 안 되지만, 또한 원유 수입과 관련한 경제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조심스러운 상황이지만 선택은 해야 한다. 물론 명분과 실리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피해갈 수 없는 것은 미국과의 깊은 관계이다. 제재에 반대하면 상대적으로 도입 단가가 싼 이란산 원유를 확보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우방으로 다져온 미국·서방세계와의 유대관계는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전 개전 때도 미국의 편에 섰고 북한의 핵 위기 해소와 대테러리즘 차원에서도 동참하고 있는 가장 가까운 우방관계다. 결정은 신중하더라도 빨라야 한다. 이왕 동참해야 한다면 ‘양다리 걸치기’식 엉거주춤은 안 된다. 만약 이란산 원유 도입 중단으로 인한 경제적 파장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미국의 동참 요구에 소극적으로 임한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한-미 관계는 한순간 신뢰를 잃을 위험이 있다. 어차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의 이란 제재는 미국의 안보 헤게모니로 보일 수도 있으나 핵확산을 금지하기 위한 핵무기 제재가 주요 목적이다. 따라서 일부 국민의 비판이 있고 경제적으로 부분적 손해를 보더라도 미국과 서방의 이란 제재에 우리 정부는 적극 동참해야 한다. 더구나 세계는 9·11 테러 이후 이미 이란을 북한·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하였고 이런 인식은 최근 들어서도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번 미국과 서방의 대이란 제재 강화조처도 미국의 압박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란의 핵개발 시도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국제분쟁의 원인이자 ‘평화의 적’이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란의 핵확산 저지를 위한 제재는 단순한 양자택일의 사안이 아니라 미국 등 동맹과 함께 굴러가야 할 수레바퀴와도 같은 것이라는 점을 국민들도 인식하고 정부의 고민을 이해해야 한다. 이만종 호원대 교수 한국테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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