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숙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
지난 13일 교육과학기술부가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올해 중학교 1학년 학생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2014학년도부터 전면 시행될 이 제도는 고교 내신제도가 현행 9등급의 상대평가에서 6단계의 절대평가로 바뀌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학교 안에서의 지나친 등수 경쟁을 막자는 취지이지만 대학 입시와 연결되면 학교마다 ‘내신 부풀리기’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내신이 무력화하고 상대적으로 대학 입시에 유리해진 특수목적고와 자율형사립고에 학생이 몰리는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절대평가가 원칙적으로 맞다는 입장의 교육학자와 오랜 시간 교육운동을 해온 학부모에게 의견을 물었다.
특권계층 위한 ‘꼼수’에 불과
국영수 중심 입시교육을 강화한
‘2009 개정교육과정’ 완성하려고
교과부가 평가 방식까지 전환해
특목고·자사고에 날개를 다는 꼴 교육과학기술부가 창의·인성교육 강화를 위한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보도자료를 보면서 언제나 그렇듯 ‘참으로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9등급 상대평가는 “학생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급우들 간 배타적 경쟁심을 조장하여 미래사회에서 필요한 협동학습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새로 도입될 성취평가제(절대평가)는 “지나친 경쟁의식을 지양하고 학생의 잠재력과 소질을 최대한 발휘시켜 창의·인성교육이 구현되는 교실 수업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과부의 이런 설명은 “학생을 점수로 줄 세우는 상대평가보다 절대평가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는 이른바 진보진영의 주장과 일치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금은 교과부가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민들이 헷갈릴 지경이다. 하지만 지난 4년간 일관되게 밀어붙였던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보면 지금 발표한 평가방식 전환이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내신을 무력화해 특권계층에게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주자는 것일 따름이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자율과 다양성’을 내세워 ‘경쟁교육과 학교 서열화’ 정책을 꾸준하게 추진해왔다. 결국 그동안 국민들에게 외면받은 교육정책을 특유의 ‘불통’ 방식으로, 계획대로 치밀하게 임기 말까지 완성해놓고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교육정책은 특히 한번 도입되면 그 피해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우리는 4년간 그 고통을 경험했다. 그동안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초등학생까지 시험문제 풀이 기계로 전락시킨 ‘전국단위 학업성취도 평가’를 부활시켰다. 고교 평준화를 해체하기 위해서 자율형사립고를 늘려 학교를 서열화시킨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 대학교육협의회에 대학입시의 전권을 넘겨 실질적인 고교등급제를 방치한 ‘대입 선진화 방안’ 등으로 인해 일반계고의 붕괴를 경험해야 했다. 이제는 선택교과목의 다양화는커녕 국·영·수 중심의 입시교육 강화로 이어진 ‘2009 개정교육과정’을 완성하기 위해 평가 방식까지 전환하여, 내신 성적에 불리했던 특목고와 자사고에 날개를 달아주려 하고 있다. 그러고도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있다. 절대평가로 ‘다양한 교육과정’, ‘창의적 교육과정’, ‘학생 중심의 다양한 맞춤형 교육과정’이 운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어불성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단언하는 이유는 우리의 중등교육이 대학입시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위권 대학들은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특목고·자사고 학생을 유치하고자 혈안이 돼 있고, 그 입학생 수가 곧 대학의 경쟁력이 되는 상황을 서로 암암리에 인정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서 이런 대학과 대학입시 제도를 놔두고 어찌 창의적 인재를 키우기 위한 다양한 교육과정이 정착될 수 있는가? 창의·인성교육을 하려면 성적으로 줄 세우는 일제고사를 폐지하고, 고교를 서열화시키는 자사고 정책 등을 폐지하는 것이 먼저다. 그런데 오히려 실패한 자사고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겉과 속이 다른 이 평가 방식을 어찌 믿으란 말인가? 정부가 말하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학생들에게 보장하려면 적성에 따라 배우고 싶은 과목을 적은 수가 선택했을 때도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국·영·수를 빼고는 선택하고 싶은 과목이 있어도 가르칠 교사가 없어서 개설할 수 없다. 