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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논쟁] 조문 방북·분향소 설치, 어떻게 봐야 하나?

등록 2011-12-27 19:18수정 2011-12-28 10:24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뒤, 조문 방북과 분향소 설치 문제가 남남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이미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 조문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내렸지만, 진보진영에서는 “정부와 민간 차원의 조문단 파견”을 요구하고 있다. 26일에는 서울의 한 대학과 덕수궁 앞 광장에 분향소가 설치됐다가 즉각 철거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조문·분향소 설치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을 싣는다.

죽은 자들에 대한 예우

국가는 하고 국민은 할 수 없는
표현의 영역은 있을 수 없어…
죽은 자에게 조의를 표하는 것과
그 행위를 찬양하는 것은 달라

우리 정부와 미국이 ‘북한 주민에게’ 애도를 표했다고 하는데 한낱 말장난이다. 당연히 우리가 초상집에 가면 유족들에게 애도를 표하지 않는가. 애도는 애도인 것이다. 인권침해의 괴수였던 카다피의 사체 처리에 대해서도 국제인권단체들이 문제제기를 한 것처럼, 아무리 독재자라 할지라도 그 죽음은 우리에게 거부할 수 없는 엄숙함과 예우를 요구한다.

문제는 김정일만 죽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일부는 김일성과 북한 정부에 대해 유대인이 히틀러나 나치독일에 대해 느끼는 공포심과 증오감을 느낀다. 전쟁 도중에 자신의 가족을 인민군의 총구 앞에 잃은 사람들이 그 ‘학살자’에 대해 갖는 증오감은 스스로에게는 어떤 종교적 신념보다도 자랑스럽고 떳떳한 것이다. 그들의 신념을 존중해주지 않는 언사는 그들에게는 자신을 모욕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을 부인하는 것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전쟁보다 더욱 심한 고통을 당한 유대인들에게 ‘대학살은 없었어, 모두 거짓말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이들이 겪은 인간성의 상실을 확장하는 ‘행위’라고 보고, 독일은 대학살 부인죄를 제정하였다. 그 외에도 많은 국가들이 소수를 차별과 핍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혐오죄를 두고 있다. 광주학살의 전주곡이었던 ‘12·12’ 주도자를 ‘혁명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은 법 위반에 관계없이 거기서 죽은 자들과 그 유족들에 대한 예우가 아닌 것이다.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죄)의 폐지가 힘든 이유는 이 조항이 전쟁유족들에게 ‘혐오죄’와 비슷한 심정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언어에는 ‘학살자에 대한 공포와 증오감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다수들에 둘러싸인 소수’라는 일종의 ‘포위의식’이 가득하다.


결국 김정일 분향소 설치 문제는 법의 문제가 아니라 죽은 자(들)에 대한 예우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이 법(국가보안법)을 들고나와 분향소를 철거한 것은 잘못이다. 국가가 조문을 이희호·현정은씨에게 허가했다는 사실 자체가 분향소가 불법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국가만 할 수 있고 국민은 할 수 없는 여러 행위들이 법률에 정해져 있지만, 표현의 영역에서는 국가는 하고 국민은 할 수 없는 의사표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헌법 21조 검열금지 조항의 명령이다. 국가기밀 등을 제외하고, ‘원래는 할 수 없지만 국가의 허가를 받으면 할 수 있는 말’은 헌법상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우리가 쉽게 수용하는 ‘적장에 대한 예우’라는 문구에서 볼 수 있듯이 죽은 자에게 조의를 표하는 것과 죽은 자의 행위를 찬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또 국가보안법 7조는 두말할 것 없이 위헌이다. 국가보안법의 다른 조항들은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물리적 행위’를 범죄시하지만 7조는 언사(찬양·고무·선전·동조) 자체를 범죄시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의 국가보안법은 물리적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지 그러한 생각을 처벌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1789년 반란법도 “미국인들을 욕보이는… 미국 정부에 반하는 거짓되고 논란적이고 악의적인 문서의 작성”을 처벌한다고 하여, 당시 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사법부의 위헌심사권을 세계 처음으로 확립한 ‘마버리 대 매디슨’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이 법을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분향소 설치를 법의 문제가 아니라 예우의 문제로 다루면 해결책이 보인다. 이번에 죽은 자와 60년 전에 죽은 자들 모두에게 예우를 갖추는 방법은 무엇일까? 김정일의 죽음을 속으로, 사적 모임으로 애도하는 사람은 많다. 그의 죽음으로 당사국들이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올스톱된 북-미 회담, 같이 올스톱된 인도적 지원 및 에너지 경협, 이 때문에 늘어나는 아사자들과 지연되는 군축·평화…. 서울대에 분향소를 설치한 학생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런 사적 애도들을 모두 적발해서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전쟁유족들도 원치 않는 것이다. 언론이 자꾸 뉴스 거리로 만들고 경찰이 자꾸 법적 논란을 일으키니 전쟁유족들은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고 모욕감을 느끼게 되는 것 아닌가.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
‘준법’ 명제에 좌우는 없다