학교 현장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이렇게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다양한 선택을 위한 소인수 학급을 위해서 평가 방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성적우수자가 몰려 있어 내신에서 불리한 외고·자사고 학생을 위한 조처라는 지적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교과부가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을 때 누가 좋아하고 지지했는지 보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자사고, 특목고, 대교협 등에서 적극 공감하고 환영의 의사를 표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장은숙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
‘절대평가’는 정답, 문제는 ‘어떻게’
교사의 자율성·전문성 전제되고
성취기준 구체적 명시 전제돼야
초등·시범학교부터 적용해본 뒤
문제점 보완하면서 확대할 정책 지난 50여년 동안 우리나라 학교에서 실시한 학생 평가방식은 주로 성적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규준지향평가 혹은 상대평가의 철학 및 원칙에 지배되어 왔다. 학생의 성적을 그가 포함되어 있는 집단에서 차지하는 상대적인 서열에 따라 정해주는 방식이다. 즉 학생이 ‘무엇을 얼마나 성취했느냐’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 비해 얼마나 잘했느냐 못했느냐’에 의해 평가된다. 상대평가에서는 누군가의 성공이 있으면 실패자가 있게 마련이며, 성공한 자든 실패한 자든 교육적으로 내세웠던 교육목표를 얼마나 잘 달성했는지 여부에 의해서 평가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평가를 위해서는 교육목표를 분명히 정해 놓고 거기에 어느 정도 도달했는가를 기준으로 성취 수준을 정하는 방식인 목표지향평가, 즉 절대평가 방식이 타당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학교 현실 여건은 이러한 절대평가의 타당성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 변화는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우선 절대평가를 제대로 시행하자면 교사의 평가에 대한 자율성과 전문성이 전제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교과목별 성취 기준이 매우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학교별로 내신성적을 상향조정하기 위하여 문항을 쉽게 출제하게 된다. 초등학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고등학교는 ‘내신 부풀리기’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개별 교사와 학교에 따라 평가의 준거가 일관성이 없게 됨으로써 평가 결과에 대한 신뢰성과 타당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1만개가 넘는 전국의 초·중등학교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것도 어려운 과제이다. 현 정부 들어 고교 다양화 정책을 추진하여 ‘특목고-자율형사립고-일반고’의 순서로 서열화 구도를 심화·확대시켜 왔다. 아울러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의 기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학교 선택권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시도하고 있는 이러한 정책은 자본의 논리, 상층계층의 이해를 적극 대변하고 있다. 그 결과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고등학교 유형 선택에 중요한 준거가 됨으로 인해 사회적 계층화, 학교 계층화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자율형사립고 정책이 지원자 미달로 실패 위기에 이르게 되자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절대평가 전면 도입이라는 방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특목고와 자사고가 대환영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앞서 절대평가의 교육적 의의를 강조하였지만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 본다면 정책의 취지를 옳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절대평가를 제대로 실시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발표하는 것은 현재의 왜곡되어 있는 교육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다시 말하면 절대평가가 갖는 원래의 긍정적 효과는 사라지고 오히려 부작용만 더 클 것이라는 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 서열화는 특수유형의 학교와 일반고 사이의 문제뿐만 아니라 도시 내에서의 지역·학군 간 격차, 도시와 농어촌 사이의 도농 간 격차를 더욱 확대하게 될 것이다. 대입전형을 기준으로 볼 때 현재의 내신제도는 지역 간 격차를 어느 정도 보상하는 역할을 했지만, 내신이 무력화된다면 출신 고등학교의 유형과 위치, 이름이 훨씬 중요한 변수로 작동할 것이다. 이른바 고교등급제가 드러나게 적용될 것임은 분명하다. 절대평가가 가치롭다고 해서 갑자기 도입할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부터 실시하거나 시범학교를 통해 적용해 보고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확대해야 할 성격이다. 특히 고등학교 단계에서는 학교 서열화 완화를 위한 조처를 먼저 취한 다음 적용해야만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성급한 정책 도입으로 인해 학교 현장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절대평가의 급작스런 도입 역시 교육 현장을 혼란으로 빠뜨릴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좀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본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교육학
‘2009 개정교육과정’ 완성하려고
교과부가 평가 방식까지 전환해
특목고·자사고에 날개를 다는 꼴 교육과학기술부가 창의·인성교육 강화를 위한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보도자료를 보면서 언제나 그렇듯 ‘참으로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9등급 상대평가는 “학생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급우들 간 배타적 경쟁심을 조장하여 미래사회에서 필요한 협동학습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새로 도입될 성취평가제(절대평가)는 “지나친 경쟁의식을 지양하고 학생의 잠재력과 소질을 최대한 발휘시켜 창의·인성교육이 구현되는 교실 수업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과부의 이런 설명은 “학생을 점수로 줄 세우는 상대평가보다 절대평가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는 이른바 진보진영의 주장과 일치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금은 교과부가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민들이 헷갈릴 지경이다. 하지만 지난 4년간 일관되게 밀어붙였던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보면 지금 발표한 평가방식 전환이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내신을 무력화해 특권계층에게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주자는 것일 따름이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자율과 다양성’을 내세워 ‘경쟁교육과 학교 서열화’ 정책을 꾸준하게 추진해왔다. 결국 그동안 국민들에게 외면받은 교육정책을 특유의 ‘불통’ 방식으로, 계획대로 치밀하게 임기 말까지 완성해놓고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교육정책은 특히 한번 도입되면 그 피해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우리는 4년간 그 고통을 경험했다. 그동안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초등학생까지 시험문제 풀이 기계로 전락시킨 ‘전국단위 학업성취도 평가’를 부활시켰다. 고교 평준화를 해체하기 위해서 자율형사립고를 늘려 학교를 서열화시킨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 대학교육협의회에 대학입시의 전권을 넘겨 실질적인 고교등급제를 방치한 ‘대입 선진화 방안’ 등으로 인해 일반계고의 붕괴를 경험해야 했다. 이제는 선택교과목의 다양화는커녕 국·영·수 중심의 입시교육 강화로 이어진 ‘2009 개정교육과정’을 완성하기 위해 평가 방식까지 전환하여, 내신 성적에 불리했던 특목고와 자사고에 날개를 달아주려 하고 있다. 그러고도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있다. 절대평가로 ‘다양한 교육과정’, ‘창의적 교육과정’, ‘학생 중심의 다양한 맞춤형 교육과정’이 운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어불성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단언하는 이유는 우리의 중등교육이 대학입시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위권 대학들은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특목고·자사고 학생을 유치하고자 혈안이 돼 있고, 그 입학생 수가 곧 대학의 경쟁력이 되는 상황을 서로 암암리에 인정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서 이런 대학과 대학입시 제도를 놔두고 어찌 창의적 인재를 키우기 위한 다양한 교육과정이 정착될 수 있는가? 창의·인성교육을 하려면 성적으로 줄 세우는 일제고사를 폐지하고, 고교를 서열화시키는 자사고 정책 등을 폐지하는 것이 먼저다. 그런데 오히려 실패한 자사고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겉과 속이 다른 이 평가 방식을 어찌 믿으란 말인가? 정부가 말하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학생들에게 보장하려면 적성에 따라 배우고 싶은 과목을 적은 수가 선택했을 때도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국·영·수를 빼고는 선택하고 싶은 과목이 있어도 가르칠 교사가 없어서 개설할 수 없다. 학교 현장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이렇게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다양한 선택을 위한 소인수 학급을 위해서 평가 방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성적우수자가 몰려 있어 내신에서 불리한 외고·자사고 학생을 위한 조처라는 지적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교과부가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을 때 누가 좋아하고 지지했는지 보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자사고, 특목고, 대교협 등에서 적극 공감하고 환영의 의사를 표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장은숙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교육학