현행법상 북한은 반국가단체이고
지속적으로 안보 위협하는 상황…
북한과의 교류에 일정한 제한 둔
실정법에 따라 이성적 대처 필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지도 어언 열흘이 지났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조문 방북의 문제로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조문과 관련하여 정부는 특별한 관계를 가졌던 소수의 사람에 대해서만 방북을 허용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렇지만 일부 단체에서는 개별적 조문 방북을 허용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이 조문 문제와 함께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 분향소 설치 문제이다. 이 문제는 며칠 전 서울대에서 분향소 설치 제안에 관한 대자보가 붙으면서 시작되었고, 분향소는 다수의 반대 속에서 설치되었다가 곧바로 철거되었다. 또한 한 민간단체에서도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설치하려고 시도하다가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었다.

사람이 숨지면 애도와 조문을 하는 것이 인간 사회의 기본적인 예인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헌신한 분이 사망하면 그를 기리기 위하여 분향소를 설치할 수도 있다. 그런데 북한 지도자의 사망으로 인한 조문이나 분향소 설치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사망으로 인한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복잡하면서도 비극적인,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추구하면서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남북문제가 얽혀 있다. 한반도의 현실은 전쟁과 군사적 대치, 긴장과 교류라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만들어져 왔다. 세계가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끝냈음에도 한반도는 여전히 갈등과 대치 속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더구나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은 우리에게 북한은 경계의 대상이라는 것을 각인시켜 주고 있다.

우리나라 현행법은 국제법과 달리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북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남북한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고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교류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우리나라는 남북교류협력법을 제정하고 북한과 인적·물적 교류를 통하여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물론 이에는 북한 역시 경제현실을 고려한 태도의 변화가 있었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은 우리 헌법에 의하여 한반도에서 유일한 국가인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민의 생존에 위협을 주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반국가단체로서의 법적 지위에는 변함이 없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남북관계가 과거와 달리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두 대통령의 방북, 개성공단의 설치로 인한 진전된 경제교류뿐만 아니라, 금강산 관광을 통하여 한동안 많은 사람들이 한정된 지역이지만 북한을 방문하였다. 이렇게 남북의 교류가 빈번해졌음에도 북한은 지속적인 도발로 우리의 안보를 시험하면서 여전히 양면적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조문을 위한 분향소의 설치나 방북을 허용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법치국가이다. 우리의 실정법은 북한과의 교류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다. 조문을 위하여 분향소를 설치하거나 방북하겠다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이들에게는 대한민국의 법을 준수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또한 국가는 이들 국민을 보호하고 자유와 생명을 지켜야 할 책무가 있다. 실정법에 따라 북한이 반국가단체라는 점에서 이 단체의 수장을 위한 분향소 설치는 허용될 수 없다.

법은 우리의 약속이며 우리 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한 근간이다. 국민이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가와 사회의 안전과 평화는 유지될 수 없다. 남북관계가 법으로만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하여도,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대한민국의 실정법을 준수해야 한다. 법을 지켜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 앞에서 진보와 보수는 없다. 조문 방북이나 분향소 설치 문제는 우리나라 실정법에 따라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이다. 더구나 북한은 여전히 반국가단체이고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대상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하여 남북이 경협을 통하여 교류한다고 하여도, 이러한 한반도의 현실을 무시하고 개인이나 단체가 조문 방북을 요구하거나 분향소를 설치하겠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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