성취기준 구체적 명시 전제돼야
초등·시범학교부터 적용해본 뒤
문제점 보완하면서 확대할 정책 지난 50여년 동안 우리나라 학교에서 실시한 학생 평가방식은 주로 성적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규준지향평가 혹은 상대평가의 철학 및 원칙에 지배되어 왔다. 학생의 성적을 그가 포함되어 있는 집단에서 차지하는 상대적인 서열에 따라 정해주는 방식이다. 즉 학생이 ‘무엇을 얼마나 성취했느냐’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 비해 얼마나 잘했느냐 못했느냐’에 의해 평가된다. 상대평가에서는 누군가의 성공이 있으면 실패자가 있게 마련이며, 성공한 자든 실패한 자든 교육적으로 내세웠던 교육목표를 얼마나 잘 달성했는지 여부에 의해서 평가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평가를 위해서는 교육목표를 분명히 정해 놓고 거기에 어느 정도 도달했는가를 기준으로 성취 수준을 정하는 방식인 목표지향평가, 즉 절대평가 방식이 타당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학교 현실 여건은 이러한 절대평가의 타당성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 변화는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우선 절대평가를 제대로 시행하자면 교사의 평가에 대한 자율성과 전문성이 전제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교과목별 성취 기준이 매우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학교별로 내신성적을 상향조정하기 위하여 문항을 쉽게 출제하게 된다. 초등학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고등학교는 ‘내신 부풀리기’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개별 교사와 학교에 따라 평가의 준거가 일관성이 없게 됨으로써 평가 결과에 대한 신뢰성과 타당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1만개가 넘는 전국의 초·중등학교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것도 어려운 과제이다. 현 정부 들어 고교 다양화 정책을 추진하여 ‘특목고-자율형사립고-일반고’의 순서로 서열화 구도를 심화·확대시켜 왔다. 아울러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의 기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학교 선택권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시도하고 있는 이러한 정책은 자본의 논리, 상층계층의 이해를 적극 대변하고 있다. 그 결과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고등학교 유형 선택에 중요한 준거가 됨으로 인해 사회적 계층화, 학교 계층화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자율형사립고 정책이 지원자 미달로 실패 위기에 이르게 되자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절대평가 전면 도입이라는 방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특목고와 자사고가 대환영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앞서 절대평가의 교육적 의의를 강조하였지만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 본다면 정책의 취지를 옳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절대평가를 제대로 실시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발표하는 것은 현재의 왜곡되어 있는 교육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다시 말하면 절대평가가 갖는 원래의 긍정적 효과는 사라지고 오히려 부작용만 더 클 것이라는 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 서열화는 특수유형의 학교와 일반고 사이의 문제뿐만 아니라 도시 내에서의 지역·학군 간 격차, 도시와 농어촌 사이의 도농 간 격차를 더욱 확대하게 될 것이다. 대입전형을 기준으로 볼 때 현재의 내신제도는 지역 간 격차를 어느 정도 보상하는 역할을 했지만, 내신이 무력화된다면 출신 고등학교의 유형과 위치, 이름이 훨씬 중요한 변수로 작동할 것이다. 이른바 고교등급제가 드러나게 적용될 것임은 분명하다. 절대평가가 가치롭다고 해서 갑자기 도입할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부터 실시하거나 시범학교를 통해 적용해 보고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확대해야 할 성격이다. 특히 고등학교 단계에서는 학교 서열화 완화를 위한 조처를 먼저 취한 다음 적용해야만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성급한 정책 도입으로 인해 학교 현장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절대평가의 급작스런 도입 역시 교육 현장을 혼란으로 빠뜨릴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좀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본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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